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마케팅을 벤치마킹하라
요즈음 해외환자의 유치, 경쟁의 심화 등으로 병원에서도 마케팅이라는 말이 흔하게 쓰이고 있다. 그런데 실상을 보면 영업 혹은 홍보활동을 지칭하면서 마케팅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손꼽는 대기업에서조차 마케팅을 영업의 좀 고급스러운 표현 정도로 쓰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다. 병원의 마케팅에 대한 인식의 현 주소가 그 정도인 것 같다.
피터 드러커는 '마케팅의 목표는 영업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 포지셔닝 이론을 주창한 알 리스와 잭 트라우트는 마케팅을 '소비자의 브랜드에 대한 인식을 조정(manipulate)해 나가는 것'으로 정의한 바 있다.
두 정의의 공통점은 결국 "사세요!"라고 외치지 않아도 소비자가 스스로 특정 브랜드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찾도록 만드는 것이 마케팅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제품간의 품질 차이가 뚜렷한 자동차나 첨단 전자제품의 경우 고객을 끌어 들이는 과정에서 품질이 큰 역할을 하지만, 화장품이나 음료처럼 제품간의 품질차이가 뚜렷하지 않은 경우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거에는 병원간의 실력 차이가 컸지만, 의료기기의 발달과 의료기술의 매뉴얼화가 진전된 요즈음 병원간의 실력차이가 많이 줄어들었다. 이 같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비슷한 체급의 병원에 대한 선호의 차이는 객관적인 실력에 대한 평가보다는 브랜드에 의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인턴을 대상으로 한 좌담회에서 "만약 가족 중에 누가 생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질병에 걸린다면, 어느 병원을 이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압도적으로 'ㅇ병원'이 지목됐다. 같은 질문을 서울에 거주하는 1000명의 일반 소비자에게 해 보았더니 인턴들의 좌담회 때와는 달리 'ㅅ병원'이 가장 많이 언급되었다. 두 병원 모두 국내 최정상의 병원이지만, 병원의 실체를 잘 아는 대학병원의 인턴들이 한 평가와 일반소비자의 인식 사이에 괴리가 존재했다.
병원을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정보와 능력이 부족한 일반 소비자들은, 브랜드에 관해 이제까지 쌓아온 직·간접의 경험을 통해 평가를 하게 된다. 여기에서 의도된 직·간접의 경험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과정이 바로 마케팅인 것이다.
마케팅 능력과 노력의 여하에 따라 병원이 가진 실체보다 더 소비자에게 평가 받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일반 소비재에서 볼 수 있는 마케팅 현상이 이제 병원간의 경쟁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바야흐로 병원마케팅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병원이 기업의 마케팅을 벤치마킹 할 때가 온 것이다.
국내 굴지의 광고회사인 이노션·금강기획에서 마케팅본부장을 지냈으며, 고려대·중앙대 등 대학과 한국방송광고공사 교육원 및 무역협회 무역아카데미 등에서 마케팅 및 광고를 강의하였다. 현재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02-2030-7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