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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의료윤리 대중화 기대하며

시론 의료윤리 대중화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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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8.13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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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진(서울 금천·명이비인후과 원장 의료윤리연구회(가칭)발기인 대표)

최근 의료계에서 생명윤리적인 문제로 가장 큰 화두가 되고 있는 두 가지 사건이 있다. 낙태와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이다.

낙태시술을 한 의사들이 동료의사들에게 의해 검찰에 고발되는 사건을 계기로 낙태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했다. 해당과 의사회원 뿐 아니라 모든 의사들은 벌어진 상황에 크게 당황했고, 사회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의사들은 서둘러 사회적 합의를 위해 사회 각층과 토론과 의견수렴을 시작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해서는 보라매병원 사건과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 사건을 계기로 본격화 되었다. 사회 각층의 의견교환을 통해 부분적이지만 상당부분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가고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문제하나 칼로 두부 베듯이 명확한 해결책을 내어 놓기 힘든 상황이다. 생명의료윤리라는 것이 종교적인 관점과 의학적인 관점, 사회경제적인 관점 등 그 접근 방법에 따라 서로 상당히 다른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의 중심에 바로 의사와 환자가 있다.

생명의료윤리의 판단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생명의 존엄함을 지키고 환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임은 두 말할 것 없다. 최근 헌법재판소 판결에 의하면 수정후 배아에 원시선이 생기기 전인 수정후 14일까지는 인간으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있었다.

이 판결로 인공수정 후 냉동 보관되어 있는 잔여배아연구에 대한 법적근거를 제공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판결을 기준으로 해 생각해 볼 때 수정 14일 이후에 시행하는 모든 행위는 인간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중단시키는 행위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환자가 생전에 자신이 죽음에 임박했을 때 무의미한 심폐소생술등을 하지 말 것을 미리 기록으로 남겨 놓은 것이 사전의료지시서이다. 이런 사전의료지시서가 있는 경우에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문제가 그나마 수월하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전의료지시서가 없거나 환자 스스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힘든 경우를 두고 아직까지 사회적 합의가 다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안 그래도 신경 쓸 일들이 많은데 적당한 선에서 서로 합의하면 되지 않나하고 단순히 생각 할수도 있다.

하지만 그릇된 윤리적 판단은 우리에게 무서운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생명의료윤리문제들이 이제 해당 의사나 환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의사인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부분들이고 또 닥칠 일들이다.

낙태에 대해 윤리적 고민과 깊은 논의없이 우리 살기 편한대로 기준이 정해진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윤리적인 판단은 뒤로 밀려버리고 그저 편한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미끄럼효과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을 것이다.

소위 예측의학이라고도 일컫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조금이라도 부모의 삶에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부담이 될 만 한 생명들은 가차없이 사라지게 될 수 있다. 오직 질병의 가능성이 없고 영리한 두뇌를 가진 슈퍼 베이비만이 세상에 존재할 것이다.

만약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한 합리적인 합의가 없는 경우 의사인 우리 자신도 자신의 의사표현을 다 못 한 상태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들어 갈 수 있다. 각종 모니터기계와 수액연결선을 단 채로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연명치료를 숨이 멈출 때까지 받아야만 할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 의사들은 생명의료윤리문제들을 당사자나 일부 관심있는 교수들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자 의업에 종사하는 우리는 환자의 권리와 생명의 존중함을 마지막까지 지켜주어야 하기 때문이며 바로 내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근세기 들어와 과학의 발달과 함께 급속한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한 분야가 바로 의학 분야이다. 사람들은 과학의 발달과 함께 발생하는 연구결과나 시행과정 속에서 파생되는 골치 아픈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애써 외면하고 싶어 했다.

더 나아가 의사들은 자신들은 많은 의학적 지식을 가지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결정하는 것들은 모두 윤리적이라고 믿는 오류에 빠져 지내왔다. 막연히 의술은 선한 것이고 오류가 없는 것이라고 자기 착각 속에 지내온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윤리적 판단에 의해 발생된 결과를 보면서 의사들이 하는 행위가 모두 윤리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달게 되었다. 그 후 낙태·안락사·보조생식 의술 이용·장기이식·대리모·줄기세포 이용 등 복잡하고 어려운 결정을 해야 만하는 상황에 접하면서 의사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배우지도 못 했던 윤리적인 문제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라는 소설에서 보았던 상황이 멀지 않은 시기에 나타날 것 같다는 두려움마저 들게 된다.

이러한 윤리적인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전 세계적으로 생명의료윤리에 대한 연구와 교육과정이 각 나라 의사단체들과 대학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관련 학회가 만들어지고 몇 몇 대학에서 교육과정이 만들어졌지만 일반 의사회원들에게 윤리적인 문제가 중요한 주제로 인식되기에는 요원한 일인 것처럼 보인다. 윤리라는 단어가 왠지 딱딱하고 어렵고 골치 아픈 것처럼 보여 접근하기가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들은 의과대학 재학시절에 제대로 된 의료윤리나 직업윤리에 관하여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보지 못하고 졸업했다. 막상 졸업을 하고 진료현장에서 환자나 동료 의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윤리적인 문제들을 접하면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어떻게 결정하고 행동해야 할지 판단할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우리를 평가하는 기준과 환자나 보호자들이 의사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국민은 의사들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전문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환자나 환자의 보호자들은 전문가인 의사가 자신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자신들의 몸을 의탁하는 의사들에게 한 층 더 높은 직업윤리의식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라도 우리가 의료윤리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지 않는다면 의료기술면에 있어서는 세계일류라고 자랑할 수 있을지 몰라도 윤리적인 면에서는 후진국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윤리적인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마다 의사들이 비윤리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고, 의사를 믿고 따라준 환자들에게는 많은 고통과 경제적 피해를 주게 될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인데 의료전문가로서의 위상은 땅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우리는 의사로서 명예와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전문지식과 건전한 윤리의식을 배우고 실천해야만 한다. 이제라도 의료윤리와 의사직업윤리를 공부하고 고민하는 노력이 모든 의사회원들에게 시급히 필요한 시기이다.

어렵게 느껴지는 생명의료윤리를 쉽게 해석해 답답한 우리의 머리를 시원하게 정리해 줄 배움의 기회가 빨리 왔으면 한다.

의료윤리의 대중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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