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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프로라이프의사회, 종교국가로의 회귀를 꿈꾸나?
시론 프로라이프의사회, 종교국가로의 회귀를 꿈꾸나?
  • 최승원기자 choisw@kma.org
  • 승인 2010.02.2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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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중 대한산부인과학회(경지지회) 낙태대책위원장
프로라이프의사회 산부인과 의사들이 동료 의사들을 고발함으로써 촉발된 낙태 찬반양론은 결국 여성의 선택권이냐 태아의 생명권이냐 라는 해묵은 논쟁으로 치닫고 있다. 이 두 법익간의 충돌로 이 문제를 보는 한 이 논쟁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와 정치권이 2005년 기준 연간 35만 건 정도의 낙태시술이 발생하는 등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고도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최근 시사토론에서 현행법에서도 허용하고 있는 근친상간이나 강간 등의 사유에 대해서조차 낙태가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내놓음으로써 문제의 쟁점이 개선되기 보다는 오히려 더욱 왜곡되는 양상이다.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이러한 왜곡된 주장들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 다음과 같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여성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적으로 추행된 임신마저도 국가사회가 형법으로 개입하여 그 태아를 보호해야 한다면, 이는 모든 임신에 대하여 국가신고제를 채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발전하게 할 것이다. 마치 국가가 출생신고, 출입국 신고를 받아 국민 개개인의 신체적 안녕을 보호 하듯이 말이다.

만약 상황이 이렇게 된다면 모든 기혼 미혼 남녀사이의 성행위에 대해, 그 피임사용 여부에 대해, 그리고 미혼부가 과연 누구였느냐 하는 책임분쟁으로 치닫게 될 것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는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새로운 보호대상을 맞이하여 태아담당부서를 신설하고 수많은 친자확인 절차에 개입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런 문제에 필요한 예산을 위해 태아세 라는 새로운 과세활동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이 뿐이 아니다. 현재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함으로써 낙태를 줄이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후피임이나 피임에 대해서마저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게 될지도 모른다. 가히 생명존중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신흥종교가 발호하게 될지도 모른다. 과거 기독교도 자위행위에 대해 금기시했고, 남자의 정액이 곧 생명의 씨앗이라고 하여 이를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까지 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된다면, 인간의 성(性)은 오로지 종족보존을 위한 임신을 전제로 하여 허용될 것이고 현대 성의학이 인정하는 레크리에이션이나 정서적 안정을 위한 성적 활동은 억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지도 모른다.

신흥 생명종교라는 종교국가로 회귀하는 일이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0년여 동안 우리 인간이 확대해온 개인의 존엄성과 사적 권리들이 전제주의 국가에서처럼 심각하게 도전받는 일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프로라이프 의사회에 묻는다.

첫째, 귀 단체가 인정한다는 모체의 건강이 심각하게 손상될 경우에 한하여 인정하겠다는 낙태 허용사유는 과연 모체의 건강이 어느 정도로 손상되어야 한다는 것인지 그 구체적인 설정기준이라도 있는가?

둘째, 도난범 등 범죄행위로 인하여 초래된 태아마저도 그 생명권이 인정되어야 한다면, 이 범죄자를 평생 아기 아빠로서 지켜봐야 하는 여성의 정신적 정서적 고통은 모체의 건강을 저해하는 요소가 아니라는 것인가?

셋째, 모체가 구체적으로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어야만 낙태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한다면 모체가 사경을 헤매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연출될 위험성은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넷째, 수정란의 착상을 방해하는 사후피임제 처방은 수정란을 보호하기 위해 이제 금지되어야 하는가? 아울러, 수정란의 상태로 동결 보존되어 있는 태아들은 이제 모두 자궁내이식이 단행되도록 법률로써 강제되어야 하는가? 또 한편, 다태아 임신 시에 시행되고 있는 선택적 태아감소술은 향후에는 금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다섯째, 귀 단체의 주장은 원치 않는 임신을 줄여서 낙태를 줄이자는 것에 있는가? 아니면, 피임에 실패하면 어차피 낙태를 할 수 없으므로 임신을 전제로 하지 않는 한 피임할 생각으로는 아예 성교를 하지 말라는 것인가? 가장 확실하고 보장된 피임은 금욕일 터니까.

낙태논쟁에 있어 상호 이의가 없는 명제는 다음의 두 가지일 것이다. 첫째는 불필요한 원치 않는 임신을 줄여서 낙태를 최대한 줄이자는 것이고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이유에서든 원치 않는 임신은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낙태를 줄이자면, 성(性)과 피임에 대한 교육이 사회적으로 제공되어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워낙 개인적 사적 영역이라서 비록 윤리의 문제는 될 수 있을지언정 국가가 법률로써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애로사항이 있다.

위 두 번째 명제 속에 숨겨진 문제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가령 현대 민주 문명국가에서는 미혼남녀의 혼외 성교행위에 대해 윤리적으로는 문제 삼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법으로 규제하지는 못한다. 또한 기혼 부부사이에 성교회수를 강요할 수 없고 더 나아가 피임여부나 산아숫자를 강제할 수 없다.

그만큼 국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 태아가 갖는 생물학적 의학적 한계점들은 어떠한가. 12주 이내의 태아는 곧잘 유산되기도 하고 아직 신체구조가 인간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기본적인 장기 등이 형성되었다고 보이는 24주의 태아도 아직 자존적 생존가능성이 없다.

이 시기 이전의 임신 중단을 유산이라 하고 출산이라 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의학적으로 명백한 사실은 24주 이전의 태아에 대하여는 응급구조술도 적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과학적 사실관계에 비추어보아, 적어도 24주 이전에 배출된 태아는 국가와 사회가 보호해야 할 생명이라 규정하는 것은 무리인 것이다. 이는 본질적 한계이며, 법률이 다가설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사회경제적 사유로 선택하게 되는 낙태 문제를 풀기란 사실 쉽지 않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문제의 본질에 충실하게 접근한다면 상호 합의하는데 지름길이 열릴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태아의 생명력이 씨앗에 불과하고 법으로써 보호할 수 없는 12-24주 이전의 낙태에 대하여 이제 우리 사회도 법의 빗장을 푸는 길이다.

흔히 학계는 말한다. 낙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고. 첫째는 여성의 성적권리를 사회 교육화 하는 일이요 (피임은 그 일부이다), 둘째는 임신-출산을 여성의 의무로서가 아니라 권리로서 인식하는 것이고, 셋째는 이 시기에 여성의 건강이 심각히 위협받기 때문에 적정 수준의 의료를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 원리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낙태를 사회적 윤리의 문제로 보고 제반 사회여건을 개선해 나가야 하는 것이지, 법으로써 국가사회가 처벌하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000년 미국산부인과 학회도 "임신13주 이전의 낙태문제는 순전히 여성의 개인적 결정에 의해 주치의와 함께 해결해야 하며, 국가사회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라는 공식입장 표명을 한 바 있다.

“The intervention of legistrative bodies into medical decision making is inappropriate, ill advised, and dangerous (Statement policy by the ACOG Executive Board, September, 2000).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이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러한 공식 견해에 숨겨진 이유를 이해하고 있는가?

김석중 대한산부인과 의사회 (경기지회) 낙태대책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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