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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협회 실습기]도망칠 것인가, 도전할 것인가

[의사협회 실습기]도망칠 것인가, 도전할 것인가

  • 이주형 인턴기자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3.03.06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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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 의협신문 인턴기자(연세의대 본4)
필자의 대학 학생들에게 본과 4학년이 되는 해 1·2월은 '밀월기'로 통한다. 학교와 병원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어느 분야, 어느 곳이든 가서 배우고 실습할 수 있는 특성화 실습기간이기 때문이다.

이 기간 동안 학생들은 국내 방방곳곳으로, 해외로 여러 병원과 기관들을 찾아다니며 평소 자신이 관심을 가졌으나 시간이 없어 할수 없었던 일들을 마음껏 경험하고 배울 수 있다.

평소 미국 병원과 의료제도, 그리고 미국 의사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기에 1월 한 달은 미국 필라델피아 어린이병원(CHOP: Children's Hospital of Philadelphia)에서 실습하기로 작년 5월 결정을 내렸다. 남은 한 달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페이스북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이 페이스북을 활발히 하는 것을 보고 특성화 실습을 지원했고, 흔쾌히 승낙해준 덕분에 2월 4일부터 22일까지는 의사협회에서 보낼 수 있었다.

여기에서 배정 받은 곳은 의협신문국. 인턴기자로 취재를 나가고 기사를 써 보면 의료 현안에 대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였다. 첫 주차부터 국회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 발제로 '리베이트 쌍벌제에 관한 국회 토론회'가 열린 것이다. 아직 경험이 미흡한지라 이번 주제에는 참관만 하기로 하고 국회로 향했다.

의료계·약사단체·제약단체·법조인 모두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자료를 들고 나왔고, 모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어느새 토론회는 끝나 있었다. '리베이트는 올바르지 않은 것이지만 현 의료수가 하에서는 존재할 수밖에 없는 필요악이다' 정도로 알고 있던 나에게 다른 단체들의 주장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내가 생각한 것이 다 옳지는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막상 내가 머릿속에 세워 놓았던 탑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직접 경험하니 그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 다음 주 국회를 또 한 번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주제는 부실의대로 학교폐지 위기에 놓인 서남대 의대 사태에 관한 토론회. 지난 주 리베이트 쌍벌제와는 완전히 상반된 주제인 것이, 이번 토론회에서 팩트는 단 하나뿐이다. 서남대가 폐지를 면할 길은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버린 학생들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에서도 묘안을 찾지 못하고 서로 간의 언성만 높아진 끝에 시간초과로 끝이 났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인턴기자의 신분이라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 했다.

병원서 위풍당당하던 의사들, 왜 대중 앞에선 작아질까
두 번의 국회 방문 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는 위풍당당하던 의사들이 국회나 대중 앞에서는 너무도 작아지는 모습에 솔직히 가슴이 아팠다. 의사들은 공부를 많이 하고 똑똑한 사람들이지만,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아직 많은 경험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의료 현안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할 때 그 목소리가 쉽게 대중들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너무 팩트와 과학적 근거에만 치중한 나머지, 감동을 주지 못한다. 좀더 감성적으로 접근해야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부분에 대해서도 너무도 이성적으로 접근한 나머지 사회적 공감을 얻기가 힘들다.

그래서 의사들은 '자기들의 이익만 위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인 양 대중들에게 비치게 되고, 관련 법 제정에 있어 목소리는 자연스레 반영되기 힘들어진다. 이런 의료 환경과 대중들의 시선이 싫어 한국을 일찌감치 떠나 미국에 가서 의사를 하겠다는 친구들도 주변에 많은 상황에서 나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후년부터 인턴도 사라진다는데 미국 의사시험을 준비해야 하나… 여러 가지 회의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 올 무렵, 노 회장을 다시 만날 기회가 생겼다.

이런 고민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본인의 옛날 얘기를 해 주었다. 나와 비슷한 고민으로 괴로워하던 회장은 미국 대학에서 교수직을 권유받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가, "도망치기보다는 도전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표를 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의사협회 회장직까지 맡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분명 한국 의료계는 나아가야 할 길이 멀다. 리베이트, 응당법, 전공의 문제, 각종 수가 문제 등 처리해야 할 현안들이 너무도 많다. 설상가상으로 의료분쟁, 의료소송도 매해 증가하고 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시작 전부터 참 의욕이 생기지 않는 환경이다.

하지만 "선배들의 그릇된 생각과 우유부단한 행동으로 후배 의사들이 고통받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던 노 회장의 결연한 의지처럼, 국회 토론회에서 피가 끓던 그 열정으로, 도망치기보단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땅에 환자와 의사 모두가 행복한 의료 환경을 만들기 위해. 후배 의사들에게 자랑스런 선배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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