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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최선의 진료냐 적절한 진료냐

시론 최선의 진료냐 적절한 진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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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5.1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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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훈정(충북 금왕삼성연합의원 대한의사협회 감사)

▲ 좌훈정(충북 금왕삼성연합의원 대한의사협회 감사)

작년 초, 건강보험을 주제로 한 라디오방송의 시사토론회에서 조그마한 해프닝이 하나 있었다.

건강보험 재정의 한계를 이유로 급여의 제한적인 배분을 주장하던 어느 패널(건강보험정책 심의위원회 가입자 대표이기도 한)에게 사회자가 '그러면 패널이 보시기에 국민들은 적절한 진료를 원하느냐 아니면 최선의 진료를 원하느냐'라고 질문하자 엉겁결에 '적절한 진료'라고 대답한 것이다.

그러자 바로 다른 패널(건정심 공익 대표)이 끼어들어 이를 수습하려는 듯한 답변을 이어나갔다.

'적절(適切)'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는 '정도가 꼭 알맞다'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적절한 진료'라는 말은 보건의료계에서는 대개 '과다한 비용을 지출하지 않는 진료' 내지 '건강보험 급여수준 내의 진료'라는 뜻으로 통용된다. 반면 최선의 진료는 당연히 비용을 생각하지 않는 가장 최고 수준의 진료를 뜻한다.

치료를 받는 환자의 입장에서는(특히 중환자일수록) 두 말 할 것도 없이 최선의 진료를 원한다.

그러나 국가의 보건의료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한정된 재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모든 정책은 '최선의 진료'를 전제로 지향하게 된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지만.

건정심 위원들이 '적절한 진료'라는 단어를 금기시까지는 않더라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국민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고 건강보험료까지 부담하는 국민들로서는 돈이 없어서 최선의 치료를 받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물론 최선의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애써 이를 외면하거나 정부나 '사회'가 대신 부담하기를 바란다.

최근 포괄수가제(DRG) 확대 실시를 놓고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악화일로에 있다. 정부는 현행 행위별수가제도 하에서 일어날 수 있는 과잉 진료를 막고 그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줄이겠다고 한다. 말은 그럴 듯하지만 결국 돈이 없으니 '최선의 진료'가 아니라 '적절한 진료'를 하라는 뜻이다.

현재 통용되는 의료비 지불의 여러 수단들 중에서 최선의 진료에 가장 유용한 것은 행위별 수가제도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 단점인데, 적어도 생명을 좌우하는 의료비만큼은 아끼지 않으려는 사람의 마음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지금 논란의 초점인 포괄수가제는 어떤 질환의 치료에 대해 진료비를 미리 정해놓고 그 안에서 치료를 하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비용은 다소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환자 개개인의 질환 상태에 따른 맞춤형 진료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그나마 개인적 편차를 줄일 수 있는 질병분류체계의 재정비나 중증도·난이도에 따른 예외조항 신설 등도 미비한 채 오로지 돈만 줄이겠다는 것이다.

포괄수가제 확대실시를 찬성하는 정부나 시민단체 등은 미국이나 여타 OECD 국가에서도 실시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그러나 한 꺼풀 뒤집어 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선 포괄수가제를 가장 먼저 도입했던 미국의 경우 보편적인 의료보험을 도입하고 있지 않는 국가다.

사회적인 통제 없이 증가하는 의료비를 억제하기 위해 '메디케어'라는 제한적인 부분에 일부 도입했을 뿐이고 그러한 맥락에서 조금 확대 실시되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사회보험으로서 의료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국가들의 경우 이미 의료비에 대한 사회의 통제가 가해지고 있어, 추가로 이를 더 압박할 경우 '적절한 진료'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최선의 진료'에서는 점차 더 멀어진다는 뜻이다.

또 사회보험 의료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들에서도 포괄수가제는 주로 공공의료 분야에서 예산의 책정과 효율성을 위해 실시하고 있다. 역시나 최선의 진료와는 거리가 있다.

더욱 황당한 사실은 포괄수가제가 행위별 수가제도에 비해 의료비 절감 효과도 크지 않다는 것이다. 입원 치료 당시의 비용은 다소 줄어들지 몰라도 퇴원 후 외래 치료 빈도 증가나 재입원율 증가 등으로 인해 중장기적으로는 거의 같다는 것이 포괄수가제를 도입한 여러 나라의 통계에서 증명되고 있다.

결국 사회보험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이미 의료비가 사회적인 통제로 억제되고 있어, 추가적인 지불제도의 변화가 재정절감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의료의 질만 떨어진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건강보험 재정이 부족해 국민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기 어렵다면 정부의 역할은 당연히 재원을 더 마련해 이를 해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도외시 하고 오히려 국민에게 질 낮은 의료서비스를 받도록 강요하고 있다. 가정의 생활비가 모자라면 돈을 더 벌어 와야 할 가장이 이를 외면하고 처자식에게 밥을 덜 먹으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포괄수가제를 주장하는 정부나 건정심 가입자단체들은 이제 솔직해져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이 부족하니 이제는 최선의 진료를 받는 것은 포기하고 적절한 진료를 받으라고 국민에게 말해야 한다. 그것은 이미 작년의 시사토론회에서 드러나지 않았나.

더 이상 과잉진료니 뭐니 하면서 '최선의 진료'를 다 하고 있는 의사들에게 책임을 덮어씌우지 말고, 사람의 생명보다 돈이 우선이라고 커밍아웃 하는 편이 스스로에게 떳떳한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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