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의사의 수기·모르핀

젊은 의사의 수기·모르핀

  • 이영재 기자 garden@doctorsnews.co.kr
  • 승인 2011.03.2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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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불가코프 지음/이병훈 옮김/을유문화사 펴냄/1만 2000원

20세기 러시아 문학의 백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는 아포리즘을 남긴다. 창작의 자유를 억압해도 문학과 예술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을 쓴 이는 미하일 불가코프.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블라디미르 이바노비치 달리(1801~1872)·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1860~1904)를 이어 러시아문학의 의학적 전통을 이은 의사작가이다.

이번에 국내 처음으로 소개되는 <젊은의사의 수기·모르핀>은 불가코프의 연작단편집과 중편소설이다.

저자는 사회주의 혁명이 휩쓸고 간 자리에 의대를 졸업하고 처음 현장에 나간 젊은 의사가 어떻게 환자들과 함께 적응하며, 실제 수술은 어떻게 이뤄졌고, 또 약물중독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의 흔적을 좇는다. 저자는 작품 곳곳에 젊의 시골의사의 눈을 통해 비친 비판적인 사회상을 녹여내며 때로는 불안과 염려를 내보이고 때로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연작단편집 <젊은 의사의 수기> '수탉을 수놓은 수건'·'주현절의 태아 회전술'·'강철로 된 목'·'눈보라'·'칠흑 같은 어둠'·'사라진 눈'·'별모양의 발진' 등 일곱편의 작품을 품고 있다.

의대를 방금 졸업한 새내기 의사는 기차역에서 수십킬로미터 떨어진 벽촌에 배치된다. 의사라고는 그가 유일한 곳이다. 경험도 없고, 조언을 해 줄 선배나 동료도 없다. 약이나 달라는 환자에게 수술을 안하면 죽는다고 소리지르기도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런 수술을 책에서나 봤을 뿐이다. 그는 매일 눈앞이 캄캄해지는 일을 만나고, 의사가 되려 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저주하면서도 하루 백 명의 환자를 보게 된다.

이야기는 이런 상황에서 이어진다. 

작품 속에는  "죽지만 않게 해 주신다면 불구가 되고 좋다"는 절규가 있고, 수술에 임박해서 의학교과서를 들춰보다가 결국 수술에 들어가면 책을 던져 버리는 장면도 있다. 도시생활에 젖어 있던 작가가 시골생활을 하면서 겪게되는 고독과 외로움에 대한 토로가 있고,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먼 발걸음에도 결국은 생명을 구할 수 없었던 안타까움도 나타난다. 복약지도와 다르게 약을 먹는 민중의 몽매함을 계도하는 진심어린 몸짓도 내보이고, 의사로서 피할 수 없는 오진을 겪으며 새롭게 작가의 길을 모색하는 고뇌도 드러난다. 저자는 작품집을 갈무리하며 의사의 길이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운 길인지를 되뇌이며 부와 명예가 따르지 않더라도 가야할 길임을 다짐한다.

액자소설인 <모르핀>은 저자 자신이 디프테리아 발병후 기관절개수술을 받고 마취제에 중독된 경험이 그대로 옮겨진다.

"목에 촉감이 느껴지는 첫번째 순간, 이 촉감은 따뜻해지고 온몸으로 퍼진다. 갑자기 평치끝에 서늘한 파도가 지나가는 두번째 순간이 찾아온다. 그 다음에 생각이 아주 분명해지고 작업 능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모든 불쾌감이 중지된다. 이것은 인간의 영적 능력이 발현되는 가장 높은 지점이다."

시골생활의 외로움과 우울함이 더해졌던 저자의 모르핀 중독은 대도시인 키예프로 옮기면서 벗어나지만, 저자의 경험은 모르핀 중독 상태가 마치 꿈속같이 현실에서 경험하기 힘든 상황을 연출하는 문학적 장치로 활용된다.

이 책을 옮긴 이병훈 아주대 교수(기초교육대학) "20세기 들어 러시아 문학은 혁명과 반혁명, 유토피아와 반유토피아, 낡은 형식 파괴와 새로운 형식의 실험 등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면서도 의학적 전통은 발전적으로 계승된다. 이 책을 통해 이러한 역사적 전통을 새롭게 발전시킨 불가코프의 진면목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02-734-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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