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3-29 10:33 (금)
낙태 반대 운동을 격려하며
낙태 반대 운동을 격려하며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10.01.20 16:50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연정 원장(경기 남양주·한나산부인과)
살아 온 지 어언 4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젊은 시절을 뒤돌아보면 참으로 여유가 없었다. 늘 무엇인가에 쫓기듯 바쁘게 살아왔지만 그 의미를 찾기 못했다. 남들이 보기에 가진 자 같아 보였는지는 모르지만 스스로는 궁핍했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수련을 하고 결혼을 하고 개업을 했다. 그리고 뭔가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사건을 겪었다. 5살 난 아들이 사고로 죽음에 직면한 것이었다. 집에서 놀다가 커튼 줄에 목이 감겨서 공중에 달리게 되었는데 발견 당시에는 거의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응급심폐소생술로 호흡은 겨우 돌아왔으나 의식도 없었고 항경련제에도 반응하지 않는 경련이 2시간 가까이 계속됐다.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겨 2박 3일의 전신마취에 들어갔는데, 당시 담당 의사들의 반응은 아주 절망적이었다. 죽거나 식물인간 상태가 될 것이며 만약에 의식이 돌아오더라도 심각한 정신박약과 함께 심각한 신체장애 후유증이 남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아니, 담당 의사들이 그런 설명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아들의 회복은 어떠한 인간의 힘으로도 불가능하고 오직 하나님의 기적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붙들 수 있는 것은 오직 한분뿐이었다. 그전까지 교회를 다녀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하나님의 존재를 늘 의심했던 나는 그때 비로소 병원 바닥에 엎드려 실성한 여인처럼 울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 아이가 정신박약이 되어도 좋으니 걸어서 학교에는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몸부림쳤다.

수많은 주위 분들이 함께 기도해 주었고 결국 아들이 정말 거짓말처럼 완전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의료진들은 모두 기적이라 말했다. 아들로 인해 정작 구원받은 이는 나 자신이었다.  '내가 내 힘으로 이루었다 자부했던 것들이  하나님이 내게 댓가 없이 준 소중한 선물에 비하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아무것도 아니었던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일인가'하는  깨달음이었다.  

그 이후 나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자신의 숙명으로 알고 행했던 낙태 시술을 그만두었다. 개업 이후부터 수입이 안 된다는 핑계를 달아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며 자행했던 낙태였지만 낙태를 하지 않아도 나는 지금까지 병원을 잘 운영하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아등바등하지도 않는다. 그저 병원이 사고 없이  잘 굴러가니 감사할 뿐이다. 돈도 좋지만 세상에는 돈보다 소중한 것이 휠씬 많기 때문이다.

최근 '진오비'라는 산부인과 의사 모임에서 낙태 반대 운동을 벌인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사실 속으로 많이 놀랐다.  낙태로 인한 수입은 산부인과 의사에게 유혹이 될 충분한 조건이 된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그런 운동이 벌인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다. 게다가 이 운동을 벌이는 핵심 멤버들은 종교적 신념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 산부인과 의사들 스스로가 떳떳해지는 길은  근본적으로 부정한 굴레를 씌우는 낙태를 그만두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돈보다는 스스로 떳떳해지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초음파로 태아가 어머니 뱃속에서 완벽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움직이고 심장이 뛰는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태아가 인간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낙태의 대부분은 정말 어쩔 수 없기 때문이기보다는 환자의 편의에 의한 자의적 낙태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산부인과 의사들조차도 낙태를 너무 쉽게 권유해서 조그마한 약물 복용에도 낙태를 권유하고 있는 황당한 실정을 많이 본다. 일례로 내 환자 중 임신인줄 모르고 내시경 검사 시 미다졸람을 한번 맞았는데 이를 안 산부인과 의사가 낙태를 권유했다고 했다. 이것 말고도 황당한 경우는 더 많다. 낙태가 부메랑이 되어 의사들의 남은 양심까지 마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듯 보인다. 나 자신조차도 종종 그리 움직인다. 그러나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돈이 아닌 의로움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의 열정일 것이다. 또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을 '순수한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산부인과 의사 사회 내에는 이러한 순수함이 스스로 부도덕을 드러낸다 하여 싫어하고 몰아내려고 하는 사람들 또한 있는 것이 사실이다.

종종 기존의 권력을 독점하며 놓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그들의 모습을 보게된다. 사실 그 권력이 얼마나 하찮은 것이던가?  날이 어두워져서 때가 되면 하던 것 다 내려놓고 가야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니던가?

낙태 반대 운동이 일견 계란으로 바위치기 일처럼 보이지만 세상 일의 시작은 다 그러하게 보이는 법이다. 또한 이 일의 성패 유무를 떠나 이런 분들이 산부인과 의사로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미래는 희망적이다. 그리고 그 용기와 순수함에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이 이 운동이 지치지 않고 한 방울씩 떨어져 산부인과 의사들과 전 국민의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