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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만에 학생으로 돌아간 이성낙 총장

35년만에 학생으로 돌아간 이성낙 총장

  • 최승원 기자 choisw@doctorsnews.co.kr
  • 승인 2010.06.2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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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낙 가천의과학대 명예총장

미술사 박사과정을 등록한 이성낙 가천의과학대 명예총장
이성낙 가천의과학대 명예총장이 올 가을 '학교'로 다시 돌아간다. 이번에는 교수가 아니라 학생 신분이다.

평소 예술, 특히 미술에 대해 관심과 애정이 각별했던 이성낙 명예총장은 명지대 대학원 미술사 전공 박사과정에 입학해 피부과 의사답게 조선시대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병 연구로 독특한 발자취를 남기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지난해 의사로서는 처음으로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조직위원장을 맡아 의료계에서만큼 미술계에서의 역량을 보여준 바 있다.

이성낙 명예총장은 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올해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서도 조직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이성낙 명예총장을 1975년 독일 유학시절 이후 35년만에 시험아닌 시험까지 보며 연구하고 싶게 한 조선시대 초상화의 매력은 한마디로 '리얼리티'다.

서양화에 비해 원근감이 없어 리얼리티가 부족할 것이라는 선입견은 그의 말마따나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터럭 하나도 다르게 그리면 다른 사람이 된다는 기록이 있어요. 조선시대 초상화를 관통하는 미학은 바로 이런 정신입니다."

어떤 초상화를 보면 간암으로 죽기 전 황달로 고생하고 있는 피사체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져있고 또 다른 초상화에는 곰보로 뒤덮인 피사체의 모습이 그대로다. 바로 이런 점이 중국과 일본 초상화와는 뚜렷이 구분이되는 조선시대 초상화의 특색이다.

1980년대초 독일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해 연세의대 교수로 재직할 때 부터 이성낙 명예총장은 미술계와 인연을 맺어왔다. 지금은 미술계에서 의미있는 잡지로 자리매김한 <미술세계> 창간호부터 2년 동안 칼럼을 연재했다.

조선시대 초상화에 대한 자료수집과 관심은 당시의 글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피부과 의사로서 그의 남다른 관점은 미술계에 흥미를 불러왔다. 시대를 대표하는 미술평론가 오주석·이태호 선생들의 각종 평론과 책에는 이성낙 명예총장의 관련 글이 인용돼 있다.

하지만 의대 교수로서의 바쁜 생활로 미술에 대한 관심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을 만나기 전까지 한동안 미뤄둘 수 밖에 없었다.

문화재청장을 사임하고 명지대 교수로 간 유홍준 교수가 문득 의사로서 한국 총상화의 매력과 미학을 학문적으로 정리해 볼 것을 권유했다. 박사과정을 밟으며 논문으로 정리를 하다보면 일정한 책임감과 적당한 부담감이 생길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이제 인생이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이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느낄 나이가 됐습니다. 주변에서 (대학원 입학에 대해) 과욕아니냐 아니면 주책을 부리는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까봐 신경도 쓰입니다.

하지만 야사가 아닌 정사를 기록하는 마음으로 불모지와 같은 조선시대 초상화 분야 연구의 초석을 놓겠습니다."

미술을 비롯해 예술을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필수조건으로 여기고 아주의대 학장시절 정규과목으로 예술과목을 도입하기도 했던 이성낙 명예총장은 대학원 입학은 작은 도전이라며 연구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인물의 외향 뿐 아니라 마음까지 담아내기 위해 천의 앞면이 아닌 뒷면에 그림을 그려 윤곽선을 자연스럽게 스며나오도록 했다는 조선시대 도공의 마음과 예술을 향한 열정으로 작은 도전에 나선 이성낙 명예총장의 마음이 500년을 관통해 조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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