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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디캡과 물물교환, 그리고 장애인(障碍人)과 잔애인(殘碍人)
핸디캡과 물물교환, 그리고 장애인(障碍人)과 잔애인(殘碍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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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4.30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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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不具), 불리한 조건, 장애를 나타내는 용어로 handicap이 있다. 이는 선천적 또는 후천적으로 정신적, 육체적 결함이 생겨 정상적인 생활에 지장이 있거나 능력에 제한을 받는 것을 말하며 hand in cap이 줄여져서 handicap으로 된 것이다.

이 용어는 17세기 중엽 영국의 물물교환 방식에서 유래되었다. 즉 두 사람이 가치가 다른 물건을 서로 교환하고자 할 때 제3자를 판정관으로 내세운 다음 이들 세 사람은 각자 내기에 걸 돈을 모자에 넣고 손을 모자에 넣었다.

판정관은 두 사람의 물건(예를 들어 금시계와 말 한 마리)의 가치를 설명하고 가치가 낮은 물건을 가진 사람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액수를 제시하였다. 이 액수에 대하여 거래하고자 하는 두 사람은 모자에서 손을 꺼내면서 동의 여부를 표시하였다.

만약 두 사람이 모두 동의하면 거래는 성사되나 그렇지 않을 경우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때 내기한 돈은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였건 일치하지 않았건 상관없이 일치하였을 때는 모두 판정관이 갖게 되나 의견이 다를 경우 동의한 사람이 갖게 된다.

여기에서 손을 모자에 넣어 감춘다는 의미에서 hand in('i) cap이라고 하고 이것이 handicap으로 변하게 되었다. 18세기에 들어서는 경마(競馬)에도 핸디캡 규칙이 도입되었다. 즉 잘 달리는 말과 그렇지 못한 두 마리의 말이 경주할 때 판정관이 잘 달리는 말에 일정 무게를 지게 하여 경주하게 하였으며 이를 handicap match(race)라고 하였다.

19세기에 들어서 이 용어는 스포츠를 포함하여 모든 분야에서 균등한 조건을 만들기 위하여 우수한 대상에 대하여 불이익을 주는 방법으로 확대하여 사용하였다. 의학에서는 장애를 가리킨다. 현대 영어에서 불구, 불이익, 불리한 조건 등의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은 1915년 이후이다.

의학에서 핸디캡을 가진 사람, 즉 다치거나 질병을 앓은 후 남아있는 비정상적인 형태와 기능을 가진 사람의 기능과 형태를 회복시키는 것을 재활, rehabilitation이라고 한다. 이는 라틴어의 re(다시)와 habilitas(능력)가 합쳐진 용어이다. 이 용어 자체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되찾다’라는 뜻이다. 즉 육체적이나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이 어떤 직업 또는 작업에 종사 할 수 있게 하는 과정을 말한다.

장애인을 과거에는 handicapped, crippled 등의 용어를 사용하다가 요즘은 disabled라고 한다. 우리말도 과거에 쓰던 불구자에서 장애인으로 바뀌었다. 아마 보다 인도적인 용어로 순화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전 용어도 그러하지만 ‘disabled, 장애인’이라고 하는 것 역시 언어의 뉘앙스로 볼 때 어떤 비정상적인 상태가 고착된 것, 다시 말해서 이 용어는 과거완료형인 것으로 영원히 정상 상태로 되지 못한다는 느낌, 즉 절망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하지만 현재 수준의 의학으로서는 이러한 장애상태를 정상화시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의학이 발달하게 되면, 예를 들어 줄기세포치료가 실용화된다면, 언젠가는 정상 상태로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용어 자체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었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중국에서는 장애인을 병이 아직 남아 있다는 뜻으로 잔질인(殘疾人)으로 쓴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이들이 현재로서는 질병이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병의 후유증으로 장애가 남아있을 뿐이라는 뜻으로 잔애인(殘碍人)으로 쓰는 것은 어떨까 하고 제안해 본다.

이번 호를 끝으로 ‘의학용어에 숨겨진 이야기’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이 칼럼을 애독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제까지 연재한 의학용어를 포함하여 약 2200개의 용어를 선정하여 “의학용어에 숨겨진 이야기 사전”이라는 제호로 군자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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