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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의학전문대학원제 빛과 그늘
[집중취재]의학전문대학원제 빛과 그늘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2.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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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교육 현장 목소리 귀기울여야"


지식기반 사회와 고학력 사회에 대처하고 21세기 의료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의료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양질의 의료인 양성을 위해 교육인적자원부 주도하에 추진된 의·치의학 전문대학원제가 지난 6월 20일 전환 신청을 마감함으로써 사실상 마무리되는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당초 함께 추진했던 법학전문대학원제에 비해 빠른 행보를 보였던 의·치의학 전문대학원제에 대해 교육개혁 정책을 주도해 온 교육당국이 상당한 기대를 걸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전문대학원으로 전환을 신청한 의과대학이 가천대, 건국대, 경북대, 경희대(부분 도입), 이화여대, 포천중문의대, 충북대(부분 도입) 등 모두 7개 대학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1994년 처음 의학전문대학원제도가 제안된 이후 8년 여 만에 내놓은 의학교육개혁의 결과는 결국 전국 41개 의대 가운데 17%만이 참여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수도권 소재 대학 가운데 경희대와 이화여대가 신청서를 제출했으며, 국립대에서는 충북대와 함께 마감기일이 임박해서까지 난항을 겪었던 경북대가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11개 치대 가운데 6개 치대가 신청서를 제출, 가까스로 절반을 넘은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할 판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같은 결과가 빚어진데 대해 “의학전문대학원제도는 의료시장 개방을 앞두고 우수 의료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판단돼 정책적으로 도입한 것”이라며 “결정은 대학자율이지만 이기주의를 버리고 함께 노력하는 자세가 아쉽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저조한 참여율이 나타나게된 이면에는 서울의대를 비롯한 명문 의대의 입김이 상당부분 작용했기 때문이라며, 이들 대학의 이기주의 때문에 교육개혁이 원만히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국민의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교육 개혁정책의 하나인 의·치의학전문대학원제가 사실상 실패작으로 귀결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 데에는 교육당국 스스로 원인을 제공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백년지대계인 교육, 그 중에서도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를 양성하는 의학교육을 개혁명분에 집착한 나머지 의욕만 앞세운 채 무리수를 뒀다는 것이다.

2001년 8월 `의학전문대학원 추진위원회'가 숱한 논란과 우여곡절을 겪으며 의학계의 의견을 수렴해 마련한 `의학 전문대학원 시행 연구'에서는 결론을 통해 “이 제도의 시행은 관련기관, 단체 등의 의견과 합의에 의해 수행되어져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의·치의학 교육제도의 개편과 함께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의료인력 개발 체제 구축을 위하여 의료인력 개발과 관련된 기관의 협조 및 지속적인 공조관계의 형성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와 함께 정부에 대해서는 “의·치의학 전문대학원 설립(전환) 준칙 개발, 의·치의학 교육입문시험 개발 지원, 병역대체복무제도 적용, 의·치의학 전문대학원 도입에 따른 재정 확보 및 지원 등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학에 대해서는 “의·치의학 전문대학원 도입과 함께 대학에 위임된 사항에 대한 연구와 준비를 체계적으로 하여야 하며, 대학의 책무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높이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의학전문대학원 추진위원회'는 “의학교육관련 협의기관은 자율규제를 통한 성공적인 의·치의학 전문대학원 정착을 위해 노력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 정부는 의·치의학 교육계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상호 협력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 자율과 상호 협력에 무게를 실었다.

당시 `의학전문대학원 추진위원회'가 교육부에 제출한 연구의 골자는 `2·3·4(85학점 이상 취득)+4제의 의학전문대학원(의학석사)'으로 의학입문시험, 임상교육 입문시험, 임상교육 종합평가시험 등을 시행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대한의사협회와 의학교육학계를 비롯한 의료계는 추진위원회의 연구 근간이 훼손되지 않는다면 의학전문대학원제 도입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2002년 1월 16일 교육부가 `의·치의학 전문대학원 도입 기본계획'을 발표하자 의료계는 지금까지의 찬성 입장에서 반대 입장으로 급선회하는 양상을 보였다. 교육부가 발표한 기본계획의 주요 골자는 학사이상 학위자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의과대학을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인정, 의무석사를 수여하고, 대학의 자율적인 결정에 의해 현행 학제(예과+본과)를 유지하되 의학사를 수여한다는 것.

이와 함께 2009년까지 한 대학 내에서 복합체제를 운영하며, 2010학년도에는 하나의 체제를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하는 대학에 대해서는 국립대학의 경우 기초의학 교수 정원을 증원하고, 교과과정 개발비를 지원하며, 의학입문시험 개발비 지원과 MD-Ph. D 제도 인가와 함께 펠로우 지원방안이 담겨있다.

의료계는 교육부의 `의·치의학 전문대학원 도입 기본계획'은 의학전문대학원 추진위원회가 제출한 `의학 전문대학원 시행 연구'의 근간을 크게 훼손하고 있으며, 자체 모순과 함께 많은 부작용을 발생시킬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의료계는 교육부의 기본계획은 의학기본교육에 입문하는 자격을 제한하고, 같은 교육과정에 수여하는 학위를 차등화하고 있으며, 의료인 양성에 걸리는 기간이 늘어나는 등 제도시행에 따른 폐해가 클 것으로 예상했다.

의협과 한국의과대학장협의회는 2+4제도를 근간으로 하고, 다른 학부 출신의 입학을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하며, 동일한 학위를 수여해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의학전문대학원 추진위원회가 제출한 연구내용에도 담겨있는 근간이 교육부에서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훼손됐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폭넓은 교양과 높은 도덕성을 갖춘 인술의(仁術醫)는 의학전교육 기간이 늘어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의과대학에서 인성교육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의료윤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BT 산업 발전을 위한 기초의과학자 양성에도 찬성하나 이미 대부분의 학사편입생의 진로가 임상의사로 가닥이 잡히는 것으로 조사된 만큼 입학제도보다는 기초의과학 자체에 대한 지원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이공계와 자연과학대학의 교수들은 이 제도가 또 하나의 의학고시 열풍을 부채질해 이공계 및 자연과학계열의 학문을 고사시킬 것이라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우리 나라 경제발전의 밑바탕이 돼온 수학·물리·화학·생물 등 기초과학과 공학분야의 우수한 인재들이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로를 정하게 될 경우 입시지옥을 4년 더 연장할 뿐 만 아니라 국가적인 인재양성 차원에서도 불균형을 이룰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유왕식 교수(연세대 교수·생화학)는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우수 인재를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데려올 정도로 어려워진 국내 이공계 대학원은 더욱 황폐해질 것”이라며 “의학전문대학원의 도입이 이공계 대학의 우수 인재 공동화 현상을 일으켜 우리 나라의 국제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료계는 교육부가 제시한 교육개혁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입학제도의 변화보다 의학기본교육의 변화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4년 동안의 교육내용은 동일한데도 입학 당시의 성분에 따라 학사학위를 줄 수 있고, 석사학위도 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는 교육체계와 학위체계의 원칙에 어긋나므로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안윤옥 교수는 “독일·프랑스는 기본적으로 2플러스 4년의 6년제이지만 학사·석사 통합과정으로 인정되어 석사와 준하는 학위를 받고 있다”며 “미국과 캐나다는 1999년 현재 141개 의과대학 중 2플러스 4년 학제 8개교, 3플러스 4년 학제는 108개교, 그리고 학사플러스 4년 학제는 25개교이지만 어느 학제로 졸업했든 졸업생은 모두 동일한 M.D. 학위를 받으며 이는 박사와 동등한 학위로 인정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의료인의 전문성을 향상시켜 의료수준과 의학발전을 도모하고, 기초의학자를 많이 배출하여 BT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의학교육과정을 변화시키도록 해야지 의학교육과정 이전의 교육기간만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안 교수는 지적했다.
 
교육개혁의 명분아래 추진해 온 의·치의학 전문대학원제가 의료계의 반대에 부딪쳐 진척이 없자 교육부는 2월 8일 2003학년도 일차 신청 마감 이후 2004년 전환 대학은 4월 20일까지 신청을 받는다고 했다가 5월 20일 한 달을 연장하더니 또다시 마감기일을 6월 20일까지 늘려 잡았다. 신청이 저조하자 교육부는 계속해서 추가 신청을 받겠다며 팔을 걷은 상태다.

당초 의료계와 교육당국은 교육여건이 제대로 갖추진 대학에 한 해 신청을 받는 것으로 의견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신청이 저조하자 이제는 아예 모든 의대에까지 문을 열어 놓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지방의대의 서울 이전 인센티브 제공 등의 풍문이 오가고 있으며, 일부 대학의 경우 원칙을 무시한 교수 증원이나 재정 보조 등의 `당근'에 끌려 신청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의학교육계의 불신이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교육여건이 비교적 양호한 대학이 의학전문대학원을 외면하고, 교육여건이 열악한 일부 대학이 신청을 하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의학전문대학원제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교육당국이 의학교육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어떤 정책이건 여론을 반영하지 않은 정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 고통에 귀기울이지 않고, 전문가 집단의 조언을 외면한 채 개혁명분에 사로잡혀 강행한 의약분업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 여실히 증명된 바 있다. 실패한 의약분업의 여파는 향후 대선에 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의협과 의대학장협의회는 의학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취합해 명확한 의학전문대학원의 인가요건이 있어야 하며, 의학전문대학원의 입학자격과 비율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이와 함께 입학자격에 상관없이 의학기본교육 4년을 이수한 졸업생에게 동일한 학위(의무박사)를 수여할 것과 전공의 수련기간과 군복무기간 감축을 통해 의료인 양성에 걸리는 시간을 조정하는 내용도 건의했다. 아울러 의학전문대학원 체제를 실시하기에 걸맞는 교육여건을 갖출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의학전문대학원제가 보다 많은 의대의 참여 속에 올바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일선 교육현장의 애로와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상호 협력하는 분위기 속에 정책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특히 국민의 건강과 밀접히 관련돼 있는 의학교육은 일선 교육현장의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의학교육의 변화와 개혁을 위해 교육당국과 의료계가 서로 손을 잡아도 모자랄 판에 불신만 키워간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의사가 필요하다면 현재의 편입학 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으며, 기초의학 분야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국가적 차원의 학술연구비 예산을 대폭 증액하고 기부 문화를 정착시키는 일이 지름길이다.

항간에는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위한 전문학원이 생기는 등 벌써부터 의학 고시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고등학생의 직접 진입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힌 현행 의학전문대학원제로 인해 의공대 및 자연계 대학이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위한 고시촌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일 것이라고도 한다.
지금이라도 머리를 맞대고 윈-윈 전략을 세워 해결방안을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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