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 톺아보기 (3)
법률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인간이 만들다보니 때로는 모순된 조항이 들어가거나 해석이 애매한 경우도 많다. 의사와 관련이 깊은 의료법도 마찬가지다. 어떤 조항은 해석이 애매하고 어떤 것은 서로 상충되기도 한다. 의료전문 법무법인 LKpartners(엘케이파트너즈)는 의료법의 이런 문제들을 찾아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의료법 톺아보기'를 통해 애매한 법률조항을 명쾌하게 풀어본다. |
자문을 맡고 있는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제발 환자 좀 퇴원시켜달라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계속 의료진을 막 대하던 중년 남자 환자가 드레싱을 위해 테이프를 땔 때 아프게 했다고 간호사에게 칼을 휘둘렀다는 것이다. 아니 테이프를 아프게 뗐다고 칼을 휘두르다니. 경호팀을 통해 환자로부터 사과를 받아낸 후 퇴원조치를 시켰다.
가끔 의료계에 계신 분들로부터 진짜 진료하기 싫은 환자가 있는데 안하면 안 되나요? 라는 질문을 받는다. 우리나라 의대는 의료인은 환자의 요구가 있을 때 진료를 거부할 수 없으며, 만일 거부할 경우에는 형사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가르친다고 한다.
그러한 영향으로 거의 모든 의사는 진료를 거부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현재 의료계의 상황을 반영한다면 진료거부는 언감생심,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끌어들여야 할 판이다. 따라서 의료인이 진료거부를 하는 경우는 정말로 예외적인 경우다.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완치 안 되면 소송할 테니 알아서 하시라'는 환자, 의사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욕설을 하거나 거친 행동을 하는 환자, 의사의 지시에 전혀 따르지 않으면서 병이 낫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환자, 여자 의사나 간호사에 대해 성추행적 행위를 일삼는 환자 등.
아무리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였다고 하지만 인간적으로 보기 싫은 환자도 있을 수밖에 없는 법이다. 현행 의료법 제15조 제1항은 의료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환자의 진료 요청을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동법 제89조에 의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짐은 물론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에 의하여 자격정지 1월의 행정처분까지 받게 된다.
최근에는 이러한 내용이 잘 알려져 있어 의사가 진료를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면 환자들이 위 조항들을 근거로 수사기관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하는 경우도 많다. 상황이 이렇다면 법률에 규정된 '정당한 사유'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중요한데 판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어 해석이 분분하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정당한 사유'의 예시로 시설 및 인력이 없거나, 진료일정 때문에 불가피하거나, 의사가 아픈 경우 등과 같은 8개 사항을 열거하고 있다. 그러나 유권해석의 대부분은 진료를 할 수 없어 진료를 거부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진료거부(진료할 시설 및 인력이 있음에도 진료하지 않는 경우)에 대한 정당한 사유라 볼 수는 없다.
의료진이 진료거부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오히려 환자들이 이를 악용하는 경우가 있다면 법률에 명시적으로 '환자가 의료인의 지시에 명백히 따르지 않는 경우, 환자나 그 보호자가 의료인에게 폭언이나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 등과 같은 정당한 사유 등'과 같이 예시를 들어 주는 것은 어떨까. 의료진도 진료거부를 할 수 있는 사유가 좀 더 명백해 진다면 오히려 진료를 위한 더 나은 환경이 조성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좀 더 나은 의사-환자 관계가 형성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