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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나 이야기
하이에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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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2.2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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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은경(광주 중앙아동병원)

강아지를 입양한 뒤에야 비로소 강아지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강아지가 좋아지면서부터 오로지 사람에게만 향해있던 나의 관심도 조금씩 동물에게 문을 열기 시작해서 'TV 동물농장'에 채널을 고정하는 날이 늘었다. 그 날은 하이에나가 주인공이었다.

무리와 별로 다를 것 없어 보이는 한 마리의 암컷 하이에나가 동료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고 있었다. 사육사들이 열심히 관찰해본 바, 피해자 하이에나는 감히 대장격인 암컷 하이에나와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하였고 이른바 괘씸죄에 걸린 모양이었다.

임신을 시킨 수컷은 어디로 가고 사랑의 열매를 품은 암컷만 거기에 남아 수난을 당하는지. 사람이나 동물이나 금지된 사랑의 피해자는 단연코 암컷이다. 집단폭행은 난폭했고 어미와 새끼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사육사들은 피해자를 다른 우리로 분리해 출산 때까지 편안하고 안전하게 보호해주었다.

동족들을 피해 인간의 보호를 받아가며 어렵게 지켜내고 낳은 새끼이니 얼마나 귀할까. 그런데 어미 하이에나는 젖을 먹기 위해 품으로 파고드는 새끼들을 몸을 돌려 피할 뿐 전혀 돌보려하지 않았다. 잔인하고 비열한 동물 하이에나에게는 모성이란 걸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이번에는 카메라가 집단폭행의 가해자인 대장 하이에나를 찾았다. 어쩌면! 무리의 보호를 받으며 출산한 대장은 새끼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있었다.

사육사들에 따르면 하이에나는 모성이 큰 동물이고 피해자 하이에나는 이미 자기 한 몸 보호에 너무나 지친 나머지 자식을 돌볼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카메라는 이제 어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불쌍한 새끼들을 비추기 시작했는데 소아청소년과 의사이자 두 아이의 어미인 나는 중요한 약속시간이 다가옴에도 텔레비전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사랑도, 먹을 것도 궁핍해진 두 마리의 새끼 하이에나에게 평화는 없었다.

큰 몸집을 갖고 태어난 하이에나는 난폭한 공격자가 되어 왜소한 새끼 하이에나를 계속 할퀴었고 엄마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약한 새끼 하이에나는 급기야 심하게 상처를 입고 만다.

새끼들의 안전을 염려한 사육사들은 동물원 사육실로 이들을 옮겨 보살피기 시작했고 새끼 하이에나들은 점차 평안을 되찾기 시작하는 듯 보였다. 카메라는 애써 아기 하이에나들의 다시 찾은 행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이미 내 마음은 평정심을 잃고 말았다.

체격 큰 저 녀석이 세상에 둘도 없이 잔인한 하이에나가 되지는 않을까. 약한 저 녀석은 어렵게 살아남더라도 남의 눈치를 보며 사는, 세상에서 가장 무력한 맹수이거나 강자 밑에 빌붙어 사는 아주 비열한 하이에나가 될지도 몰라.

그러다가 어느 날 덜컥 모성이라고는 모르는 어미가, 또는 조절되지 않는 모성으로 쩔쩔매는 어미가 되는 나머지 고단한 삶이 세대를 이어 순환하면 어쩌나. 

실은 얼마 전에 정치적 편향이 마음에 안 들어 중단했던 시사 잡지를 다시 구독하기 시작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잡지는 소외받은 이웃에 대한 이야기들로 지면을 채우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유독 힘든 부모 밑에서 자라나 고단한 삶을 순환하고 있는 젊은이들 이야기가 내 마음을 계속 어지럽히고 있는 중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행여 제 새끼에게 찬바람 들어갈새라 푹 싸안고 젖을 먹이는 대장 하이에나가 미워졌다. 자신과 새끼가 편안하기 위해 어떤 희생이 대를 이어가며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 생각도 없는 저 높은 곳의 하이에나.

그의 완벽한 새끼사랑으로 품위있고 용감한 이 시대의 남다른 하이에나가 만들어진다면 우리는 그를 위대한 어머니로 우러러야 할까. 마음속에서 괜히 분이 일었다. 

내 아이들이 굴곡지지 않는 편안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다보면 내 자식과 직접 관계가 없는 일에는 눈길 한 번 주기 어려웠다. 대장은 못 되었으나 넘치는 축복을 누리고 살면서 행여 찬바람 들어갈새라 제 자식만 끌어안고 있는 나를 보고 하나님도 가끔 분을 내시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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