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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한국의료윤리심의기구협의회 발족 및 공청회 의의
[집중취재]한국의료윤리심의기구협의회 발족 및 공청회 의의
  • 오윤수 기자 kmatimes@kma.org
  • 승인 2002.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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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치료 중단' 성숙 논의구조 마련(오윤수)


이윤성 교수(서울의대·전 의협 법제이사)는 이날 `임종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의료지침'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현재 이에 관한 논의는 정상적인 과정을 밟고 있다. 더 다행인 것은 이 문제가 `엄연한 현실'로서 윤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방향으로 논의구도가 진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주제발표에 앞서 다음과 같은 실례를 소개, 현재 연명치료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했다.

▲사례=K씨는 대학병원 중환자실 앞에서 며칠째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한달전에 고령의 부친이 고혈압성 뇌출혈로 급하게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는데, 증세는 악화일로. 담당의사는 뇌출혈로 뇌 조직은 소생할 수 없는 정도로 손상을 입었고, 현재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면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없어 사망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은 뇌사상태도 아니며, 아마 며칠 사이에 뇌사 또는 심장이 멎는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K씨는 가족들과 상의했다. 그 결과 가족들은 모두 집으로 모시자고 했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태에서 중환자실에서 며칠 더 생존하느니, 집에서 가족들에 둘러싸여 편안하게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진 것이다. 그래서 가족들은 의사에게 퇴원을 요구했다.

그러나 담당 의사는 `보라매병원사건'을 예로 들며 퇴원을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 일목요연하게 압축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환자와 가족, 그리고 진료를 맡고 있는 의사들에게는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마땅한 기준이 없어 모두가 큰 애를 먹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교수는 `무의미한 치료의 중단'을 더 이상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로 치부할 게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를 `윤리적·법적으로 적절하게 해결해야 할 일'로 인식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결정하기에 앞서 ▲회복 불가능의 판단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요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법조계와 종교계를 대표해 참석한 지정토론자들 역시 연명치료 중단문제를 놓고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시행단계까지는 많은 토론과 검증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도균 교수(서울대 법대)는 “윤리지침을 만들기 전에 사회적 동의와 인프라 구축을 위해 무한한 노력이 요구된다”고 전제하고, “출발부터 신중히 접근해야 환자에게 안도감을 줄 수 있고 합의의 토대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연명치료 중단 문제를 놓고 의사·환자·가족들 모두 고민하고 있다”며 “모두에게 필요한 해답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형철 교수(연세대 철학과·한국사회윤리학회장)는 “실정법이 나가야 할 방향은 철학적 윤리가 반드시 바탕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 뒤, “생명이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보진 않지만,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의무'와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의무'는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또 불교계 대표로 나선 김용정 명예교수(동국대)는 “연명치료 중단 문제는 환자와 의사가 결정해야 하는데,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가족 대리인이 참석, 반드시 의사 결정권에 참여하는 구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동익 신부(가톨릭대 교수)는 “죽음이라는 것도 삶의 일부다. 사전(死前)의사결정제도에 대해 깊이 동감한다”고 말해 환자의 의사결정권을 강조했다. 이 신부는 특히 “연명치료 중단 결정 문제를 매듭짓기 전에 의사들의 의학지식의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과 올바르게 형성된 의사의 윤리의식과 양심이 우선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의료계 대표로 나선 허대석 교수는 “암 환자를 다루는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의미있는 삶을 연장하는 차원과는 달리, 의료집착적인 형태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미있는 임종과 의미없는 치료 중단 문제를 놓고 볼때, 법적인 제재를 떠나 환자와 가족들에게 의미있는 임종기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 더 윤리적”이라며 진료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경험과 소신을 털어놨다.

`소극적 안락사' 문제가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의사윤리지침이 발표되면서부터 비롯됐다.

의사윤리지침 제30조 2항에는 “의학적으로 회생의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자율적 결정이나 그것에 준하는 가족 등 환자 대리인의 판단에 의하여 환자나 그 대리인이 생명유지 치료를 비롯한 진료의 중단이나 퇴원을 문서로 요구하는 경우, 의사가 그러한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을 허용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면서 의사는 그 결정을 소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이와 함께 지난 5월 3일 제30차 의협 종합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임종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의료윤리지침(제1보)'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즉, 환자의 동의(informed consent)와 치료유보 및 치료중단, 무의미한 치료, 임종환자의 이송과 자의 퇴원에 대한 개념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외국의 사례는 어떠한가.
이윤성 교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91년 `환자의 자기결정법'을 만들어 환자와 의료 제공자 사이의 갈등을 줄이도록 했으며, 이웃 나라인 일본의 경우에도 62년 나고야 고법의 안락사 사건과 95년 요코야마지법의 동해대학 안락사 사건 이후, 치료중지에 관한 기준과 요건을 확립했다고 소개했다. 일본은 또 민간운동 차원에서 존엄사협회가 `living will'을 만들어 이에 대한 의미와 내용을 보급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최근 많은 나라들이 과다한 연명치료에 대한 회의가 커지고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기준과 요건만 충족된다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입법화 할 움직임도 내보이고 있다.

이 교수는 “우리가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며 “요건만 충족된다면, 환자의 사전지시서(advanced directives)나 생전유언(living will)제도를 적용하는 것도 좋은 방책이 될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또한 주제발표자로 나선 연세대 유호종교수(보건대학원)는 `연명치료 중단의 정당성과 제도적 보완장치'라는 주제를 통해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치료중단의 정당성 여부와 그 타당성 조건이 분명하게 밝혀지고, 또 이에 대한 합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유 교수는 “2001년 공포된 의료윤리지침과 금년 5월 의학회가 발표한 세부지침안 역시 많은 사회적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며 “이런 중대한 문제는 사회적 차원에서 결론이 날 때까지 충분한 논의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공청회는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성숙된 논의구도가 마련됐다는 점 이외에,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룰 수 있는 `한국의료윤리심의기구협의회'가 발족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공청회 이후 준비위원회측은 창립취지문을 발표한데 이어, 협의회 회칙 마련과 집행부 임원진을 구성했다.

한국의료윤리심의기구협의회는 창립 취지문을 통해 “치료중단을 포함하여 의료현장의 여러 윤리적 현안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하여, 올바른 의료를 지향해 나가는 역할을 담당해 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분명한 것는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문제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논쟁의 대상이다.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모쪼록 이번 의료윤리심의기구협의회 발족을 통해 바람직한 의료문화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특히 실정법에 저촉된다는 이유를 내세워 지금까지 회의적인 태도 내지 팔장만 끼고 있는 정부도 적극적인 자세를 갖고, 해법 마련에 나서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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