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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과연 누구를 위한 세무검증제도인가?
시론 과연 누구를 위한 세무검증제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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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9.0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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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현(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최근 정부가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세무검증제도의 골자는 현금사용비중이 높은 업종 등에 종사하는 사업자 중 수입금액이 일정액을 초과하는 자는 종합소득세 신고시 과세표준신고서 외에 세무사가 작성한 '검증확인서'를 함께 제출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소득세와 같은 신고납부방식의 조세의 경우 과세표준이 정확하게 신고되는 것은 공정한 과세의 출발점이므로 신고된 내용의 정확성 확인은 국가 과세권행사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다.

즉, 사인 간의 자본조달시장에 제공되는 회계정보의 적정성을 검증하는 회계감사와는 달리 세무검증은 과세관청이 하여야 할 기본적인 업무를 대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민간기관에 대한 행정권한위탁에 관한 일반규정인 정부조직법 제6조의 위임에 따른 '행정권한의 위임 및 위탁에 관한 규정 제 11조'는 민간위탁사무를 행정기관의 소관 사무 중 조사·검사·검정 등 국민의 권리, 의무에 직접 관계되지 아니하는 사무로 한정하고 있으므로, 국민의 납세의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조세행정은 이 규정에 따른 민간위탁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세무검증제도의 도입을 통해 굳이 과세권을 민간에게 위탁하고자 한다면, 특별법의 제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행정권한의 민간위탁에 대한 일반적인 규정에서 허용되지 않음에도 굳이 특별법을 제정해가면서까지 과세권의 민간위탁을 강행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과연 그렇게 하여야 할 행정상의 필요가 긴요한지 및 이로 인한 세정상의 체계혼란과 부작용은 없는지에 대하여 철저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긴요한 행정상의 필요성에 대해 정부는 현재 개인사업자에 대한 세무조사 비율이 0.2%정도에 불과하여 세무사에게 검증작업을 위탁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행정권한의 민간위탁은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국가기관이 직접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보다 적은 노력 또는 최소한 동일한 정도의 노력만 들이면 해당 권한을 적절하게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 확보된 경우에만 그 합리성이 인정될 수 있다.

그렇지 못함에도 단지 세무조사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과세권을 사인에게 위탁하겠다는 것은 국가기관의 권한과 책무를 방기하는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사회가 추구하는 작은 정부는 불필요한 인력감소를 통해 달성해야 하는 것일 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사인에게 위탁해가면서까지 도달해야 할 목표는 아니지 않은가?

나아가, 긴요성에 관한 정부의 설명은 현실을 놓고 보면 전혀 설득력이 없다. 개인사업자에 대한 세무조사비율이 0.2%를 밑도는 상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자영업자의 소득파악률은 1990년대에는 약 50%를 밑돌았으나 2000년대 자료를 이용한 최근 연구는 소득파악률이 50∼80% 수준으로 추정되어 이전보다 개선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소득파악률의 증가는 그 동안 과세당국이 신용카드, 현금영수증 가맹의무화, 사업용계좌제도 등의 간접적인 정보인프라 확대를 통해 세무신고의 투명성을 유도하는 정책을 펴온 결과이다.

그렇다면, 과세관청의 다양한 소득 투명화 노력에 힘입어 소득파악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왜 갑자기 세계에 유례가 없는 세무검증제도를 도입해야만 할 긴요한 필요성이 발생한 것인지 정말 알 수가 없다.

나아가, 세무검증과 관련하여 민간기관이 용이하게 권한을 대행할 수 있는 환경인가에 대하여도 아무런 답이 없다. 세무검증은 납세자가 제공하는 자료를 기초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무조사권을 가진 과세관청에 대하여도 허위자료를 제출하는 배짱좋은 불성실 납세자가 사인인 세무사에게 관련자료를 고스란히 내놓을 까닭이 없다.

이게 어찌 납세자가 세무사에게 허위·불성실한 답변을 한 경우 가산세를 부과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던가? 성실납세자는 세무검증이 필요없는 반면, 불성실한 납세자라면, 세무사라고 해서 그 성실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세무검증제도는 납세자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검증기관의 역할을 할 세무사들에게 세무검증대상 사업자들보다 훨씬 더 고도의 윤리의식이 있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윤리의식과 같은 문제는 결코 어느 직역의 일반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개인의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느 직역에나 성실한 납세자와 불성실한 납세자가 공존하고 있는 것처럼, 윤리의식이 높은 세무사와 그렇지 않은 세무사가 공존하고 있다. 만일 모든 세무사가 다 고도의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징계를 받는 세무사는 절대 없어야 할 것인데, 통계자료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반면, 납세자의 입장에서는, 쉽게 검증서를 발급해주는 세무사를 선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니, 결국 양심에 따라 엄격히 검증하려는 세무사는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그 결과 세무검증제도의 실효성은 대폭 감소될 수밖에 없다.

정부에서는 검증서를 남발하는 세무사들을 징계하는 방법으로 엄격한 세무검증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나, 그 비현실성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이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세무검증을 받으면 무작위추출방식의 정기세무조사를 받지 않는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세무검증만으로 면제부를 주는 것이 되므로, 세무대리인의 검증이 제대로 기준을 지켜 행하여 지고 있는지를 검증하는 또 다른 절차가 없다면, 오히려 세원은닉을 조장하는 제도로 전락할 수 있다.

그렇다고 공권력에 의한 또 다른 검증절차를 둔다면, 이는 옥상옥이 되어 세무검증제도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

또한,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세무검증대상 사업자를 특정 직업군으로 한정하고, 더 나아가 같은 직업군에서도 소득금액으로 차별하려면, 그러한 차별에는 반드시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특정 직업군의 고소득자의 소득탈루율이 다른 직업군에 비해 높다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럼에도 세무검증대상 사업자의 범위를 이렇게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

나아가, 세무검증대상 사업자로 삼고자 하는 직업군에 대하여는 최근 수년간 도입된 신용카드 가맹의무화, 사업용 계좌개설 의무화, 현금영수증 의무발급제도의 도입, 위반신고자에 대한 포상금제도 도입, 전자세금계산서 발급의무자 확대 등 전방위적인 규제 도입으로 소득파악율 및 수입금액의 검증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또다시 이들만을 대상으로 세무검증 의무 및 세무검증 불이행 가산세 등을 부담시키는 것은 과잉금지원칙 위배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세무검증제도는 세원투명성 확보를 그 도입사유로 내세우고 있으나, 지나치게 행정편의적인 조치일 뿐 아니라 합리적인 이유없이 특정 납세자군에 대하여 추가적인 규제를 함으로써 평등권을 침해하는 제도이다.

나아가 위에서 언급한 수많은 부정적인 요소들을 압도할 만한 징세비용 절감의 효과도 충분히 검증된 바 없으므로, 도입을 서둘러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전혀 없다고 본다.

※ 이 글은 의협신문의 입장이나 편집 방침과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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