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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송건용 의료시장개방 연구
송건용 의료시장개방 연구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2.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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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장과 경쟁

시장이란 공급과 수요가 만나는 장소이다. 시장에서 공급자는 낮은 가격과 높은 질로 승부 하는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된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자연도태 등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곳이 시장이다. 경쟁의 결과는 수요자에게 가격을 낮추어 높은 질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하여 소비자에게 최대의 혜택을 준다. 따라서 공정한 경쟁은 궁극적으로 국민복지의 향상에 기여하기 때문에 권장되는 것이다.

의료시장 개방은 국가간 울타리를 제거하여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어 경쟁하자는 것이다. 이는 문을 굳게 잠그고 우리는 다른 나라에 진출 안하고 다른 나라도 우리 나라에 못 들어오게 하여 우리끼리 경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경쟁임을 의미한다.

우리 안방에서 경쟁력이 큰 경쟁자와의 경쟁이 불가피하고, 우리 또한 외국에 진출하여 그 곳의 경쟁자와 경쟁하게 된다. 따라서 경쟁력이 없으면 국가간 울타리가 없는 의료시장에서 존립이 불가능하게 된다.

WTO 회원국인 우리 나라는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로서 국가간 무역장벽의 제거에 적극적이다. 의료시장의 개방은 불가피한 추세이다. WTO DDA에서 금융, 교육, 법률, 의료 등 서비스 시장개방 일정이 잡혀 있다.

2002년 6월까지 시장개방 양허요구서(initial request list)를 제출하고, 양허안(offer list)은 2003년 3월 31일까지 제출한다. 이후 각국이 제출한 양허안을 기초로 양자간/복수국간 협상을 진행하여 협상결과는 2005년에 각국의 국내 비준절차를 거쳐서 2006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될 전망이다.

협상의 주요 쟁점은 원격의료, 해외소비, 의료기관 설립 운영, 자연인 이동 등이다. 돈벌이를 위한 해외시장 진출은 잠복된 욕망의 실현 기회가 되지만, 같은 목적을 갖는 외국의 국내 의료시장 진입은 경쟁력이 큰 경쟁자와의 한판 승부에서 무너지는 의료기관을 양산할 수 있다. 의료시장 개방은 현실로서 우리 의료시장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많은 변화를 주게 될 것이다.
 
2. 경쟁이 없는 의료시장 : 의료의 치부

우리의 의료시장에는 경쟁다운 경쟁이 없다. 그러니 시장이랄 것도 없다. 우리 건강보험은 그 목적을 낮은 가격으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모든 국민이 향유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는데 두고 있다. 그러니 보험급여 혜택은 확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험료 인상은 특히 의료보험 통합 후 강한 저항에 부딪쳤다.

보험재정은 거덜이 났으니 가격(의료수가)통제와 의료제공자에 대한 규제는 더욱 강화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 의료기관과 의료인은 만성적인 저수가체계에서 견디며 이에 길들여져 왔다. 가격, 의료의 질과 안전성, 환자 만족도 등에 관한 경쟁을 할 처지가 못 되고, 말못할 의료의 치부는 커지고 있다.

먼저 의료가 제공되는 현장을 보자. 인력을 적게 써서 대량 진료, 거의 100% 투약 처방(의원), 3분 진료, 하루 70명 이상 진료 등에는 의료의 질, 안전성, 환자 만족도 등의 개념이 없다. 3차병원은 연구 교육과 외상센터(trauma center) 기능으로 다른 의료기관과 차별화 되어야 하지만 진료에 치중한다.

의약분업 후 외래환자수의 감소는 3차병원의 재정위기를 초래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 종합병원은 큰 것이 좋다는 생각으로 규모를 확대하였으나 진료과목별로 의원과의 기술력에 유의한 차이가 없다. 의료의 하향 평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의료기관 종별 기능 특화와 기술경쟁력의 경쟁이 아닌 규모로서 환자 끌기 경쟁이 우리 시장을 지배한다.

우리 의료시장에서 의료의 질과 환자 만족도의 경쟁은 시도하기도 어렵다. 보험급여비 지급기준은 의료의 규격화를 의미하는데 이 기준을 벗어나면 진료비는 과잉진료로 삭감된다. 새로운 기술, 재료, 약의 사용 등 비급여는 환자부담으로 진료비를 받지만 환급이나 소송 위기를 감수해야 한다.

의료과오(malpractice)의 보호장치도 없다. 의료제공자는 환자가 아닌 돈 주는 쪽(보험자)을 바라보며 몸을 사려 진료한다. 의사는 소신에 따른 적정 진료가 어렵고, 과잉진료로 언론에서 질타 당하여 직업적 긍지와 권위를 포기하여 말썽 없이 안주하려한다. 외과계와 내과계의 전문의간 소득 격차는 미국에서 2배 이상으로 외과계의 소득이 높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

고난도의 위험이 큰 질병의 진료는 우리 나라에서 선호의 대상이 아니다. 의료기술의 발전 바탕이 무너지고 있다. 의약분업 후에는 환자-의사 관계는 더욱 망가졌다. 환자의 건강에 책임지는 의사는 사라지고 환자는 홀로 이 병원 저 병원을 방황한다. 환자가 입원하면 보호자가 기거하며 간호해야 한다. 환자의 의사에 대한 신뢰, 이용 편의성, 안락한 환경 등의 관점에서 환자 만족도는 땅에 떨어지고 있다.

우리 의료시스템도 잘 굴러갈리 없다. 일본식 의료기관(의원, 병원)에 미국식 의학교육(전공의교육)으로 양성된 전문의가 일하고 있다. 그러니 의원과 병원간 입원이나 외래 환자 끌어가기가 치열하다. 의원은 병원 외래를 줄여라, 병원은 의원의 입원진료를 없애라고 다툰다.

공공 보건의료는 명목상 존재한다. 병원의 10%도 안 되는 공공병원은 민간병원과 같은 기능을 하고, 보건소도 치료 중심의 역할을 한다. 공공이나 민간 의료기관은 제 역할과 기능을 알지도 수행하지도 않고 그 모두가 수가가 낮아도 돈이 되는 환자치료에 매진한다.

국민보건의 향상과 질병량의 감소로 의료비를 대폭 감소시킬 가장 효과적 방법인 질병예방과 조기발견의 기능은 어떤 의료기관에서도 하려하지 않는다. 국가도 자기 책임으로 인식하여 수행하기보다 법이나 만들어 예산타령으로 세월을 보낸다.

인구의 노령화에 따라 저렴한 가격으로 만성질환에 대처할 요양과 가정간호(home health care)의 수요가 높아지지만 대응은 미흡하다. 우리 의료시스템은 병을 길러서 각 의료기관이 나누어 값싼 가격으로 치료해주는 시스템이 되었다.

환자와 의사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고난도의 첨단의료 기술이 적용되어야 할 환자는 외국에 나가서 치료받는데 그 의료비는 연간 1조원이 넘는다. 의료비는 여기저기서 새버린다. 현행 의료시스템으로는 외국의 경쟁자와 대적할 수 없다.
 
3. 경쟁력만이 살길이다.

경쟁다운 경쟁이 없는 우리 의료시장은 경쟁력을 키우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경쟁력의 향상은 현재 말못할 의료의 치부를 말끔히 날려버린다는 정부의 발상의 전환과 굳건한 정책의지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첫째, 돈을 적게 받아 의료인을 통제하여 국민에게 최대의 혜택을 준다는 건강보험의 환상은 버려라. 좋아 보인다고 해서 의약분업을, 의료비 절감을 위해 DRG, 포괄수가제니, 총액계약제니 하는 것들을 들먹여 개혁의 이름으로 더 이상 의료인을 통제하지 말아야 한다.

이들 절감책은 선진국에서 의료비가 GDP의 10% 내외인 때 썼다. 의료비가 이들 국가의 절반인 GDP의 5% 내외이고 만성적인 저수가로 의료의 질은 바닥을 기고, 의료시스템이 망가진 우리 나라에는 이들 시책은 실시될 때마다 성과 없이 의료비만 더 증가시킨다.

둘째, 의료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입장을 명확히 하라. 병원은 공익(公益)기관과 사익(私益)기관으로 구분하여, 의료법인 등 비영리병원은 공익기관으로 인정하여 이에 합당한 지원 즉 국공립병원에 준하는 면세, 시설 장비, 운영비(취약지역 병원), 연구개발 및 교육, 응급실, 자선적 진료 등에 적극 지원하고 공익기능을 확대한다.

병원도 전문경영인을 두어 경영효율을 높이고 운영결과를 공표한다. 한편 사익기관으로서 영리병원을 인정하여 돈벌이가 되도록 각종 규제를 풀어야 한다. 미용 피부 및 성형외과, 치아교정, 인공수정 등은 보험 비급여의 대표적 사례로서 가격(수가)통제가 없으면 의료 경쟁력이 향상됨을 보여준다.

외국 환자가 몰려오고, 고난도 의료기술의 발전소지가 마련될 수 있고, 우리 환자의 해외유출 방지에도 기여한다. 의료를 돈벌이가 되는 산업으로 키워서 그 과실이 전국민에게 돌아가게 해야 한다.

셋째, 의료시스템을 재구성한다. 의료시스템을 움직이는 중심인력인 전문의가 제 역할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병원과 의원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고 개원의는 attending physician으로서 병원에서 전문적 진료를 제공하고 병원은 이들 전문의의 진료를 지원한다. 백화점식 종합병원은 없애고 작지만 경쟁력이 있는 병원이 되도록 지원한다.

병원은 자신있는 진료과목을 설치하여 의료기술력을 향상시키고, 의원은 일차기관으로 육성한다. 이런 기능 구획 및 전환에 맞게 수가체계 구조의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병원에 맞지 않는 상대가치에 근거한 현행 행위료 등 수가체계는 뿌리 체 개혁할 필요가 있다.

넷째, 정부는 의료의 양에서 의료의 질과 안전성으로 정책적 관심을 전환한다. 미국의 Medicare는 정부가 관장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의 질과 안전성은 정부가 보장한다. 전공의 교육에 재정지원을 하고 JCAHO가 신임한 의료기관을 요양기관으로 지정한다.

우리 정부는 의료의 질과 안전성에 대한 책임을 재인식해야 한다. 한편, 정부는 질병예방 기능과 국민의 selfcare 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진료비 단가는 2배 상향조정하여 외래 질병량을 반감시켜서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억제하는 하편, 이용자의 의료의 질 향상과 환자의 의료이용만족도를 높이는 시책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의료는 공익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규제가 많다. 따라서 우리가 해외에 진출하거나 외국의 국내진입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외국은 우리의 의료시장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돈벌이가 되는 구석을 오래 전부터 연구하고 준비하여 왔다.

의료시장개방은 피할 수 없는 대세이다. 준비도 대책도 없는 상태에서 시장이 개방되면 국내 시장은 혼란해지고 경쟁력 없는 많은 병의원은 도산할 것이다. 국내 병원을 보호 육성하면서 경쟁력 있는 분야는 최대로 해외에 진출시킬 수 있는 방안이 정부 주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에게 시간이 없다.

3년의 짧은 기간에 우리 경쟁력은 크게 향상되어야 한다. 쌀시장 개방시 농업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10년간 한시적으로 시행한 농특세와 같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의료의 치부를 치유하고 가격, 의료의 질, 안전성, 환자 만족도 등에 관한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 경쟁력 향상수준에 맞추어 단계적으로 시장을 개방하여 의료계가 살고 국민의 의료복지가 증진되는 개방정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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