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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17 06:00 (수)
봉사는 주변의 것들과 어울림이다
봉사는 주변의 것들과 어울림이다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10.09.1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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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오(울산시티병원 원장)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진정한 봉사를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 한다. 그 계기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길잡이가 된다."

조현오 울산시티병원장은 자신이 갖고 있는 의학지식과 기술을 제대로 베풀어야겠다는 것을 60살이 넘은 나이에 깨달았다. 그 전까지는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진료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하지만 잠시 심호흡을 하고 차분하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발견되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앞으로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베푸는 삶을 살겠다는 조 원장은 "봉사란 나만의 것이라기 보다는 크게 보면 내 주변에 있는 것들과의 어울림"이라고 말했다. 주변의 여럿 속에 내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작은 나와 큰 나'를 위한 일이 봉사라는 것.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정신적으로 너무 기분 좋은 일이 '봉사'라고 말하는 조 원장의 앞으로의 '베풂의 삶'이 잔뜩 기대된다.

해외봉사활동으로 몽골과의 인연 시작

1971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조 원장은 서울대병원에서 정형외과 전공의 과정을 수료했다. 또 울산광역시 동강병원에서 병원장으로 오랫동안 있다가 지난 2004년 울산시티병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 원장은 정형외과 전문의 뿐 아니라 병원장으로서 인정을 받아왔다. 하지만 의사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곳이 주변에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2008년 울산시의사회에서 해외의료봉사단을 꾸려 몽골로 진료활동을 갔을 때이다.

조 원장은 "봉사단 일원으로 몽골을 찾았을 때 우리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을 봤다"며 "한국으로 돌아온 후 몽골에 있는 병원과 정기적인 교류를 통해 봉사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또 "다음해부터 6월만 되면 몽골을 찾아 외과적인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으며, 큰 수술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은 직접 한국으로 초청해 무료로 수술을 해주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2008년 당시 몽골 울란바토르 비양골 보건소를 찾았던 조 원장은 돈이 없어서 수술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 2명을 한국으로 초청해 무료수술을 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7명에게 희망을 선물했다.

2008년 2명의 어린이를 추가로 초청했다. 한 명은 뇌성마비로 인해 발목과 고관절이 굳어 제대로 걷지 못했고, 또 다른 한 명은 양쪽 다리가 모두 선천성 골형성부전증으로 걷는게 힘들었다. 두 어린이 모두 걷기가 불편했지만 몽골에서는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조원장은 주저 없이 한국으로 두 어린이를 초청해 무료로 수술을 해줬다. 조 원장은 2009년에도 선천성 기형등으로 거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몽골환자 4명을 또 초청해 무료로 수술을 해줬다.

매년 몽골서 봉사…'희망의 전도사'로 불려

조 원장은 "몽골에서는 정형외과·소아청소년 환자들이 많은데 열악한 진료환경 때문에 제대로 치료를 하지 못하는 것을 봤다"며 "지속적인 교류를 위해 몽골 '한몽친선병원'과 교류협력을 맺고 환자교류를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때부터 매년 한몽친선병원과 자매결연을 맺은 날인 '6월 24일' 몽골을 방문하고, 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한국으로 초청해 치료를 해줬다. 이같은 활동으로 조 원장은 몽골에서 '희망의 전도사'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몽골에 있는 환자들이 한국을 방문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권과 비자를 발급받는 것도 어렵지만 비행기를 타고 왕복을 하는데 드는 비용, 수술비·체류비도 만만치 않았다.

"수술비·진료비는 시티병원에서, 그리고 여권과 비자는 대사관을 방문해 어느 정도 해결해줄 수 있지만 한국을 방문할 때 드는 경비·체류비 등은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어려움이 많다"는 조 원장의 마음은 타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몽골 환자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에 하늘도 감동했을까. 조 원장을 돕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울산 로터리클럽(3720지구)에서 후원회를 조직해 조 원장의 봉사활동을 돕겠다고 한 것.

조 원장은 "정말 비행기 삯을 내지 못하는 몽골 환자들에게 로터리클럽에서 지원해주기로 했다"며 열심히 봉사를 하다보니 좋은 일도 일어나는 것 같다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캄보디아·스리랑카까지 봉사활동 넓힐 계획

조 원장은 한국에서 수술을 받은 어린이들이 회복되는 시간 동안 공부도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울산시에 있는 초등학교와 협력해 참관수업을 하도록 한 것.

"치료받는 동안 몽골 어린이들이 심심해하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학교와 협의를 해 치료하는 동안만이라도 한국인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인 학생들이나 몽골 아이들 모두 좋아해 다행스럽다."

조 원장은 오는 10월 몽골에서 첫 민간병원이 설립되는데 이 병원과도 협력을 맺어 앞으로 교류의 폭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또 "지금은 몽골 환자들에게 봉사활동을 실시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캄보디아·스리랑카도 봉사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울산 주변 곳곳 찾아다니는 봉사도 꾸준히 실천

조 원장의 봉사활동은 몽골 뿐만 아니라 울산·경주 지역에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조 원장은 병원식구들과 함께 매주 주말만되면 울산 주변 곳곳을 찾는다. 조 원장이 찾는 지역은 50여가구들이 모여사는 작은 마을이다. 또 병원을 찾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도 형편이 어려우면 돈을 받지 않고 진료를 해주고 있다.

조 원장은 2007년 울산시 북구 제전마을에 살고 있는 라문순 할머니가 관절염 후유증으로 30년간 집에서만 앉은뱅이로 살아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라문순 할머니는 다리를 사용하지 못해 엉덩이로 몸을 밀면서 생활을 했는데, 무료로 수술을 해주기로 결심했다.

140여일 동안 모두 9차례의 수술을 받은 끝에 라문순 할머니는 30년만에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게 됐다.

이밖에 서울대병원서 수련할 때 춘천도립병원에 파견나갈 일이 있었는데, 태어날 때부터 왼쪽다리가 안쪽으로 심하게 휘어서 두 발등으로 걸어다니던 박영순씨를 무료로 치료해준 적도 있었다.

이렇게 생활속에서 '봉사'를 실천하다보니 2008년 9월에는 울산사회복지협의회에서 주는 '사회복지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울산 시민들이 주는 상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내가 배운 의학지식·기술 모두 베풀것

고향이 경상남도 진주인 조 원장은 서울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을 최고의 축복으로 생각하고 있다. 어려운 시절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로서 많은 것을 경험했는데, 이제는 베풀어야 할 때인 것 같다"는 조 원장은 "전공이 정형외과다보니 비뚤어진 것을 고치는 일은 자신있다"며 "앞으로 힘이 남아있는 한 많은 이웃들의 상처를 고쳐주면서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배운 것을 제대로 써먹어야 진정한 봉사라고 믿는 조 원장은 시티병원의 설립 취지인 '믿음'·'소망'·'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리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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