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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요? 실천에 옮기는게 중요하죠"
"봉사요? 실천에 옮기는게 중요하죠"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10.10.08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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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뫼중앙의원 이강안 원장

이웃의 일에 무관심해지는 요즘. 오히려 이웃을 가족처럼 여기고 정성을 다해 아껴주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에게는 자신이 갖고 있는 의학지식을 모두 동원해 진료를 하는 외과의사 이강안 원장(푸른뫼중앙의원)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75세의 나이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언제든지 달려가는 이 원장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청산도에서 이제는 없어서는 안될 정도로 주민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됐다.

내가 갖고 있는 능력을 나누면서 살아가는 것, 그리고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반드시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이웃을 섬기는 것이라고 믿는 이 원장은 "그것이 곧 봉사가 아니겠는가"라고 말한다

청산도의 아름다움에 빠져 섬에 머물다

전라남도 완도군에서 배를 타고 1시간여를 더 가야만 나오는 섬. 바로 청산도다. 청산도는 270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섬이지만 이 원장이 근무하고 있는 푸른뫼중앙의원이 유일한 의료기관이다. 보건지소가 있기는 하지만 주말에 직원들이 근무를 하지 않아 주민들이 시도때도 없이 이 원장을 찾는다.

이 원장은 1962년 전남의대를 졸업하고, 1969년 서울적십자병원 외과에서 수련을 받은 뒤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한참일 때에는 잠실병원·혜민병원에서 원장을 맡기도 했다. 또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10년 동안 개원을 했다. 그러던 중 잘 아는 지인의 소개로 5년 전 청산도행 배를 탔다.

"서울에서 의원을 접고 쉬려고 했는데, 푸른뫼의료재단 이사장과 친분이 있는 지인이 청산도 중앙의원을 소개해줬어요. 중앙의원에 근무하던 의사들이 1년 사이에 여러번 바뀌다보니 도와달라는 부탁이었죠."

푸른뫼의료재단은 2003년 청산도에 중앙의원을 개원했다. 2004년 7월 이 원장이 부임하기 전까지 4명의 의사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잠깐동안 중앙의원에서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는데 어느덧 6년 2개월이란 세월이 지났다. 이 원장은 "자연경관이 너무 좋은 곳이다보니 그냥 눌러앉게 됐다"며 "청산도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서울에서 살고 있던 부인까지 함께 내려왔다"고 말했다.

하루하루가 봉사하는 삶으로 가득

새벽 4시 30분 기상. 이 원장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새벽에 일어나서 거의 매일 섬 주변을 산책하는데, 중간 중간 중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환자들의 집을 방문해 건강상태를 살피고, 진료까지 해주기도 한다.

내 몸 챙기기도 바쁜데 주변 사람들까지 챙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원장은 그 일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이 원장은 상쾌한 산책이 끝나면 7시 40분 곧바로 진료를 시작한다.

청산도 주민들 중 바닷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논일과 밭일을 하는데, 일을 나가는 주민들은 대게 이른 아침에 병원을 찾는다. 얼른 진료받고 일을 하러 가기 위해서다. 그래서 이른 아침에 진료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 원장은 아픈 사람이 있다고 하면 청산도 주변의 작은 섬까지 찾아다니며 청진기를 들고 있다. 자신의 의술을 통해 이웃들과의 사랑을 나누기 위해 시작한 섬 지역 의료봉사는 청산도 주변 섬인 '모도'나 '여서도'까지 이어지고 있다.

청산도가 영화 <서편제>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최근 섬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아졌는데, 관광을 하다가 다친 사람들에게 간혹 무료로 치료를 해주기도 한다.

"지난해 여름 휴가 때 관광객 중 한명이 뇌졸중으로 쓰려졌어요. 곧바로 응급처치를 하고 구조헬기에 태워 전주전북대병원으로 후송시켰죠. 응급처치가 잘 되어서 다행이었지만 아직도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섬에서 큰 병원으로 쉽게 가지 못해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응급상황에서 이 원장은 더 많은 빛을 발한다. 보건지소에 근무하던 공중보건의사들이 외과의사인 이 원장의 도움을 받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보건지소가 쉬는 주말에 환자가 발생하면 밤 늦은 시간에도 병원으로 가기도 하고, 공보의들이 힘들어 하는 외과수술이 있으면 직접 보건지소로 달려가 수술까지 해주는 일이 있어요."

이웃들과 나누면서 사는 것이 중요

이 원장은 중앙의원에서 근무를 하면서 여러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올해 8월 서울남서울교회의 도움을 받아 청산도에서 대대적인 의료봉사활동을 펼쳤다. 100여명으로 구성된 봉사단은 안과·내과진료는 물론 미용사까지 포함돼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대대적인 의료봉사활동을 늦게 시작하기는 했지만 앞으로 매년 8월만 되면 정기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이처럼 의료봉사활동을 제대로 준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적자를 면치 못했던 중앙의원을 잘 운영해 넉넉한 재정상태를 유지시켰기 때문이다. 없는 살림에 이웃을 도와주기란 한계가 있다. 그러나 여유가 생기다보니 의료봉사 이외의 것에도 신경을 쓸 수 있게 됐다.

이 원장은 섬에 딱 하나 뿐인 중학교에 장학금을 내놓기도 하고, 소년소녀가장과 홀로사는 노인을 돕기 위해 기꺼이 주머니를 털기도 한다. 노인정에 김치냉장고를 기증하고, 때때로 경로잔치를 열기도 한다. 또 청산면 복지과에 쌀 100가마를 내 놓는 등 진료 못지 않게 이웃과 나누는 일에도 열심이다. 얼마 전에는 인근 교회 건축비에 보태달라며 선뜻 3000만 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이 원장은 "서로 나누고 사는 것, 더불어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말했다. "이웃에 봉사하고 나누면서 사는것이 중요한데,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는 열정으로 넘쳤다.

청산장학회 설립…체계적 사업 할 것

이 원장은 그동안 여러가지 도움을 주민들에게 베풀면서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부터 준비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재단법인 청산장학회 설립이다. 아직 준비단계에 있지만 청산장학회가 올해안에 발족되면 본격적으로 장학지원사업을 할 계획이다.

청산장학회 설립 준비위는 2005년부터 청산도에서 의료봉사와 함께 장학금을 매년 후원하고 있는 이 원장의 뜻에 감동, 장학사업이 한 사람만으로 끝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들이 모여 힘을 보태고 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일을 도맡아 왔다는 이 원장은 그 때부터 이웃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이 원장은 "지금까지 비정기적으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내놓았는데, 앞으로 장학회가 설립되면 더 많은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조금 손해보는 것이 행복하다"며 "도움을 주지 못할 망정 원망의 대상이 되지는 말자는 것이 자신을 지켜주는 힘의 원천"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일까 주변에 딱한 사람들 소식을 접하면 메모를 해두었다가 주소를 알아내어 명절 때 간단한 선물을 보내주고 있다. 진료를 받은 환자들 중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쌀이나 고기를 사서 보내주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이 원장의 실천으로 옮기는 봉사다.

아름다운 섬에서 아름다운 의사로 남다

이 원장은 지난해 '제5회 청산면민의 날' 행사에서 봉사상을 받기도 했다. 부상으로 받은 행운의 열쇠는 장학금으로 도로 내놨다.

"언제 생길지 모를 긴급한 응급환자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자주 섬을 나서기 어렵다"는 이 원장은 1개월에 한번씩 서울을 다녀간다. 그러면서도 늘 청산도 주민들 걱정이다.

"올해 6월 중앙의원 원장 자리를 그만두겠다며 사표를 냈지만 후임자가 없어 아직도 청산도에 머물고 있다"는 이 원장은 어쩌면 계속 청산도에 남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의료봉사활동과 장학사업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열정이 남아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의 열정이 식지 않는 청산도. 이웃들이 하나가 되어가는 청산도. 그래서 청산도는 더욱 아름다운 섬이 되어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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