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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도서국가 보건의료 역량 강화 2차년도 사업을 마치고
남태평양 도서국가 보건의료 역량 강화 2차년도 사업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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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12.0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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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좌섭(서울의대 교수 의학교육학교실)

▲ 신좌섭(서울의대 교수 의학교육학교실·이종욱 글로벌의학센터)
대한민국 외교통상부와 태평양도서국가포럼(Pacific Island Forum, PIF) 간에 맺어진 한-PIF 협력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되는 '남태평양 14개 도서국가 지역사회 보건의료인력 역량강화 사업'의 2차년도 사업이 올해 8월 27일부터 9월 27일까지 5주 동안 신혼여행지로 잘 알려져 있는 피지에서 서울대병원 공공의료사업단과 서울의대 의학교육학교실 주관으로 실시됐다.

지닌해 시작돼 내년까지 3년간 계속되는 이 사업은 피지·통가·니우에·솔로몬 등 남태평양 14개 도서국가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비전염성 만성질환(비만·당뇨·고혈압·고지혈증 등)의 빈도와 합병증을 줄이기 위해 각 나라의 지역사회 보건의료 인력을 피지에 초청, 한국과 피지 의료진이 함께 교육한다.  

올해 2차년도 서울의대 교수 9명이 강사진으로 참여했고, 피지에서도 이안 루즈(Ian Rouse) 피지의대 학장 등 10여명의 교수가 강의를 하였다. 필자는 이 사업이 시작된 지난해부터 프로그램을 기획·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한편 지역사회 개발·리더십·프로페셔널리즘·성인교육 방법론 등을 교육하고 있다.

이 사업은 ▲선진국-신흥원조국-개발도상국의 삼각협력을 기본 틀로 하고 ▲다른 원조 프로그램에서 잘 다루지 않고 있는 만성질환 퇴치를 목표로 하며 ▲지역사회 주민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인적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특성들을 갖고 있다. 개발도상국을 위한 공적개발원조에서 보건의료 분야의 중요성이 날로 부각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 사업의 특성과 교훈을 함께 나누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선진국-신흥원조국-개발도상국 '삼각협력'
이 사업은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열린 제4차 원조개발 총회에서 강조된 '삼각협력'을 모델로 하고 있다. 삼각협력이란 선진국(이 경우 대한민국)과 신흥원조국(피지) 및 개발도상국(피지 보다 상대적으로 뒤져있는 섬나라들) 3자간의 협력을 말한다.

현재 많은 개발도상국 의료인이 한국에 와서 연수를 받고 있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변신'한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기술로 의료인 교육에 앞장서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과거 우리나라도 '미네소타 프로젝트' 등을 통해 선진국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으로의 초청연수는 몇 가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 질병분포가 한국과 많이 다른 나라에서 온 연수생들의 경우 정작 자기 나라에서 중요한 질병에 관한 교육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둘째, 한국과는 의료 테크놀로지 격차도 큰 나라 연수생들의 경우 한국에서 배운 하이테크 의료는 정작 자기 나라에서는 그림의 떡이다.

셋째,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인 의료행위가 제한되고 있고 환자들이 개발도상국 의료인에게 진료받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실습을 통한 학습이 어렵다. 넷째, 언어 장벽으로 효율적인 학습이 어렵다. 일부 개발도상국 의료인의 경우 영어에 익숙하지 않으며, 국내 의대나 병원에서도 영어로 회의나 진료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정부와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한국국제협력단(KOICA) 등은 이같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업은 이같은 노력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업에서 한국의 파트너 역할(신흥원조국)을 하고 있는 피지는 질병분포가 다른 14개국과 유사하고, 의료기술 수준은 약간 앞서 있다.

외모나 문화적으로도 차이가 없으며 라이프스타일도 비슷하고 영어를 쓴다는 점에서 교육에 적합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삼각협력은 신흥원조국을 중간협력자로 참여시킴으로써 신흥원조국의 책무성과 주인의식을 고취하고 미래의 원조자원을 개발한다는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물론 삼각협력은 양자협력에 비해 당사자가 하나 더 많기 때문에 협력관계 구축에 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실제로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사업을 진행하면서 PIF 및 피지의대와 문화적 차이 때문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비 내린 뒤 땅이 굳는다'는 속담처럼, 시간이 갈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 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현장 요구에 맞춰 만성질환 퇴치 목표 설정
지난해 5월 외교통상부의 요청으로 피지를 방문했을 때만 해도 사업팀은 모자보건이나 전염성 질환과 같이 개발원조 분야에서 보다 익숙한 영역을 교육주제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지조사 후 사업팀은 현장의 요구를 가장 중시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지역의 만성질환 발병률은 세계최고 수준이다. 남태평양 도서국가 인종은 비만·당뇨·고혈압 등 만성질환에 취약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데, 서구사회의 원조가 시작되면서 패스트푸드 위주로 식습관이 변함에 따라 만성질환 유병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 되었다는 것이다.

피지에서 클리닉을 운영하는 김현희 박사에 따르면 원래 피지 사람들은 기골이 장대하고 호리호리하며 건강한 체질이었는데 서구문물을 접하면서부터 비만 등 만성질환이 급증하게 됐다고 한다.

강사로 참여한 조영민 교수(내분비내과)는 남태평양 도서국가 원주민의 20-40%가 당뇨병을 앓고 있으며, 인구 80만명의 피지에서만 해마다 400여명이 당뇨 합병증으로 다리를 절단하는 상황에 말을 잃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교육 참가자들은 이같은 상황을 빗대어 자신들이 '만성질환으로 인해 멸종 위기에 처했다'고 표현한다.

올해 교육이 진행되던 9월 18일 남태평양 도서국 보건부 차관단이 한국을 방문해 이 사업에 대한 토론하는 기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많은 국가의 차관들이 이 사업을 자기 나라에서 시행해주기를 요청한 데에서도 이 지역에 만성질환이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주민들 삶 속으로 파고드는 인적역량 개발
올해 교육에는 모두 32명이 참가했으며, 지난해 수료자 24명 가운데 9명도 마지막 2주 동안 참가했다. 5주 가운데 먼저 3주는 만성질환 관리를 위한임상교육을, 나머지 2주는 지역사회 개발·프로페셔널리즘·리더십·성인교육 방법론을 다루었다.

만성질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생활습관과 삶의 문화를 바꾸기 위해 주민들의 일상적 삶 속으로 파고들어가야 한다는 의미에서 편성된 후반부 2주간의 교육은 참가자들의 열성적인 참여 하에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지역사회 개발·성인교육 방법론 등의 세션은 토론 중심의 참여적 교육으로 진행됐는데, 남태평양 특유의 친화성과 유머감각 덕분에 하루종일 웃음으로 가득했다.

2주의 교육기간 중 지난해 참가자들에게 주어진, 교육 이후 지난 1년의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많은 진전을 이루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참가자는 지역사회 변화를 위해 하나 이상의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었고 개인의 삶에서도 큰 변화를 겪고 있음을 보고했다.

교육을 마칠 때 일부 참가자들은 내년 교육에서는 시작할 때 체중·혈압·혈당·콜레스테롤 등을 측정하고 끝날 때 다시 측정해 수치를 비교함으로써 참가자들이 '말한 대로 실천하도록(Walk the Talk)' 강제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지역사회 의료의 리더로서 자신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만성질환 퇴치를 위한 지역사회 보건의료 역량 강화를 목표로, 삼각협력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사업은 우리나라 보건의료 국제원조의 개발효과성을 높이기 위한 또 하나의 시도였다. 충분히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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