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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의료일원화 하든지 아니면 IPL 손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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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식 기자 harrison@doctorsnews.co.kr
  • 승인 2010.08.1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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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현대의료기기 불법사용 되풀이…근거가 황제내경?

Cover Story

하버드의대 교수가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의학 이론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개발한 현대 의료기기 IPL(Intensive Pulsed Light)이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한의원에서 버젓이 사용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IPL은 피부미용 치료에 사용하는 의료기기인데, 의료이원화 국가인 국내 의료법은 의사의 업무를 한의사가 할 경우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점은 한의사들이 IPL을 한의학적 원리에 따라 사용한다고 주장하며 내세운 주된 근거자료가 기원전 4~3세기에 씌인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고대 문헌인 <황제내경>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고조선, 중국은 진한시대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 나온 <황제내경>은 놀랍게도 한의대 교수들이 쓴 공식 학술논문(<대한한의학회지> 2001년 9월)에도 등장한다.

더 나아가 이 논문에서 언급한 <황제내경> 부분이 올해 7월 22일 선고된 형사소송 2심에서 IPL을 시술한 한의사에게 무죄 판결을 하는 근거로 고스란히 원용됐다. 의료계는 이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1심에서는 유죄 판결이 나왔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한의사의 IPL 사용 논란은 2006년 한의사의 CT 불법 사용을 확인한 서울고등법원의 확정판결 이후 4년만에 의료일원화 문제를 의료계 담론의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한약 수요 감소로 위기에 내몰린 한의원들은 피부미용이나 성형 등 의사들의 영역을 슬금슬금 넘보고 있다.

IPL 시술이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인지 아니면 한의사만이 할 수 있는 한방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학문적 원리'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게 판례와 보건복지부 유권해석의 공통된 견해다.

유용상 대한의사협회 의료일원화특별위원장은 항소심 판결문에 인용된 <황제내경> 사기조신대론 부분에 대해 "고대인들이 음양오행설에 따라 계절에 따른 해야 할 행동강령을 적은 것일 따름이다"고 잘라말했다.

<허준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의 저자로 유명한 유 위원장은 "동양철학에 따라 절기에 맞춰 할 일을 적은 단순한 '사시교령설'로 눈에 보이는 병변을 치료하는 IPL의 원리를 설명하는 데 갖다붙이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아전인수격 해석이자 견강부회"라고 비판했다.

한의계가 IPL 시술의 한의학적 원리라며 내세운 <황제내경>은 2001년 9월 <대한한의학회지>(제22권 제3호)에 게재된 '저단계 레이저 치료에 대한 국내 논문 분석 및 한의학 임상 활용 방안' 논문에 나와 있다. 저자들은 경희대와 우석대 한의대 교수들이 주축이 됐다.

이 논문은 광선요법에 대한 한의학 문헌으로 <황제내경> 가운데 사기조신대론 부분을 기술하고 있는데, 이 중국 고대 문헌은 '하삼월(夏三月)…무염어일(無厭於日)…동삼월(冬三月)…필대일광(必待日光)…'이라고 적어 "사시에 맞게 두루 햇빛을 쬐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그친다

(※항소심 판결문의 무'헌'어일은 무'염'어일의 오기임). 즉 햇빛이라는 단어가 나올 뿐 '선택적 광열분해' 이론을 유추할 수 있는 개념은 전혀 없다.

유용상 위원장은 "한의학에서는 양기가 많은 햇빛을 고정렌즈로 모아 경락에 기가 들어오도록 한다고 설명하는데, 이는 물리학적 법칙이나 과학적 접근법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IPL은 현대의학 이론에 기반

대한미용피부외과학회가 발간한 <미용피부외과학> 등에 따르면 IPL과 레이저 치료는 1983년 하버드의대의 앤더슨(R. Anderson) 교수가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선택적 광열분해'(selective photothermolysis)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선택적 광열분해는 빛이 수많은 파장으로 구성돼 있고 각각의 파장은 선택적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에 흡수된다는 것으로, 특정한 색을 지닌 목표를 파괴하기 위해 특정한 파장을 쪼이게 되면 주변 조직의 손상을 주지 않고 선택적으로 파괴할 수 있다는 원리다.

이 이론을 바탕으로 1993년 IPL이 처음으로 개발됐고, 1995년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았다. IPL은 주로 비박피적 피부재생술에 사용되는데, 피부에 심한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노화에 의해 발생한 피부의 색소침착병변과 혈관 확장을 치료하며, 주름 및 탄력 저하를 개선하는 치료법. 이러한 광피부재생술에 대한 연구는 패트릭 비터 박사가 2000년 <미국피부외과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잘 나와 있다. IPL 치료와 관련된 대표적인 논문 저자들은 모두 의사다.

복지부 유권해석은 원칙론에 그쳐

한의계에서 IPL 사용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대한한방피부미용학회다. 2001년 출범한 이 학회는 2007년 3월 24일 세미나에서 IPL과 필러 성형을 한의계 영역에 도입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대한한의학회 정회원 분과학회가 된 것은 올해 2월 4일이다.

의사와 한의사 복수면허를 가지고 있는 동서의학회도 이번 사안을 주의깊게 보고 있다. 류재환 회장(경희대 부속병원 동서협진실)은 "의료기기 사용 문제는 의사와 한의사의 영역과 관련돼 있어 큰 갈등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며 "합리적으로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와 관련해 원칙적인 유권해석만을 내놓고 있다.

복지부는 올해 3월 2일 수원지검의 수사협조 요청에 대한 회신에서 "어떠한 진료행위가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한의사만이 할 수 있는 한방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결국 해당 진료행위가 '학문적 원리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2008년 10월 10일 선고, 2008구합 11945)을 인용했다.

즉 "의료기관에서 사용되는 기계나 기구는 한방 의료행위인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며 일반적으로 IPL 시술의 경우 한의학적 근거가 있지 않은 한, 의료법 제2조 제2항 제3호에 규정된 한방 의료행위로 볼 수 없으므로 의료법 제27조 제1항에서 금지하는 무면허의료행위에 해당될 소지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복지부는 밝혔다.

복지부의 유권해석이 추상적인 기준만을 제시하는데 그치면서 IPL의 학문적 원리를 밝혀내는 일은 법원이나 검찰의 부담으로 떨어지고 있다.

위법성 여부는 당연히 법조인들이 판단해야겠지만, 의학에 관해 비전문가인 법원이 의료행위와 한방의료행위를 구분하는 것은 사법심사의 대상으로는 부적절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따라 똑같이 한의사가 IPL을 사용한 사건에 대해 담당 검사에 따라 기소와 불기소로 상반된 결과가 나오고 있다.

법원·검찰 사건따라 판단 제각각

진료행위의 학문적 원리는 의료인단체나 의학회가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불가피하게 정부기관에서 해야 한다면 법원보다는 소관부처인 복지부가 나서 좀 더 구체적인 유권해석을 하는 게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면 IPL을 비롯한 의료기기는 한방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한의사는 사용할 수 없다고 구체적으로 적시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복지부는 이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다. 의료자원과 관계자는 "복지부도 학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기관이라고 할 수는 없고 관련 학회에 근거자료를 요청하고 있다"며 "좀 더 구체적으로 유권해석을 제시하는 문제는 검토할 필요가 있겠지만 지금 확답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번 상고심과 관련해 대법원에 따로 의견을 내지는 않았지만 요청이 오면 제출할 방침이다.

상고심에서 한의사에게 무죄판결이 나더라도 별도의 자격정지 등 행정처분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형사소송의 특성상 입증책임이 있는 검사가 위법성을 증명하지 못하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무죄판결이 나오지만, 이 경우에도 한의사가 IPL을 써도 좋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복지부 관계자는 "우선 판결 결과를 보고 나서 판단할 것"이라며 "행정처분을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수익만을 좇아 국가 보건의료체계를 뒤흔드는 한의사들의 앞뒤 안맞는 논리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황지환 대한피부과의사회 정보이사는 "한의사들은 의사들의 영역인 현대의료기기는 가져다 쓰려는 반면 한의학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침에 대해선 양보할 수 없다고 우기고 있다"며 "의료일원화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IPL은 한의학의 경락 작업을 위해 사용할 수 없는 기기입니다. IPL에서 나오는 빛과 황제내경에서 말하는 햇빛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대한피부과의사회에서 이번 소송 실무를 맡고 있는 황지환 정보이사<사진>는 "한의사들이 IPL에 대해 쓴 논문을 봤는데 색소치료와 관련된 현대의학을 그대로 옮겨놓고 한의학 일부분을 끼워넣은 짜깁기였다"며 "IPL이 한의학적 원리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밝히지 못했을 뿐 아니라 과학적 검증도 안 돼 있고 심지어 전문용어의 영어 표기 맞춤법마저 틀린 부분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황 이사는 "미국 FDA의 규정을 보면 IPL은 도저히 한의학적 원리로 사용할 수 없다"며 "IPL은 미국과 이스라엘에서 주로 개발됐는데, 한국의 한의원에서 개발자들도 모르는 원리를 내세워 이 기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면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 이사는 13일부터 의협에 구성된 '한의사 IPL 의료법 위반 소송 TF'에 피부과의사회 측 위원으로 참여해 상고심 승소를 위한 전략을 짜고 있다. 그는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의료계의 대응논리를 이 시점에서 모두 공개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 같다"며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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