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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뛰어든 의사 "내 사전에 '철밥통'이란 없다"

이공계 뛰어든 의사 "내 사전에 '철밥통'이란 없다"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1.04.2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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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뇌과학연구소 소장

 
국민을 내 가족처럼, 환자를 내 생명처럼'을 내건 대한의사협회 제33차 종합학술대회(대회장 경만호·대한의사협회장)가 2011년 5월 13∼15일 서울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종합학술대회 조직위원회(조직위원장 김성덕·대한의학회장)와 <의협신문>은 33차 학술대회를 맞아 '릴레이 탐방 33인-진료실 밖에서 한국의료의 길을 묻다'를 기획했습니다.
이번 릴레이 탐방은 의사회원 가운데 진료실 밖으로 나가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 주인공을 만나 ▲다른 길을 걷게 된 동기 및 배경 ▲일하면서 느끼는 보람 ▲외부에서 바라 본 의사 사회 ▲의사 회원에게 하고 싶은 말 등을 들어봄으로써 한국의료와 의사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기획입니다.

종합학술대회 직전까지 연재되는 '릴레이 탐방'에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주>

'사람은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에이브라함 링컨이 남긴 명언. 신희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 소장을 보고 처음 떠오른 말이다.

하회탈을 연상시키는 그의 얼굴은 굽이굽이 아름다운 주름이 져 있다.평탄하지만은 않은 삶이지만, 사람 좋은 웃음에서 긍정으로 꽉 찬 도전정신이 읽힌다.

이제는 의사라는 호칭보다 과학자라는 호칭이 더 친숙한 신희섭 소장을 만나 뇌과학 연구 외길을 걷게 된 계기를 들어봤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의사 출신 신경과학자로서 독보적인 지위를 인정받고 있는 그는 "특별할 게 하나도 없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 ⓒ의협신문 김선경

치매 발병원인·통증억제 물질 규명 등 혁혁한 성과

지난해 국내 연구진이 '사이코패스'의 원인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는 소식이 학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회자됐다. 화제의 주인공은 신희섭 소장을 주축으로 한 KIST 신경과학센터.

신 소장은 어떠한 기전(인과관계)이 뇌에서 이뤄지는지 알게 되면, 그 다음 공감능력이 저하된 경우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며 사이코패스 치료법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사회적으로 문제시된 사이코패스가 왜 생기는지를 알아내는 데는 'L타입 칼슘통로'를 제거한 돌연변이 생쥐와 일반 생쥐가 동원됐다.

뇌전문가로 통하는 신 소장의 모든 연구에는 생쥐가 함께한다. 사람의 뇌와 비슷하면서 유전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생쥐를 대상으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면서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는 갖가지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이다. "뇌의 각종 유전자 기능을 알아내는 것은 새로운 약물 개발의 표적을 찾아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그는 설명했다.

오랜 시간 연구에 매진한 끝에 신 소장은 치매의 발병 원인과 희로애락의 감정 연원을 밝혀내고, 공포유전자와 간질유전자, 통증을 감소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는 유전자와 통증 억제 메커니즘 등을 최초로 발견했다. 지금껏 <네이처>·<사이언스> 등 세계적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만 80여 편에 달한다.

의대 졸업 후 뇌과학 한 획 긋기까지

▲ ⓒ의협신문 김선경
신 소장은 의대와 공대, 연구소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이력을 쌓은 이공계의 스타로 알려져 있다. 서울의대 재학시절 뇌해부학을 재미있게 공부한 그는 졸업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코넬대 의대에서 발달유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에는 포항공과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로 자리를 잡았다.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가 아닌 이상 꼭 의대에 남을 필요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환자를 보는 일 보단 연구에 매달리는 게 좋아 과학자로 진로를 정했어요. 뇌신경을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는, 우리 삶의 모든 면면이 뇌기능과 관련돼 있기 때문입니다. 뇌과학은 모든 개인 활동과 사회생활의 기본이에요. 아이템이 무궁무진하죠."

신 소장은 "뇌를 빼버리면 인류는 동물의 역사가 된다. 우리가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들이 다 뇌기능에 의한 것"이라며 신이 난 표정으로 이론을 설명했다.

가령 남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는 뇌의 어떤 부분이 작용하는지를 연구할 수 있고, 음악을 들었을 때 느끼는 감흥을 뇌기능과 연관시켜 분석해볼 수도 있다.이러한 특성으로 경제학·심리학 등 다른 학문과 교류할 수 있다는 점 또한 뇌과학이 가진 매력적인 요소로 꼽힌다.

교수 10년에 연구원 선택…정년 이례적 연장

포항공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구를 병행한지 꼬박 10년 되던 해, 신 소장은 결단을 내렸다. 하고 싶은 연구에만 전념하기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돼 있는 대학교수직을 박차고 나온 그의 선택에 주변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포항공대에 있을 때도 지원은 넉넉한 편이었지만 좀 더 넓은 세계로 나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연구원도 불안정한 직업은 아닌데 아무래도 교수에 비해서 그런 인식이 있는 듯 하더군요. 따지고 보면 교수도 철밥통은 아닌데요.(웃음)"

올해로 KIST 정년인 61세가 된 신 소장은 65세까지 연구소에 남아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됐다. 정부출연기관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정년 연장이라는 혜택이 주어진 것이다.

이 같은 보상 외에도 한탄생명과학상·함춘의학상·듀폰과학기술자상·호암상·KIST인 대상·AFH렉처십상·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이 그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안정이나 지위에 얽매이지 않고 열정에만 집중한 결과다.

"자신감이라고 해야 되나, 순진하다고 해야 되나. 시쳇말로 '안전빵'이라고 하는 것들에 집착해본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어디 가도 쓸모가 있지 않겠냐는 막연한 생각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뇌과학 연구가 가지는 무한한 잠재력에 남은 생을 바치고 싶다는 신 소장은 "임상의사들도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토양이 하루빨리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며 "의대 후배들도 뇌과학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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