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19 19:35 (금)
기본에 충실해야 '공정의료'

기본에 충실해야 '공정의료'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0.12.29 17:12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회적 합의 통해 기본 급여범위 정하고, 그외는 개인 선택영역 보장해야
박호진 의협 윤리위원 '時代精神' 최근호서 '건강권과 건강보험의 공정성' 짚어

<<입으로 피를 토하는 70대 환자가 한 밤중에 응급실에 실려왔다. 내과의사는 위내시경으로 위궤양으로 인한 동맥파열을 진단했다. 특수부속기구인 긴 주사기를 삽입, 지혈접착제를 투여했으나 출혈은 멈추지 않았다. 가까스로 내시경 클립 4개를 사용해 혈관을 잡아 지혈하는데 성공했다. 이 환자에게 시술한 내시경치료술 수가는 9만원. 환자 본인부담은 2만원(20%) 가량이었다. 3일 뒤 완쾌한 환자는 퇴원했다.

하지만 건강보험공단은 이 환자에게 지혈제를 사용한 것은 부당진료라며 청구한 7만원은 물론 진료비 환수조치를 통해 환자가 부담한 2만원까지 다른 진료비에서 빼앗아 환자에게 돌려줬다. 환자에게는 의사가 과잉진료를 하고, 부당진료비를 징수했다는 공문까지 보내 신뢰에 치명적인 금을 가게 했음은 물론이다.

현행 보험급여기준에는 클립을 사용할 순 있지만 환자에게 비용을 받을 경우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1㏄에 9만원하는 지혈접착제는 보험적용이 되지만 내시경 주사기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청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으며, 환자에게 비용을 받지도 못하도록 하고 있다.

동맥파열을 지혈하지 못하면 사경을 헤맬 수 있는 환자를 위해 숙련된 의사·간호사가 고가의 내시경장비를 동원해 시술을 했더라도 행위료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클립(1개 1만 5000원×4개=6만원)과 내시경 주사기(6만원)  모두 환자에게 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병원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감당하라는 것이다.

심장병으로 항혈소판제를 먹고 있는 이 환자의 출혈을 내시경시술로 막지 못했더라면 더 큰 위험을 안고 개복수술을 할 수밖에 없다. 개복수술을 받았더라면 더 오래 입원해야 하고, 더 많은 수술비를 지불해야 한다. 더 많은 건강보험료가 투입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의사는 생명까지 위협을 받는 급박한 상황에서 보다 안전한 방법으로 출혈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도 아꼈음에도 부당·불법 진료를 한 의사로 낙인이 찍혔다. 이처럼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보험규정 문제가 진료 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 <時代精神> 12월호 표지.
박호진 대한의사협회 중앙윤리위원은 <時代精神> 12월호(통권 49호) 시론(건강권과 건강보험의 공정성)을 통해 "사회는 구성원의 건강관련 필요에 총자원을 적절하게 할당할 의무를 갖는다"고 건강관리권을 풀어서 설명했다. 박 윤리위원은 "사회는 서로 다른 건강관리의 대립적 주장을 참작, 여러 유형의 건강서비스를 정의롭게 분배할 의무를 갖는다"며 "각 개인은 그런 서비스의 공정한 몫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즉, 정상적이며, 공정한 사회라면 보험재정을 이유로 내시경 시술에 대해 모두 급여로 인정하지 못한다고 하면 어느 선까지 보험으로 인정할 것인지를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한계선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한계선을 넘어서는 시술과 치료재료에 대해서는 환자의 개인 선택에 의해 부담하도록 사회적 합의를 거쳐 허용하는 것이 '공정한 사회'에 걸맞는 '공정한 의료'라는 것.

박 윤리위원은 "현행 건강보험에선 자신이 원하는 의료서비스를 구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개인들이 정당한 수입으로 의료서비스를 구입할 수 없다"면서 "의사들도 환자들이 원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 위법"이라고 건강보험의 불합리성과 불공정성을 지적했다.

엄격한 평등주의에 입각한 무상의료와 관련해서도 "의료서비스의 하향평준화를 자향하는 게 아니길 바란다"고 충고했다. 박 윤리위원은 "엄격한 평등주의는 의사와 환자의 자유와 자율성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며 보험재정 위기를 감안하지 않은 채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 평등보장의 이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강권을 소득적이든 적극적이든 권리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닌 출발점"이라고 지적한 박 윤리위원은 "개인의 나이에 맞는 정상기능을 스스로 유지시키는데 집중하고, 그 이상의 건강관리서비스는 개인 영역으로 넘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윤리위원은 "개인들이 핸디캡과 비정상을 극복하고,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의료의 공공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면서 "모든 걸 국가가 결정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정당하지 못하며, 가능하지도 않다"고 못박았다.

박 윤리위원은 "건강보험의 주인은 국민이므로 보험료를 낸 가입자들이 단위 조직별로 운영에 참여하고, 자신들의 기금을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정부의 역할은 그들을 보조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와함께 "건강보험은 정치인들의 전리품도 아니고, 보험혜택은 그들이 생색낼 대상도 아니라"며 정치권에 쓴소리를 한 뒤 "국민 각자가 철저한 주인의식이 없다면 건강보험운영을 둘러싼 사회갈등은 끝없이 일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 지난 10월 1일 대한의사협회는 '공정한 사회, 공정한 의료'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공정 사회에 걸맞는 공정의료의 개념과 의미에 대해 조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제기한 '공정사회'와 관련해 토론회를 연 것은 의협이 처음이다.
한편, 이번 <時代精神> 12월호는 지난 10월 '공정한 사회, 공정한 의료'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공정사회'와 '공정의료'라는 사회적 이슈를 제기한 의협에 이어 특집좌담(공정사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특집논문·시론 등을 통해 '공정사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를 총제적으로 조명, 눈길을 끌었다.

박성현 인터넷문화협회장은 '인터넷과 지식인'이라는 시론을 통해 "지식인들은 미네르바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며 "엉터리 쪼가리 지식을 가진 사람이 대중을 휘어잡았다는 것은 역으로 전문지식인이 대중과의 소통에 관하여 참으로 게을렀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미네르바에 대한 재판은 우리나라 제도권 지식인 전체에 대한 재판"이라며 "전문지식인들이 대중과의 소통을 게을리할 때 앞으로 더 많은 미네르바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 회장은 "인터넷 공간의 지식과 담론에 있어 구리동전이 금화를 쫓아내는 비참한 상황을 막는 길은 전문지식인이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방법밖에 없다"며 "지식인들은 대중과의 소통이라 불리는 싸움터에서 전사(戰士)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전문지식인들이 진실을 감동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사람의 마음 속에 깃들어 있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질투심에 호소하는 가까 지식을 만들어 문화권력을 장악하려는 사악한 약장수들이 대중을 휘어잡을 수도 있는 위험한 세상이 바로 21세기"라며 "이 위험성을 직시하는 것이 지혜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