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3-28 17:29 (목)
차별없는 세상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살아 가는 농인들의 대부
차별없는 세상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살아 가는 농인들의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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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2.2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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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롱청각장애인선교회 안일남 회장

가을이라 더없이 좋았던 지난 10월 6일 저녁, 서울 하늘 아래에는 맑고 영롱한 음악 선율이 울려 퍼졌다. 올해로 9회째를 맞은 청각 장애인을 위한 사랑의 작은 음악회가 열린 것이다. 지금은 수준급의 라파 챔버 오케스트라와 이은주 소프라노 등이 참가했지만 이 음악회가 열리기 전인 5년 동안은 수화로 음악회를 개최했었다.

▲ 네팔소망학교 학생들과 함께한 안 회장(사진 앞줄 왼쪽에서 3번째)

청각장애인을 위한 음악회 9년째 열어

청각 장애인을 위한 음악회를 9년째 진행하고 있는 안일남 박사.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음악회를 연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진정한 소리란 인간과 인간이 소통하고 교감하는 것이기에 그는 음악회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소리없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한국의 35만 명의 농인들을 생각하며, 또 세계 각처에 있는 농인들을 생각하며 음악회를 통해 소리의 귀중함을 되새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생 동안 자식의 음성 한 번 듣지 못한 농인 부모의 심정을, 목청높이 노래한 번 불러보지 못한 농인의 심정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어주길 바라죠."

안박사는 그의 인생을 세 부분으로 나눠 소회한다. 자신을 비롯한 가족이 중심이었던 19세까지의 인생은 종교를 가진 일반인의 삶이었다. 이후 농인들을 만나 그들의 사회에 발을 딛게 된 대학시절이 있었다. 성가대활동을 하면서 농아부를 만나게 됐다. 당시 성가대는 인원이 넘쳐났지만 농아부는 사정이 달랐다.

그는 성가대 활동을 접고 영락농인교회 주일교사가 되었다. 농인들에게 수화를 배우며 더듬더듬 성경을 가르친 인연으로 30년이 넘은 지금까지 농인들을 위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해외 곳곳에서 피어나는 의료봉사의 꽃

▲ 진료에 여념이 없는 안 회장.

의사가 된 이후는 봉사활동을 폭을 넓히며 진정한 나눔의 삶을 만나게 된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손길을 닿게함으로써 그는 진정한 의료인으로 거듭났다.

그의 의료 봉사활동은 곳곳에서 이뤄졌다.

그가 애착을 가졌던 봉사활동의 하나가 바로 1984년부터 찾아간 성남시 은행동 무의촌이었다. 당시만하더라도 소외받은 이웃들에게까지 의료보험 혜택이 주어지지 않았던 때라 그들이 의료보험 혜택을 골고루 받을 수 있는 때까지인 10년 동안 '신월회'란 이름으로 그곳을 찾았었다.

그 후 봉사활동은 해외 곳곳에서 이뤄졌다. 방글라데시 통기농아학교를 비롯해 네팔 가우리샹카병원 지원 근무를 했다. 작년에는 경찰병원 재난구호팀장을 맡아 태풍 사이클론의 피해를 입은 미얀마에 나가 주민 2,000명을 대상으로 의료봉사활동을 펼쳤다. 그는 오는 12월 4일 네팔로 다시 떠난다.

일생 동안 의사를 한 번 만나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네팔이란 곳에서 그는 의료 봉사를 넘어 인간의 사랑을 전하고 올 예정이다.

"저는 농인은 또 다른 민족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이민족이 될 수 있는 것이 농인입니다. 부모와 자식간 감정전달이 100%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어요. 우리가 오랜 기간 영어교육을 받지만 정작 외국인을 만나면 그들과 의사소통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그들이 세상과 소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청각장애인들이 무리없이 사회생활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편이다. 그들이 고등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사회에 나와 일반인과 소통이 잘 되지 않기에 변변한 직장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그리고 소리가 들리지 않기에 교통사고나 화재사고에도 쉽게 노출되기 마련이다.

"사람들에게 종종 묻습니다. 시각장애와 청각장애 둘 중의 장애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장애를 선택하겠냐구요. 그러면 거의 99%가 청각장애라고 말합니다.

세상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들리지 않는 것은 세상과의 소통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들리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아요."

세상에 빛이 사라지는 두려움과 소리가 사라지는 두려움, 그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은 빛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은 시각장애 이상으로 세상과 소통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시각장애인은 일반인과 소통이 가능하고 그들을 위한 배려도 청각장애인에 비해선 많은 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청각장애인은 언어가 통하지 않기에 장애인 중에서도 소외된 계층으로 분류된다.

농인 문화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청각장애인연구소' 건립하고파

"농인들은 글씨를 보고 쓸 수 있기에 문자로 소통하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듣지 못한 이들에게 문자로만 세상을 알게 하기엔 너무 세상이 복잡합니다. 그렇기에 문자로 세상과 소통하는 데에는 아주 큰 한계가 있지요."

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에 저장된 문자를 보여준다. 일상적인 문자다. 안박사에게 보낸 감사의 글이다. 누구나 쉽게 보낼 수 있는 글이었지만 아주, 대단히 잘 쓴 문장이라고 그는 말한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도 그들에겐 많은 지식과 훈련을 필요로 한 듯했다.

안일남 박사가 추진하고 있는 일 중 하나가 바로 청각장애인이 일반 사회에서도 소통이 가능하도록 일반인의 의식을 바꾸고 제도를 개선하고 그들의 문화를 알리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청각장애인연구소'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청각장애인연구소를 통해 농문화를 올바르게 인식시켜주고 싶습니다. 외국 선진 사례를 번역해 출판하고 싶구요.

하지만 여건이 녹록하지만은 않습니다. 앞으로 기업들이 나눔경영 차원에서라도 청각장애인을 위한 후원에 앞장서 주시면 청각장애인들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조금 더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는 말한다. 삶의 질이라는 것은 인간답게 사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하지만 농인들의 삶은 아직 그들만의 세상 속에서 쉽게 나오지 못한다. 청인들과 같이 동화하고 더불어 사는 삶, 그것이 안일남 박사가 만들고 싶은 세상이다.

농인들이 모여 영화를 만들고 있는 독립영상 제작단 '데프미디어'라는 곳이 있다. 그들은 비장애인들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독일 정치학자이자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어 이렇게 적고 있다.

"다름이 없다면 인간은 교류하고 소통할 이유가 없으며, 평등하지 않다면 진정한 소통은 불가능 할 것이다."

글·김지희(보령제약 사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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