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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포괄수가제와 선택의 자유

시론 포괄수가제와 선택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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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6.0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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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석(현대중앙의원장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 이사)

▲ 이현석(현대중앙의원장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 이사)

20세기 경제학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을 꼽으라면 흔히 존 케인즈와 밀턴 프리드만을 꼽는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면서 시카고 학파를 이끌었던 밀턴 프리드만은 경제적 자유의 본질은 우리들 자신의 소득의 사용방법, 소득 중 얼마만큼을 우리 자신을 위해서 쓸 것인가, 어떤 항목에서 쓸 것인가, 얼마만큼 어떤 형태로 저축할 것인가, 얼마만큼 누구에게 줄 것인가에 등등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시행되었던 금주법을 그 사례로 든다. 비록 좋은 목적의 법이지만 소비자의 선택을 강제로 제한함으로써 결국은 수많은 범죄자가 양산되었고, 주류는 밀매되었으며 술을 찾는 일반 소비자들이 비싼 값에 술을 사먹는 부작용만 양산한 후에 결국 폐지되었던 것이다.

현재 7개 질병군 포괄수가제(DRG) 당연적용에 대하여 정부와 의료계가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아마도 의료계에서는 DRG의 실시는 신기술이나 새로운 약이나 치료재료의 사용을 제한하게 되며, 중증 질환이나 부작용 발생시 최선의 진료를 하기 어려워져 의료의 질 저하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며, 중증 환자를 주로 보는 병원의 경우 오히려 비용 면에서 불이익을 보는 제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우리나라와 같은 저수가 체계에서는 적정한 DRG 수가 책정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결국 최선의 진료보다는 최소 비용의 진료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시하는 것 같다.

반면 복지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포괄 수가제 적용시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를 일축하고 있다. 그 근거로 7개 질병군 포괄 수가제 발전방안 연구 결과(2009, 충북대 강길원)를 인용해 포괄 수가제를 시행한 의료기관간 재입원율 차이가 없고, 포괄수가 적용 의료기관의 환자만족도는 96%로 행위별 수가 의료기관(87%)에 비해 높게 나타난 점을 들었다.

또, 복지부는 "7개 입원환자에 대한 수술건수나 진료수준이 높은 전문병원 대부분이 현재 포괄수가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포괄 수가제와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제도를 단기간 실시했을 때 의료 질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다만 제한된 수가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는 상황이 될 경우 새로운 의료 기술의 개발과 도입에 대한 동력이 떨어져 장기적으로 다른 분야의 의료 발전 수준을 이어가지 못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된다.

사실 외래진료만 보고 있는 필자는 포괄수가제 적용여부에 따른 영향은 전혀 받지 않는 입장이다. 그러나 같은 사안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가 극단적인 대립을 보이는 현상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필자가 레지던트 시절인 1990년대 초 모 대형 교회에서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환자를 지원하면서 심장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과 개별적으로 포괄수가제를 내용으로 하는 계약을 맺었으나 필자가 근무하던 병원을 포함한 다른 병원은 응하지 않았던 적이 있다.

즉, 환자의 입장에서는 금액이 결정되어 미리 예산을 세울 수 있는 병원을 원하는 경우와 비용에 관계없이 최선의 진료만을 원하는 경우에 따라 적절한 병원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포괄수가제를 모든 의료기관이 채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더군다나 복지부는 5월 21일 열린 심포지엄에서 지난 2002년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7개 질병군에 한해 DRG 제도를 시행한 결과, 초기 57.5%의 참여율에 비해 지난해 10월에는 72.6%까지 참여율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포괄수가제를 선호하는 환자들이 많은 병원에서는 환자들의 요구를 거부하면서까지 포괄 수가제를 무시하지는 않고 있다는 의미이다. 반면 경우에 따라서 비용이 더 들더라도 최선의 진료를 받기를 원하는 환자가 많을 경우에는 굳이 포괄수가제를 시행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즉 환자와 병원 모두 포괄수가제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 선택의 자유도 존중해 주는 것이 당연히 정부의 의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같은 병원에서 포괄 수가제와 행위별 수가제를 환자가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의료는 그 특성상 비용보다는 최선의 진료를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가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질환은 예기치 못하게 발생하므로 돌발적인 비용의 부담이 문제가 된다.

따라서 치료를 받기 전에 미리 치료비를 알 수 있다면 많은 경우 환자의 입장에서는 도움이 될 것이다. 반면에 경제적인 문제와 무관하게 진료에만 관심이 있는 환자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환자가 어떤 선택을 하던 그것은 온전히 환자의 몫이어야 한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스스로 선택했을 때 만족도가 높게 마련이다. 특히 건강에 대한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분야이다.

그리고 정부에서 밝힌 것처럼 현재 '입원환자에 대한 수술건수나 진료수준이 높은 대부분의 전문병원을 포함한 72.6%의 병원이 참여'하고 있고 또 참여 병원이 증가하는 추세라면 포괄 수가제를 원하는 환자들의 권리는 어느 정도 충족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행위별 수가제를 굳이 제한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행위별 수가제를 고집하는 병원이 적극적으로 신기술을 도입하고 이것이 다른 의료기관으로 확산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환자와 의료기관의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여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프리드만 교수가 주장하는 자유의 개념에도 적합할 것이다.

등소평의 그 유명한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처럼 포괄수가제와 행위별 수가제에 대한 논란보다는 환자와 의료기관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 이 글은 의협신문의 입장이나 편집 방침과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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