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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불은 포괄, 청구는 행위별...정부의 기막힌 아전인수

지불은 포괄, 청구는 행위별...정부의 기막힌 아전인수

  • 고신정 기자 ksj8855@doctorsnews.co.kr
  • 승인 2012.07.09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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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여비용 명세서에 행위별 진료내역 기재 의무화 '논란'
의료계 "행정편의주의 전형" 심평원 "질 담보 최소 조치"

정부가 포괄수가제 급여비용 청구시, 행위별 진료내역 일체를 함께 기재하도록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는 특정 행위에 대해 그 내용과 관계없이 정해진 수가를 지불한다는 포괄수가제도의 기본 성격과 배치되는 조치.

정부와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측은 의료의 질을 담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입장이지만, 의료계는 '감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전형적인 행정편의 주의이자 책임 떠넘기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포괄수가제 청구방법 어떻게 달라졌나
 

포괄수가제 청구화면.

7월 포괄수가제 강제시행과 더불어 포괄수가제 청구방법도 일부 개정됐다.
 
가장 눈에 띄는 조치는 요양급여비용 명세서상 '행위별 진료내역'을 진찰료부터 비급여 항목까지 별도로 기재하도록 한 것. 행위별 진료내역란은 7월 포괄수가제 강제시행과 더불어 신설된 항목이다.
 
정부는 의료기관으로 하여금 7개 질병군 환자가 내원하면 적절한 진료를 시행한 뒤 포괄수가제로 그 비용을 청구하면서, 명세서 상에는 진료와 처치·검사 내역을 상세히 적어내도록 했다.
 
예를 들어 만성 비염(J310) 및 편도 비대(J351) 환자가 2일 동안 입원해서 편도적출술(Q2300)을 받았다고 가정하면, 의료기관은 급여비용 명세서에 ▲기본진찰료 ▲의약품관리료 ▲간호관리료 등을 비롯해 ▲주사료 ▲양쪽 편도적출술 수술비 ▲병리조직검사 등 검사료 ▲마취료 등 처치와 검사에 사용된 모든 행위항목 일체를 함께 표기해야 한다.
 
명세서 상에는 각각의 행위비용을 합한 '행위별 총 진료비'도 함께 표기돼 포괄수가제로 책정된 금액과의 직접 비교도 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포괄수가 적용대상 환자가 퇴원할 경우에는 '의료 질 향상을 위한 점검표'도 함께 작성해 첨부하도록 했다.
 
점검표는 △수술 전 검사시행 여부 △입원 중 사고 여부 및 감염증·합병증 여부 △퇴원시 환자 상태 등 크게 3개항, 7개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의료기관에서는 이를 체크해 급여비용 청구시 함께 제출해야 한다.
 
명세서를 잘못 기재하거나 필수 기재항목이 누락된 경우에는 명세서 반송에 따른 진료비 지급지연, 혹은 거부 등의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의료계 "행위내역 비용산정과 무관...가격-진료 모두 통제하려는 의도"

 
의료계는 달라진 청구방법으로 크게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특히 급여비용을 포괄로 지급하는 상황에서, 명세서에 행위내역을 모두 적어 내도록 한 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불만이 높다.

서울의 한 안과 개원의는 "포괄수가제가 시행되면 진료내용과 관계없이 특정 항목당 동일한 비용을 지급받게 되는 것 아니냐"면서 "비용 산정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데도 명세서에 진료행위 내역을 모두 적어내도록 한 것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정부가 포괄수가제 하에서도 의료기관의 진료내역을 빠짐없이 훑어보고 감시하겠다는 의도"라면서 "이는 특정 행위에 대해 그 내용과 관계없이 정해진 수가를 지불, 의료인에 진료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포괄수가제도의 유일한 장점마저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안과 개원의 또한 "결국 모든 치료는 정해진 대로 빠짐없이 하되, 그 가운데서 각자 재주껏 비용을 줄여 나가라는 얘기"라면서 "이는 가격과 진료내용 모두를 통제하겠다는 의도로, 포괄수가제도가 결국 진료비 통제를 위한 제도라는 것을 정부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정부가 포괄수가제 강제시행을 위해 의료계의 이해를 구하는 과정에서 청구방식의 단순화 등을 제도의 장점으로 소개해 왔다는 점도 의료계의 반감을 부추기고 있다.

한 산과 개원의는 "정부는 포괄수가제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청구가 단순화되어 업무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해왔으나 결국 거짓말이었다"면서 "청구시 각각의 행위별 진료내역을 입력해야 하는데다, 환자 퇴원시 점검표까지 적어야 해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오히려 업무 부담이 크게 늘어났다"고 꼬집었다.
 
"의료 질 담보 최소한의 조치" vs "말바꾸기 넘어 책임 떠넘기기"

이에 대해 심평원 측은 의료 질을 담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해명했지만, 의료계를 설득하는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심평원 관계자는 "명세서상 진료행위 내역을 적도록 한 것은 의료 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면서 "의료계와 학계 등이 참여한 논의과정에서 포괄수가제 도입시 의료기관이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진료과정까지 생략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으로 진료행위를 함께 적어 넣도록 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해명했다.

진료행위 기재와 의료 질 점검표의 기능이 중복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의료 질 점검표는 말그대로 의료의 질을 점검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항들만을 묻고 있다"면서 "시행초기 혼란이 있겠으나 각각이 담는 정보가 다르므로, 내용을 잘 숙지해 정확한 청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밝혔다.

의료계는 "앞 뒤가 안 맞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개원가 한 관계자는 "포괄수가제 논란과 관련, 제도가 시행되어도 의료 질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정부 측의 일관된 논리였다"면서 "이제와 의료의 질을 담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가 필요하고, 그것이 행위별 수가와 마찬가지로 명세서에 진료행위를 일일이 적는 것이라고 하니 기가 막힌 아전인수"라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포괄수가제로 의료의 질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큰 소리 쳐놓고 고작 하는 일이 의료기관에 모든 업무를 떠넘기는 것이냐"면서 "의료기관이 점검표도 적고, 진료행위 내역도 다 적어주면 정부가 하는 일은 도대체 무엇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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