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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칼럼]약품비 절감과 내쉬 균형
[편집인칼럼]약품비 절감과 내쉬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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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3.0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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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훈정(대한의사협회 공봉이사 겸 대변인)

누군가가 A, B 두 사람에게 게임을 제의한다. 각각 100원씩 내고 게임을 하는데, 둘은 1번과 2번을 선택할 수 있고 그 결과에 따라 상금을 받거나 받지 못하게 된다. 게임의 경우의 수는 다음과 같다.

A와 B가 둘 다 1번을 선택하면 한 푼도 받지 못한다. A가 1번을 선택하고 B가 2번을 선택하면 A는 200원, B는 50원을 받는다. 그 반대로 B가 1번을 선택하고 A가 2번을 선택해도 역시 B는 200원, A는 50원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A와 B 모두 2번을 선택하면 각각 50원씩 받는다. 만약 당신이라면 1번과 2번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물론 게임 자체를 아예 하지 않거나 A와 B가 짜고서 한 사람은 1번, 다른 사람은 2번을 택한 뒤 상금을 나누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이런 사전 모의는 없다는 가정 하에서 출발한다).

뭐 사람에 따라 선택과 결과는 다양하게 나오겠지만 대개의 경우 A와 B가 함께 2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며 게임을 제의한 사람은 200원을 받고 100원만 돌려주게 되므로 이익을 취하게 된다.

고전적 자본주의 경제 원리에 충실하자면 A와 B, 두 사람의 경제적 이득이 극대화되는 경우, 즉 1번과 2번을 각각 선택하여 총 상금이 250원이 되는 것이 나와야겠지만 실제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인간의 이기적인 속성 상 공동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면 왜 A와 B는 함께 2번을 선택하게 되는가. 자신이 1번을 선택할 경우 상대가 같이 1번을 선택하면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되지만 만약 상대가 2번을 선택하면 200원을 받게 되므로 기댓값은 (0+200)÷2=100원이다. 결국 100원을 내고 기댓값이 100원인 게임을 하므로 결코 불리한 게임은 아니다.

그럼에도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2번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는 상대가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나는 50원을 보장받을 수 있으니 이익의 최대화보다는 손실의 최소화를 지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전망이론(Prospect theory)을 통해서 심리학과 경제학의 접점을 찾았는데 이는 이후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의 발전에 기여를 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을 하나 들자면 '확실성 효과(Certainty Effect)'라는 것이 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 '가능한 결과'보다는 '확실한 결과'에 더욱 비중을 둔다는 것이다. 쉬운 예로서 어음 10만원보다는 현금 8만원을 선호한다는 것이고 또 손실을 끔찍하게 싫어해 이를 피하려는 행태로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무엇을 선택하든지 상대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1번을 선택할 것이라는 불신도 함께 내재되어 있다. 여기서 파생되어 나온 게임 이론이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이다.

어쨌든 위와 같은 게임의 경우 각자의 이익을 고려하여 선택(사실은 손실을 최소화하는)를 내린 뒤 일정한 타협 상태를 이루게 되는 데 이를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이라고 한다.

정리하면 '내쉬 균형'은 경쟁자의 대응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하면 서로가 자신의 선택을 바꾸지 않는 균형 상태를 말한다. 즉 상대방이 현재 전략을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나 자신도 현재 전략을 바꿀 유인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는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포브스 내쉬에 의해 주장, 명명되었다(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이다).

그러면 내쉬 균형을 우리 현실에서 적용해보면 어떨까. 요즘 의료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약제비 절감과 의료수가 인상에 대한 문제를 보자.

정부는 급증하는 약제비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되고 있으므로 이를 줄이려고 하고 있고 의료계는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의료수가로 인해 의료기관들이 경영난을 겪고 있으므로 수가를 올려달라고 한다.

현실적으로 의료기관들이 어떠한 동기 부여 없이 약제비를 줄이기는 쉽지 않고, 정부 역시 의료수가를 올려주면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되므로 선뜻 올려주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양측의 이익(또는 손실)이 균형을 이루는 접점을 찾을 수 있는데, 결국 각자의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타협해나가는 것이다.

이를테면 정부가 1번(약제비를 절감하되 수가를 올려주지 않는 것)과 2번(약제비를 절감하여 그 절반을 수가 인상에 사용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고민하고 있고 또 의료계는 1번(약제비를 절감하지 않고 수가를 인상해 달라는 것)과 2번(약제비를 절감하여 그 절반을 수가 인상에 사용해달라는 것) 사이에서 고심하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가 둘 다 1번을 선택한다면 타협은 거의 불가능하고 파국으로 치닫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정부가 1번, 의료계가 2번을 선택하거나 반대로 정부가 2번, 의료계가 1번을 선택하면 한쪽에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상대가 양보하지 않는 상황에서 먼저 내가 양보하는 카드를 내민다는 것은 어렵다(또 지난 10년 간 쌓여온 불신으로 인해 아직 상대를 충분히 믿지 못하는 상황이다). 결국 둘 다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진행되는데, 이는 둘 다 2번을 선택하는 경우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게임이란 상대가 있는 것이기에 내가 내놓는 카드보다는 상대가 내는 것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200원을 따려고 하다가 한 푼도 못 얻는 경우보다는 100원이든 50원이든 가능성 높은 경우에 투자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사실 가장 합리적이고 계산적이여야 할 금융투자에 있어서도 사람의 '마음'이 개입되기 때문에 감정적이고 이기적인 결정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거시적인 정부 정책과 관련된 결정은 더욱 어렵다. 그 결과를 예측하기도 어렵거니와 정부가 게임을 주도하고 민간이 따라가는 상황이어서 선택의 폭이 좁기 때문이다.

어쨌든 게임이론은 우리 실생활에서도 심심지 않게 적용되는 모습을 보인다. 게임을 하는 이유는 대개 이득을 보기 위해서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실제로는 불리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손실을 피하기 위해서 소극적인 선택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득을 위해 지나친 모험을 거는 것도 문제다.

개인의 경우라면 높은 이득을 위해서 낮은 확률에 거는 것도 해볼 만한 일이지만, 단체의 경우라면 이득이 낮더라도 손실을 최소화하는 안정적인 확률에 거는 것이 바람직하다(물론 그 기댓값이 너무 낮아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게임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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