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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산부인과 실습, 한국과 무엇이 다른가

싱가포르 산부인과 실습, 한국과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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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2.2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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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 체험을 통해 살펴본 '마루타' 논란의 현주소
이정우(의협신문 인턴기자·연세의대 본4)

2010년 민주통합당 양승조 의원의 산부인과 마루타 발언으로 전공의와 학생의 진료 참관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실제 의료현장에서도 학생의 진료참관이나 실습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환자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필자는 의료관광선진국으로 알려진 싱가포르에서 보낸 4주간의 경험을 통해 우리나라 의대 교육 문제에 대해 학생의 입장에서 서술해보고자 한다.

<싱가포르>다음세대 위해 기꺼이 실습동의 VS<한국> 내진 한 번 못한채 실습마쳐

▲ 이정우(의협신문 인턴기자·연세의대 본4)
올해로 본과 4학년인 필자는 특성화 교육과정을 이용해 2012년 12월 31일부터 2013년 1월 25일까지 4주간 싱가포르 국립대학(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에서 주관하는 Medical elective program에 참가했다.

국가 차원에서 의료관광산업을 지원하고 홍보해주는 싱가포르는 작년 한 해 싱가포르 총 인구의 1/5에 달하는 100만 명의 외국인들이 의료 관광을 목적으로 방문했다. 하지만 의료관광산업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자국 내의 의대에서 매해 약 300명 정도의 의사밖에 배출할 수 없어 외국의 유능한 의사들을 자국 내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정부지원금 약 8000SD(싱가포르 달러)를 제외하고도 2000SD에 달하는 등록금을 내는 현지 의대생들에 비해 훨씬 저렴한 107SD만 내면 원하는 기간 동안 세계 유수의 의과대학인 싱가포르국립대학(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에서 실습을 할 수 있다.

지원서를 쓰는 과정에서 영어를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영어를 요구하는 정신과와 신경과는 제외해 최종적으로 리틀 인디아에 위치한 KK 여성소아병원(Kandang Kerbau Women's and Children's Hospital, KKH)의 산부인과로 배정됐다.

싱가포르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다음날인 1월 2일, 선택실습 학생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켄트 리지에 위치한 싱가포르국립대학의 메인 타워로 향했다. 시간이 남아 의과대학 건물을 견학했는데 임상술기센터가 잘돼 있다는 모교보다 시설이 좋았다.

최신식 독서실은 물론 매우 사실적인 술기연습실, 손 씻기부터 수술 전 처치까지의 모든 과정을 사실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모의 수술실, 심지어 회진 및 병동 환자에 대한 처치를 연습해볼 수 있는 모의 병동도 있었다.

처음 해본 산부인과 술기 - 환자는 내가 학생인 것을 알고 있었다
KKH에 도착해 간단한 인사 후 싱가포르에서의 첫 실습 일정인 외래참관을 했다. 외래에 들어가 교수에게 간단한 소개와 인사를 하고 바로 옆에 의자를 두고 앉았다. 가만히 앉아 시간을 때울 고민만 하고 있는데 무뚝뚝해 보이던 여자 교수는 들어오는 모든 산모에게 "내가 담당하는 의과대학 학생"이라고 필자를 소개를 하면서 "학생 교육에 조금만 협조해달라"고 부탁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다소 당황했는데 교수는 나에게 도플러 초음파를 쥐어주며 이를 이용해 태아 심음을 듣는 법을 설명해주면서 한 번 해보라고 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엉뚱한 곳에서 소리를 찾은 나에게 지금 들리는 심박음은 좋은(fine) 소리가 아니라며 내 손을 잡고 좋은 소리를 찾아주며 어떻게 찾는지 알려줬다.

그 뒤 한국에서는 이런 것은 후진국에서나 한다며 본 적조차 없는 레오폴드 수기를 해보라며 태아의 엉덩이와 머리가 어떻게 만져지는지 확인하도록 하였고, 그리고 태아의 체위를 확인하는 법을 설명해줬다. 또 처음으로 자궁저를 만져보면서 자궁저의 느낌을 알 수 있었고 자궁저부높이도 측정해볼 수 있었으며 동의하에 산모의 질에서 직접 B형 연쇄상구균도 검사해볼 수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본과 3학년을 거치면서 한국에서 1년간 임상실습을 받았다. 많은 술기를 참관하고 다양한 질병을 가진 환자들을 보았지만 모형이 아닌 환자에게 직접 술기를 해 볼 기회는 외과나 정신과를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학생들을 싫어했고 일부 환자들은 학생들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모욕적으로 느끼는 경우도 꽤 있었기 때문에 학생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나 전공의들도 환자와의 마찰이 싫어 딱히 학생에게 술기를 해 볼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나라의 정서상 환자들이 거의 동의를 해 줄 가능성이 없는 산부인과는 다른 과보다 더 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산부인과 실습 학생들은 배우기 위해 환자의 동의 없이 학생이라는 사실을 환자에게 들키지 않으면서 몰래 훔쳐볼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사실상 산부인과 임상실습의 목표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피교육자로서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동의 여부나 의지와 상관없이 참관 당하는 환자에 대한 배려도 없었다. 이로 인해 실습을 돌면서 죄책감이 들고 성범죄자 취급을 받는 기분을 떨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곳 싱가포르는 환자에게도 "학생이 당신 수술에 들어갈 것"이라며 동의를 구할 정도로 이 부분을 확실히 했기 때문에 동의하는 경우 실습을 하고 거부하는 경우에는 안보면 그만이니 서로 불쾌한 감정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 싱가포르 KK여성소아병원 전경.

'미래 세대의 교육'이라는 가치에 동의하는 환자들, 깊은 감명을 받다
셋째 주가 되자 출장으로 부재중이었던 John CS Tee 교수가 돌아와서 남은 2주를 함께 했다. 주로 외래참관을 했는데, 어느 날 교수가 나에게 질경 삽입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모형에는 해본 적이 있지만 환자에게 직접 해본 적은 없다고 하자 교수는 냉으로 온 환자에게 나를 소개하며 질경 넣는 것을 허락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환자가 조금 불편하다며 망설이자 교수는 "물론 불편하면 어쩔 수 없지만 다음 세대를 교육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니 도와달라"고 했다.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환자는 이렇게 말했다. "To educate next generation, it's okay(다음 세대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괜찮다)."

몇 번의 서투른 삽입 끝에 제대로 질경을 넣을 수 있었고 내가 몇 번의 실패를 겪는 동안 환자는 질경을 조금 더 천천히 벌려야 아프지 않을 것 같다면서 다시 한 번 해보라며 격려해 주었다. 그 뒤에 교수님은 다시 한 번 환자의 동의를 구한 뒤에 내가 골반검사를 해볼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자궁경부를 느껴보라고 하셨다.

질경삽입이나 골반검사 같은 술기를 배울 수 있었던 것도 좋은 경험이었지만 나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미래 세대의 교육'이라는 가치에 동의하는 환자들이었다. 산부인과 술기는 환자 입장에선 껄끄러울 수 있다.

그럼에도 다음 세대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동의하는 환자들. 싱가포르나 한국이나 미래에 의사가 될 의대생의 교육은 똑같이 중요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가치에 동의하는 환자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전공의가 자신의 분만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마루타 논란'이 된 사건이 이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환자에게 학생 실습에 대한 양해를 구하거나 실습할 수 있도록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의료계에도 책임이 있다.

실습 위주의 임상실습 목표, 한국은…
저출산국가인 싱가포르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분만을 보기가 힘들다. 싱가포르에서의 실습 마지막 주인 4주차가 돼서야 분만이 생겼다. 교수님은 나에게 분만을 한 번 받아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보았는데 도저히 잘 할 용기가 생기지 않아 거절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아쉽다. 숭고한 탄생의 순간이 지나고 회음절개부를 봉합하는 것을 보다가 KKH에 온 첫날 받은 유인물을 읽어보았는데 현지 학생들의 임상실습 평가기준 및 임상실습 동안 반드시 해야 할 것들이 적혀있었다.

이곳의 의과대학생은 KKH에서 산부인과 실습을 하는 기간 내에 두 건 이상의 분만을 관찰해야 하고 담당교수와 함께 분만을 수행해야 한다. 회음절개술의 경우도 학생이 두 건 이상 시행하는 것이 실습 이수 조건 및 평가에 들어있었다.

외래나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찾아봤더니 외래에서는 모든 신환에 대해 환자의 과거력, 병력 등 진단과 적절한 신체검사를 수행해야 했고 병동에서는 환자들의 생체징후 측정 및 회진준비를 하는 것도 학생의 몫이었다. 대부분의 평가와 임상실습이 실제 술기 시행 및 진료 능력 배양에 맞춰져 있었다.

한국의 임상실습은 환자의 협조가 부족하고 교육에 투자할 시간이 없는 의료현실 때문에 대다수의 임상실습 목표가 '이해한다', '관찰한다', '설명한다'로 이뤄져 있다. 때문에 실제 임상실습을 할 때에도 대부분 관찰하거나 강의를 듣는 것으로 끝난다.

목표가 이론적인 것에 맞춰져 있다 보니 강의로 가득 찬 실습일정 속에서 환자에게 청진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내과 실습이 끝나고 산모의 배 한번 만져보지 못한 채 산부인과 실습이 끝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외과의 어느 교수님은 학생들이 수술방에서 실습하게 됐다고 소개할 때 마다 "네가 무슨 실습을 하냐, 너는 그냥 구경하러 온 학생"이라며 핀잔을 주곤 하셨다. 당시에는 동기들과 이 이야기를 하며 웃곤 했지만 사실 이처럼 한국 임상교육의 현실을 잘 표현한 말은 없는 것 같다.

후텁지근한 날씨의 싱가포르를 뒤로하고 1월 26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영하 기온이 나를 감쌌다. 신촌으로 향하는 공항버스 안에서 4주간 보고 느꼈던 뜻 깊은 경험들을 생각했다. 앞으로 남은 1년의 의대생활도 싱가포르의 4주처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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