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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외과의사가 손에게 환영받다

손외과의사가 손에게 환영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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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12.0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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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인하의대 교수 인하대병원 성형외과)

얼마 전 벨기에의 부루지(Bruges)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하는 길에 화가 루벤스가 활동하던 앤트워프(Antwortp)라는 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 도시 한 가운데 강이 흐르고, 그 강에는 다리가 있었으며, 다리를 건너 시청 앞에 가면 큰 분수가 있는데, 그 곳에는 한 소년이 무엇을 던지고 있는 조각상이 있었다(사진 1).

▲ 사진 1. 앤트워프 분수대의 소년상.

자세히 보니 그 소년이 던지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잘린 손이었다.

안내원의 설명으로는 예전에 Druon Antigoon이라는 거인이 그 다리에서 통행료를 받았는데, 돈이 없거나 돈을 내지 않으려 하면 손목을 잘라 버렸다. 이를 보다 못한 Silvius Brabo라는 용감한 소년이 용감하게도 그 거인의 손목을 잘라 강에 던져버렸으며, 이로 인하여 도시는 손목을 잘리는 공포에서 해방됐다. 중세 유럽은 참 무서운 곳 이었구나, 그 시절에 손이 잘린 경우에 다시 붙이지는 못하였을 것이니, 잘린 자리는 어떻게 봉합해 목숨이라도 건지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 깔린 가로수 길을 걷다보니 뾰족지붕이 다닥다닥 붙은 주택가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조각상의 잘린 손을 생각하니 얼마 전에 수술한 25세 여자환자가 떠올랐다.

막 퇴근하려던 참에 전공의 3년차의 다급한 호출이 전해졌다. 응급실에 가보니 얼굴이 하얗고 가녀린 여자환자의 왼손이 붕대로 덮여 있었다.

"어떻게 다쳤어요?"
"해파리 자르는 기계에 손이 들어갔어요."

어보니 왼쪽 둘째·셋째·넷째 손가락이 국수 가락 같았다. 해파리냉채를 만들려고 재료를 기계에 밀어 넣다가 손이 말려들어갔던 것이다.

"저, 피아노 칠 수 있나요?"
"뭐라고요?"
"선생님께 수술 받으면 피아노를 칠 수 있나요?"
"……."

나는 대답을 못했고, 그 날 집에도 못 갔다. 수술을 어느 정도 해 놓고 보호자를 만나 설명하려는데, 둘째손가락의 떨어져나간 작은 끝(Stump)을 보호자가 찾아가지고 왔기에 다시 수술실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환자의 간절한 염원을 신이 들어주셨는지, 몇 달 뒤 그 환자는 피아노를 다시 칠 수 있게 됐으며, 한 학기 휴학했던 대학원에 복학했다.

성형외과 의사로서 얼굴의 외상을 주로 치료하고 있지만, 젊은 사람에게는 그 손에 미래가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정년퇴임이 꼭 10년 남았다. 나이가 들어가도 손외과의사로서의 길을 이어가는 것은 이런 환자가 가졌던 것 같은 간절한 소망을 지켜주고 싶어서이다.

피아노 소리를 뒤로하고 더 걷다보니 사람의 키보다도 큰 손모양의 석조물이 눈에 들어왔다(사진 2).

▲ 사진 2. 손모양 석조물 옆에 선 필자.

손바닥을 펴고 수평으로 누워있기에 손외과의사인 나를 환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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