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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난한 아이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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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7.0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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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유니언이비인후과 이의석 원장

보령의료봉사상 6월의 주인공은 서울유니언이비인후과 이의석 원장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재학 중 이울진료회 활동을 통해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개원 후에는 대한이비인후과 개원의협의회 봉사활동위원회를 만들어 용인 영보자애원 이비인후과 진료실과 서울·부산 소년의집 이비인후과 진료실, 은평마을 이비인후과 진료실을 개설했다.

숨어서 하는 봉사가 진짜 봉사라며 손사레를 쳤지만 마음으로 품은 자식들과 마리아수녀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 이 원장의 표정은 사뭇 엄숙하기까지 하다. 언젠가는 어려운 이들을 위해 무료로 진료해주는 병원에 몸담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면서는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비단 의료적인 봉사뿐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봉사를 실천하고 있는 이의석 원장을 만나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어린이 보호시설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은평구에 있는 '소년의집'입니다. 올해 꿈나무마을로 개명한 소년의집에는 무려 1000여 명의 어린이가 마리아수녀회의 수녀님들과 함께 지내고 있지요. 한방에서 20~30명씩 모여 지내는 모습을 보면 정말 안타깝습니다."

이의석 원장의 말에 따르면, 아주 우연한 계기로 그저 가톨릭교에 몸담았던 까닭에 꿈나무마을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소년의 집에서는 열살, 즉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첫 영성체 의식을 치르게 되는데 대부와 대모가 필요하다.

정신적 후원자로서 큰 의미를 가지는 이 일을 이의석 원장은 9년째 해오고 있다. 부인과 함께 매년 한 명의 대부·대모가 되어 지금껏 모두 9명의 아이를 가슴으로 안은 것이다. 한 아이가 올곧이 성장해 사회생활을 잘 해낼 수 있도록 후원한다는 것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한다.

"2001년에 후원한 아이가 벌써 열아홉살입니다. 잘 자라주어 직장 생활까지 하고 있으니 아주 흐뭇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우연이 필연이 된 소년의 집. 전문의인만큼, 감기 합병증과 중이염으로 고름을 쏟아내는 아이를 들쳐 업고는 병원을 찾아 반나절을 보내야 하는 수녀들의 모습이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그때부터 주말을 이용해 뜻이 맞는 원장 한 명과 번갈아가며 아이들을 진료하기 시작했다.

사소하게 시작된 이 일은 이 원장이 '이비인후과개원의협의회'에 몸담으면서 더욱 확대됐다. 2005년 총무이던 시절 자원봉사자들의 모임인 봉사활동위원회를 만든 것이다. 소년의집뿐만이 아니라 정신지체나 결핵 등의 선천질환을 앓고 있는 성인 남자들을 돌보는 은평마을을 위해 이비인후과개원협의회 봉사활동위원회 자원봉사자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진료를 하게 됐다.

이비인후과 개원의들이 유니트 체어 같은 장비를 교체할 경우 쓰다 만 장비를 은평마을에 기부할 수 있도록 손을 쓴 것도 역시 이 원장이었다. 또 아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인 수련의 동기의 권유로 용인 영보자애원에도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이울진료회 9기, 봉사에 눈뜨다

서울대학교 출신인 이의석 원장은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생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생들의 의료봉사 클럽인 '이울진료회' 9기 출신이다. 이울진료회는 작년 보령의료봉사상 월별 수상의 영예를 안았던 클럽이기도 하다.

이 원장은 본과 2학년 때 선배들과 함께 포천군 영중면으로 봉사활동을 갔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지역의료봉사를 시작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직접 진료 봉사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후배들의 계획서를 보거나 봉사 활동 후 보고서를 확인하는 등 교류 하고 있습니다."

이 원장은 학생운동으로 유난히 클럽에 대한 압박이 많은 시절에도 이울진료회가 유일하게 남아 이어져가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울진료회가 변함없이 이어져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힘은 무한하다

이 원장은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힘은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전후 어려웠던 시절 '알로이시오' 신부가 우리나라에 뻗었던 손길이 지금 수천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이라며 '소년의집'과 '마리아수녀회'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는 소년의집, 그리고 마리아수녀회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958년 6.25 이후 휴전이 되었지만, 전쟁 후유증을 앓고 있는 열악한 상황의 한국이었습니다. 그때 지구상에서 가장 살기 어려운 곳에서 봉사를 하겠다며, 미국인 신부 1명이 부산을 찾게 되는데, 알로이시오 신부죠.

국내 처음으로 버려진 아이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고 그게 바로 소년의집의 시작이었습니다. 교육을 받은 보모들은 수녀가 되었고 마리아수녀회가 꾸려진 겁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울시장이 알로이시오 신부에게 은평구 산자락에 있는 땅을 주었고 서울 소년의집이 만들어졌다. 일반학생들과 쉽사리 어울릴 수 없었던 아이들을 위해 시설 내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가 마련됐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축구선수가 이곳 출신일 정도로 축구부가 유명한 소년의집에서 이 원장의 네 번째 대자는 프로 축구 선수를 꿈꾸었다고 한다.

"서울에 초등학교가 있고, 부산에 중·고등학교가 있거든요. 부산에 간 지 얼마 안 되서 사고로 인해 중환자실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지요. 그렇게 뛰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가 팔 다리를 못 쓰고 전동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재활을 위해 도티병원을 찾는 날에는 남자 어른 네 명의 힘이 필요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열악한 환경을 절감한 이 원장은 얼마 전 보험협회에서 봉사상을 수상하고 받은 수상금 3000만 원을 기꺼운 마음으로 쾌척했다. 엘리베이터 설치 공사는 오는 10월 완공될 예정이다.

단지 대부로서, 단지 주변 사람들을 덜 힘들게 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이 언뜻 무심해보이지만, 속 깊음과 아이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마리아수녀회는 외국인들에게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카톨릭 국가인 필리핀의 경우 남학교 3000명, 여학교 3000명 정도를 수용하는 시설이 무려 세 곳이나 만들어졌다. 남미 브라질, 파라과이, 과테말라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마련됐다.

"세계 곳곳으로 퍼진 시설은 모두 마리아수녀회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시작해서 이제는 우리보다 더 어려운 곳을 향하고 있으니 실로 엄청난 파급 효과인 셈이죠.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입니다."

8월 중순에 그는 필리핀 마닐라로 향한다. 마리아수녀회 25주년 행사와 자선병원 개원식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이 원장은 훌훌 털고 일어나 언젠가는 그런 곳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왼 손이 한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처럼, 숨어서 하는 봉사가 진짜 봉사일 것이라는 이 원장. 자신의 대학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훗날 도티병원에서 진료 봉사를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리고 자신처럼, 의료인이 되기 위해 의대를 진학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술을 펼치기를 원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실천에 옮기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차이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비인후과 개원의협의회 봉사활동위원회에도 봉사를 하겠다는 의사들이 참 많습니다. 알려지길 원하지 않고 숨은 곳에서 묵묵히 인술을 펼치는 의사들도 많은데, 마치 나 혼자 많은 일을 한 것처럼 포장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라는 이 원장의 겸손함과 의료인들의 인술에 대한 믿음은 각박한 세상에 한줄기 빛처럼 아름답다. 가장 가난한 아이들을 도와주기 위하여 노력하는 이들, 이 원장과 마리아수녀회의 활동에 언제나 희망과 사랑이 함께하기를 바란다.

글·사진 = 정지선(보령제약사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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