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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진료할 때 환자 몸 건드리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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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석영 기자 lsy@doctorsnews.co.kr
  • 승인 2012.02.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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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의사 10년 취업 금지…'방어진료' 우려
악의적인 협박·고소 무방비 노출 '위헌 소지'

 

Cover Story

#사례 1

소아청소년과 개원의 B원장은 이른 아침부터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한 중년 여성이 병원을 찾아와 B원장이 미성년자인 자신의 딸을 성추행했다며 난동을 부린 것. 진료를 핑계로 다리를 쓰다듬고 가슴을 만졌다고 주장한 여성은 당장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했다.

소문이 두려워 대충 합의하고 넘어갈까도 생각했지만, 용기를 내어 자진해서 경찰에 신고한 B원장. 경찰 조사 결과 이 여성은 인근 병원을 돌아다니며 똑같은 협박을 일삼고 합의금을 뜯어 온 상습범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동·청소년 성추행시 10년간 의사면허 정지를 당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B원장은 앞으로 환자를 진료할 때 가급적 신체 접촉을 하지 말아야 겠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례 2

서울의 모 대학병원에서 성실히 근무하던 전공의 A씨(남). 최근 지하철에서 여성의 몸을 더듬었다는 이유(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기소돼 법원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출근시간 혼잡한 지하철내에서, 몸이 서로 밀착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속에 벌어진 일이라 억울하기 그지 없었으나, 더이상 병원업무에 지장을 줄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항소를 포기했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한 것은 그로부터 6개월 뒤. 병원장이 A씨에게 해임통보를 보낸 것이다.

앞으로 10년간 의사로서 일할 수 없다는 사실도 그 때 처음 알게됐다. 평생의 꿈이던 의사의 길을 포기한 A씨는 영어학원 강사로 새 삶을 시작하려 했으나, 그마저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고개를 떨구었다.

※위 사례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 후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가상한 것임.

의사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법률 하나 때문에 요즘 의료계가 시끄럽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 오는 8월 2일부터 발효되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의료계는 이 법이 "환자 진찰하지 말라는 법"이라며 매우 격앙된 분위기다.

반면 환자측은 "의사 입장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라고 비난한다. 조두순 사건, '도가니' 사건 처럼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끔찍한 성범죄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을 놓고 뜬금없이 의사와 환자가 다투는 이유가 무엇일까? 의료계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법의 취지에는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은 환자, 즉 국민에게 오히려 해가되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법률의 조건 상당부분 충족 못해

개정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법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아동 또는 성인대상 성범죄로 인해 형 또는 치료감호를 선고받아 확정된 의료인은 형·치료감호의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이 유예·면제된 날부터 10년 동안 의료기관에 취업할 수 없다.

또 보건복지부장관은 성범죄로 유죄판결이 확정된 의료인이 의료기관에 취업했는지를 점검·확인할 수 있고, 확인 결과 성범죄 전과자가 의료기관에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의료기관의 장에게 해당 의료인의 해임을 요구할 수 있다.

만약 의료기관의 장이 1개월 이내에 정당한 사유 없이 해당 의료인을 해임하지 않은 경우, 의료기관을 폐쇄시킬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앞으로 성범죄로 처벌받은 의료인은 10년간 의사면허가 정지되는 것이다.

우선 이 법은 기본적인 법체계에 들어맞지 않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은 아동에 대한 성범죄 종류를 미성년자에 대한 강도·강간·업무상위력에 의한 간음 등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그런데 성인에 대한 성범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모법은 물론 시행령·시행규칙 어디에도 명시돼 있지 않다.

단지 시행규칙 내에 포함되어 있는 '범죄경력 조회 회신서', 즉 관할 경찰서장이 "○○병원에 성범죄 저지른 의사가 근무하고 있다"라는 내용의 문서를 보건복지부에 보낼때, 취업 제한의 대상이 되는 성인대상 성범죄가 무엇인지 참고하라는 의미로 적혀 있는 '성인대상 성범죄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 제1항의 죄를 의미한다'라는 문구가 전부다.

즉 의료인이 성폭력특례법 제2조 제1항을 위반해서 처벌받은 경우 '10년 취업제한'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모법이 아닌 하위법령을 근거로 성범죄의 범위를 규정하는 것은 법의 일반적인 체계에 어긋난다는 것이 법조계의 지적이다. 현두륜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서식'은 말 그대로 문서 양식일 뿐 법적 효력은 없다"며 "모법이나 시행령·시행규칙에서 다뤄야 할 내용을 단순히 서식에 포함시킴으로써 법의 예측가능성을 떨어뜨리고, 집행기관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여지를 남겨놓은 문제점이 있다"고 꼬집었다.

인터넷 음란물 적발돼도 10년 면허 정지

문제는 또 있다. 성인대상 성범죄의 대상, 즉 '성폭력특례법 제2조 제1항'의 범위가 지나치게 폭넓다는 점이다.

형법상 강간·강제추행은 물론 음행매개(성매매 중개)·음화반포 및 제조(음란 서적 등 제조·유포)·공연음란죄가 모두 해당된다.

특히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에서의 추행(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 인터넷을 통한 음란물 게시·유포(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 음란 사진 촬영(카메라를 이용한 촬영) 등도 모두 취업 제한 대상이 된다. 인터넷 블로그에 음란 사진을 게시했다는 이유로 의사 생활을 10년간이나 접을 수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법 취지와 관련 없는 성매수·윤락·간통도 취업 제한 대상에 해당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성인대상 성범죄는 상대방의 동의 없이 위력·위계를 사용해 상대방에게 가하는 성폭행 등의 행위를 의미한다"며 "상대방의 승낙 및 동의에 의한 성매수·윤락·간통·공공장소에서의 스킨쉽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같은 해석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 지난해 11월 경찰청은 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 등 부처 합동으로 전국 아동·청소년 관련 시설 27만곳 종사자 139만명의 성범죄 경력을 조회하고 성범죄 전력자 27명을 해당부처에 통보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범죄 유형 가운데 성매매가 10명으로 가장 많았다는 사실이다. 카메라 도촬범과 음란물 제작자도 포함돼 있었다. 실제 행정현장에선 이미 의료계의 우려가 현실화 되고 있는 것이다.

죄질 따지지 않고 무조건 10년

처벌의 수위도 논란이 되고 있다. 성범죄를 저질러 처벌받은 형량과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10년간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다. 특히 현행 의료법 상으로도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은 '품위 손상 행위'로 면허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면허정지 기간이 죄질에 비해 너무 낮다면 기간을 상향조정할 수도 있다. 의료인의 면허를 규제하는 내용을 굳이 의료법이 아닌 법을 통해 규정하면서 형량과 무관하게 '10년'으로 기한을 못박은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김일중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취업을 10년 동안 제한한다는 것은 의사에게 사형선고나 다름 없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성범죄는 법으로 처벌받고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범죄"라면서 "그러나 죄질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1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개인의 생업을 중단케 하는 것이 과연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적절한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강조했다.

2011년 7월 대법원은 자신의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조무사의 엉덩이를 두드리는 등 강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모 병원 의사에게 벌금 4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만약 이 의사가 올해 8월 2일 이후에 확정판결을 받았더라면 의사면허가 10년간 정지된다.

여성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한 신체 접촉 행위는 법적·도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과연 국가에서 부여한 면허를 10년이나 박탈할 정도의 죄질인가의 문제는 성범죄에 대한 국민의 법감정을 배제한 상태에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따져보아야 한다는게 의료계의 시각이다.

이경권 변호사(법무법인 대세·분당서울대병원 법무담당 교수)는 "면허취소 사유가 되려면 보험사기의 경우 형법상 사기죄로 징혁을 선고받거나 리베이트 수수의 경우 금고 이상 처벌을 받아야 하는 등 특정 형량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형의 과중을 따지지 않고 벌금 부터 징역까지 모든 형에 대해 10년간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법률의 비례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또 있다. 이 법률은 취업 제한 대상 범죄를 아동·청소년 성범죄 뿐만 아니라 성인에 대한 성범죄까지 포함하고 있으며, 취업 제한 기관을 '모든 의료기관'으로 정하고 있다.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의 제정 목적은 성 범죄로부터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고 아동·청소년 성범죄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취업제한 의료인을 성인대상이 아닌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로 한정하고,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의료기관은 취업제한 대상 의료기관에서 제외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지적이다.

 

의사에 대한 악의적 협박 우려

의사들이 가장 분노하는 부분은 이 법률이 의료의 특수성을 조금도 감안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행위 대부분이 환자의 몸을 만지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의사가 환자의 '몸을 만지는 행위'가 정당한 의료행위인지 성추행인지 여부를 구별하는 것은 결코 간단치 않다. 진료를 위한 신체 접촉이 환자에게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성추행으로 느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언제든지 열려 있는 것이다.

실제로 치질수술, 유방미용성형, 산부인과 내진 등 통상적인 의료행위가 환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시켰다는 이유로 의료인이 고발당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와 치과의사협회·한의사협회는 최근 공동 의견서를 통해 "강제추행, 준강제추행 등 의료의 특수성으로 인해 의료인에게 의도치 않게 발생할 수 있는 개연성있는 범죄들이 많다"며 "환자들이 느끼는 상태에 따라 의료인이 성범죄자로 매도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환자들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료계의 우려에 대해 "환자들의 이성적 판단을 무시하는 태도"라고 반박했다. 환자 역시 의료의 특수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악의적인 환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의사들이 현실적으로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바로 성추행을 빌미로 의료인을 협박·고소하는 행태가 만연할 것이라는 점이다.

본지가 최근 의사 98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법 시행으로 가장 우려되는 점에 대해 약 67%의 응답자가 "의사에 대한 악의적인 협박, 고소·고발"이라고 답한 사실은 '성범죄 의사 취업 10년 제한'에 대한 일선 의사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감의 크기를 실감케 한다<설문조사 결과>.

대법원은 2009년 10월 "추행하려는 의도와 목적이 없었더라도 상대방이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켰다면 성추행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성추행 여부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전적으로 피해자의 '느낌'에 달려 있는 이상, '악의적인 환자'를 걱정하는 의사들의 주장을 결코 이기적인 모습으로만 바라보아선 안된다는게 의료계의 주장이다.

방어진료 조장…피해는 국민에게

의사들의 두려움은 결국 방어진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의료법 제4조는 의료인이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무규정을 담고 있다. 하지만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의 시행으로 일선 의사들은 의무와 현실 속에서 상당한 혼란을 겪게 됐다.

최근 전국의사총연합은 성명을 내고 "의사의 전문성과 윤리성은 의사 스스로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러한 환경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며 "의료인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몰아간다면 의사들은 가장 기초적인 진료행위인 진찰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성범죄를 예방·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오히려 국민에게 해악을 끼치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수도권의 한 개원의는 "내가 언제든지 성추행범으로 피소돼 10년간 의사 생활을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슴 한켠에 품고 있으면서, 어떻게 환자를 소신껏 제대로 진료할 수 있겠나?"라며 한숨 지었다.

국회 통과까지 단 한번도 논의 없어

의료계가 이토록 많은 문제점을 지적하는 법률이 국회에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 논의되었을까?

오랜 논의 끝에 사회적 합의를 거쳐 통과됐어야 할 법률이 국회 상임위에 상정돼 본회의까지 통과되는데 걸린 시간은 놀랍게도 10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민주통합당 최영희 의원이 발의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여가위) 전체회의에 상정된 것은 지난해 11월 4일이다.

여가위 산하 법안소위를 통과한 것은 같은 달 16일, 다시 여가위 전체회의에서 의결된 것은 12월 22일이다. 이어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되어 의결된 후 다음 날인 30일 국회 본회의를 최종 통과했다.

본지가 입수한 여성가족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속기록을 살펴보면 일련의 법안 심의 과정에서 '성범죄 의사의 취업제한 10년' 규정 신설에 대해 의원들이 의견을 교환한 사실은 단 한차례도 없다. 단지 법안을 상정하고 의결하는 형식적 절차만 있었을 뿐이다.

지난해 11월 16일 열린 여가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임중호 수석전문위원(차관보급)이 개정안에 대해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으며, 회의에 참석한 김태석 여성가족부 차관 역시 "같은 의견"이라고 답한 것이 국회에서 이뤄진 논의의 전부다.

특정 직역의 취업을 10년간이나 제한하는 규제를 신설하면서 아무런 논의가 없었던 것은 개정안에 반대하는 측의 입장을 철저히 외면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가위의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 심사보고서'에는 "의료인이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 이들이 다시 의료행위를 하는 것을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현실이므로, 의료기관 취업이나 사실상의 노무를 제공할 수 없도록 하는 개정안은 타당하다"는 원론적 입장만 들어 있을 뿐, 관련단체 의견이나 외국의 사례 등을 검토한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에 대해 여가위 전문위원실 관계자는 "규제를 신설하는 법안의 경우 단체의 의견은 예외없이 '반대' 뿐이어서 특별히 의견을 조회하지 않는다"며 "해외사례 검토 등에 대해서도 특별한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이해할 수 없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위헌법률심판 제기 충분히 가능"

이명진 의료윤리연구회장은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을 '인기영합주의'라고 비난했다. 영화 '도가니' 열풍과 의대생 성추행 사건으로 성폭력 범죄에 대한 국민 감정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국회가 충분한 검토없이 '한건주의'에 매몰돼 졸속 처리했다는 지적이다.

이 회장은 "법의 목적은 아동과 청소년의 성보호에 있는데, 보호하는 내용은 없고 처벌만 있다"며 "애초부터 설계가 잘못된 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이란 누구나 수긍하고 참여하고 싶어해야 실효성이 있다"면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이 큰 법률에서 실효성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최보문 한국의료윤리학회장도 "최소한 1년 동안 의료계와 시민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며 법률 개정 추진과정에서의 아쉬움을 드러냈다.

현재 의협은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의 개정을 위해 다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우선 성인 대상 성범죄의 구체적의 범위를 명확히 할 것을 여성가족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을 촉구 중이다.

또 벌금형만 선고 받아도 취업 제한 대상에 포함되는 규정을 바꿔 '금고형 이상'으로 개선토록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법률개정 작업과는 별도로 이 제도를 악용해 의료인을 협박하는 환자에 대해서는 협회와 해당 의료기관이 함께 민형사상 적극적인 법적조치에 들어간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헌법소원, 위헌법률심판 제청 등을 통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 침해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 계획이다.

현두륜 변호사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은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절성, 법익의 균형성, 제한의 최소성 등 '과잉금지의 원칙'을 지켜야 하며, 이를 위배할 경우 위헌"이라며 "의사의 취업을 10년간 제한하는 법규정은 충분히 위헌소지를 다툴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 "의료계 입장 적극 수렴할 것"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정부가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에 대해 의료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앞으로 법 개정 작업 과정에서 의료계 의견을 적극 수렴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강정민 여성가족부 아동청소년성보호과장은 "앞으로 의료계 등 관련 단체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필요하다면 법률이나 시행령·시행규칙 개정 작업에 나설 것"이라며 "이를 위해 조만간 연구용역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구 범위는 의료인 취업제한의 적정성, 취업 제한이 되는 성인대상 성범죄의 타당한 범위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가부는 연구용역 중간보고서가 나올 즈음 의협 등 관련단체와 본격적인 의견을 교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8월 시행 전에 시행령·시행규칙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료계 요구에는 난색을 표했다. 강 과장은 "개정된 법률이 시행되기도 전에 하위 법령에 손을 대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일단 6개월 이상 시행과정을 지켜보고 드러나는 문제점을 향후 개선 작업에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강 과장은 "아동과 청소년이 가지 않는 의료기관까지 취업 제한 대상 의료기관에 일괄적으로 포함된 부분은 손을 대야 할 것 같다"며 법률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일부 인정하기도 했다.

독립적인 면허관리제도 도입 절실

이번 사안을 계기로 실효성 있는 의사면허 관리 시스템을 마련해 논의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가에서 부여한 면허가 일시적인 여론 분위기에 휩쓸려 쉽사리 정지·취소되는 상황은 전문직 종사자의 직업 수행 안전성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며, 이는 결국 사회적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공정하고 신중하게 의사면허를 관리하는 제도를 갖추고 있다. 미국의 면허국(Board of state)이나 영국의 GMC(General Medical Council) 등이 그것이다.

이명진 의료윤리연구회장은 "이들 기구는 정부 관리·법률가·성직자들이 위원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해당 과목 전문가·의료윤리전문가·개원의로 구성해 공정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회장에 따르면 이들 기구는 의회로부터 사법권을 부여받아 조사권을 행사하며, 결정된 징계 사항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의사 개인 이력에 평생 따라붙도록 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 회장은 "매우 공정하고 신중하게 징계절차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의사들이 면허기구 결정에 반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이처럼 공정한 의사면허 관리는 의사·국민 모두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전문가를 처벌하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그들의 윤리를 강요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전문직 종사자 스스로 자율정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밝혔다.

최보문 한국의료윤리학회장도 "사회라는 매트릭스 안에 있는 의사들에게 개인의 도덕성과 윤리의식만 강조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시스템 마련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또 환자의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진료시 주의할 사항을 정리한 '진찰실 가이드라인'을 일선 의사들에게 보급하는 등 현실적인 방안도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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