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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의료인문학' 발전을 위한 제언

시론 '의료인문학' 발전을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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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6.1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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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진(의료윤리연구회장)

의료윤리학(medical ethics), 의학사(medical history), 의철학(philosophy of medicine) 세부분으로 이루어진 의료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의사들이 환자를 대하면서 반드시 알아야만 되는 영역이다. 하지만 현대의학이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의학교육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의료인문학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었던 우리 의사들에게 큰 빈 공간으로 남아있다. 앞으로 우리나라 의사들이 채워야 할 큰 숙제로 남아 있다.

얼마 전 한 오피니언 그룹에서 의료인문학을 의사국가고시 문항에 포함시키자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먼저 이러한 훌륭한 제안을 들고 나온 오피니언 리더들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여러 가지 좋은 의견들이 제시됐다.

의견이 하나로 수렴된 것도 있고, 더 깊은 논의를 통해 합의를 이뤄 나가야 할 부분도 있었다. 결국 의료인문학을 전국 의과대학 교육과정에 뿌리내리게 하는 적극적인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심포지엄을 통해 필자가 느낀 점은 방법론을 택하기 전에 먼저 의료인문학 개념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료인문학이 의료윤리학·의학사·의철학 세 부분으로 이뤄져있다는 개념을 갖고 접근하면 문제해결이 쉬울 것 같다.

심포지엄에서 의과대학 교육에 의료인문학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과 실현가능한 부분만 시험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뤄졌다. 필자는 이러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보다 구체적인 의료인문학 발전을 위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의료인문학 중에서 의료윤리 부분은 의사가 진료를 하거나 의학연구를 하면서 꼭 알아야 할 부분이기에 국가고시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는데 필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전문직 영역에서 의료계 뿐만 아니라 일부 성직자들의 타락, 법조인들의 비윤리적인 행위들로 인해 이들에 대한 위상과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 이들은 그들의 위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 윤리교육을 포함한 많은 노력을 시작했다.

의료계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의료윤리교육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의사들이 진료현장에서 환자나 동료 의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윤리적인 문제들을 접하면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김 할머니 사건을 통해 생명의료윤리 문제가 대두됐다. 황우석 사건을 통해 연구와 출판윤리에 관한 문제가 노출됐다. 무분별한 할인진료와 진료실 성추행사건을 통해 진료현장의 질서가 어지럽혀졌다. 의사의 직업윤리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을 올바로 판단하고 행동하는데 필요한 지식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많이 당황하고 분노했지만 이에 관한 대처방법(survival tool)들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배울 기회도 없었다. 지금 의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의료윤리에 관한 명확한 지식(survival ethics)이다.

의료윤리교육을 크게 세 부분으로 설정을 해 놓은 일본의 경우를 참조할만하다. 이들은 의사로서 지녀야할 직업윤리, 생명과 의료행위에 대한 의료윤리, 의학연구에 필요한 연구윤리로 정해 놓고 접근하고 있다.

현재 법조계의 경우 변호사가 되는 과정인 로스쿨에서 법조윤리를 1, 2학년 때 이수하도록 하고, 학점을 취득해야만 졸업 후 변호사 시험을 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50개 주 중에서 2개 주를 제외하고 모두 전미법조윤리시험(Multistate Professional Responsibility Examination)을 필수적으로 치러야 한다. 주마다 차이는 있지만 최소한 75점 이상을 맞아야 한다.

성직자의 경우 미국에서 가장 큰 성직자 단체인 침례교에서는 목사가 되기 위해 성직자 윤리과목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만 한다. 이와 같이 성직자와 법조인들은 성직자윤리와 법조인윤리 과목이 이미 자격시험에 포함돼 있다. 성직자나 법조인들이 전공시험보다 더 어렵다고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만큼 전문가로서 더 많은 지식과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라는 반증이다.

어둠 속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길을 알려주는 빛이 필요하다. 의료윤리는 바로 빛이다. 어두운 의료환경을 헤쳐 나갈 생존의 무기(survival tool)가 되어줄 것이다. 의사국가시험에 의료윤리과목 채택은 이러한 필요를 해결해주는 가속제가 될 것이다.

이제 의사들도 의사가 되기 위해 의사로서 갖춰야할 기본적인 직업윤리와 생명윤리, 연구윤리를 의과대학 교육과정에 속히 도입해야 한다. 의사국가시험에 의료윤리과목이 들어가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판단된다.

나머지 의철학 부분은 표준화와 국가고시시험이라는 틀로 인해 오히려 부작용만 낳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시험보다는 의과대학 과정 중 에세이를 쓰는 방법으로 접근했으면 한다. 생명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그리고 질병과 고통의 문제들에 대한 주제들을 정해 놓고 제시된 주제들에 대해 몇 편의 에세이를 제출하는 방법을 채택하면 어떨까.

한국의과대학장협의회는 2006년도 의료인문학 교육과정 표준화 사업의 일환으로 '의료인문학 교육과정 개발 연구'를 통해 각 대학들이 의료인문학 교육과정 개발과 실행에 활용할 수 있는 주제들을 선정했다.

이 협의회에서 제안한 의료인문학 주제들을 에세이 주제로 채택하면 의철학을 통한 비판적인 사고와 통합적인 사고를 통한 의사상 정립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적용방법으로는 기존 예과와 본과로 구분된 의과대학 체제에서는 예과에서 본과로 올라갈 때 2000자나 4000자 분량의 에세이를 자신이 선택한 주제로 2∼3편 제출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의학전문대학원 체제의 경우 입학전형으로 에세이를 같은 방식으로 선정해서 제출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 이미 외국의 경우 의과대학 과정 중에 이러한 과정을 시행하고 있는 학교들이 늘어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이러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기계적인 사고에만 익숙해 있는 한국의사들의 철학적 사고의 빈곤이 언제 바닥을 드러낼지 모르는 상황이다.

우리는 의료인문학이라는 창을 통해 환자와 소통하고 환자의 고통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의료의 본질은 환자를 위해 존재한다. 환자를 위해 의사가 되었고 되려고 한다면 의사로서 갖춰야할 의료윤리와 의철학, 그리고 의사의 역사를 공부하고 이해함으로써 이 시대와 미래의 인류가 바라는 의사상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의료윤리를 몰라서 저지르는 비윤리적인 행위가 발생해서는 안된다. 의철학을 통해 철학적 사고의 빈곤과 환자와의 소통의 부재를 극복하고, 삶과 죽음, 그리고 고통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깊이 고민하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

의사의 역사를 바로 해석하고 이해함으로써 현재 의료계가 처해 있는 어려운 상황을 역사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예측해서 우리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 그리고 각 의과대학 뿐만 아니라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제도적 지원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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