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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임상진료지침 개발, 학회가 주도해야

시론 임상진료지침 개발, 학회가 주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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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2.1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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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희(이화의대 교수 예방의학교실)

최근 임상진료지침(이하 진료지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과 비례해 여러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의협신문의 임상진료지침 연구 기사(11월 23일자)는 연구비 배분과 관리체계 부실의 문제, 정부예산의 중복투자에 대한 문제 등 일상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이슈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진료지침관련, 현재 시점에서 가장 논의가 시급한 쟁점은, 진료지침 개발 및 보급주체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몇년전 의료법 파동 때 개원가를 중심으로 정부의 표준진료지침 제정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것을 기억한다.

개원가에서 반대의견이 높기는 했지만, 개원가외에도 한국의 규제적인 정책환경하에서 진료를 하는 대부분 임상의사들의 우려를 담았으며 지금도 이러한 우려가 상당할 것으로 짐작된다.

문제는 정책에 대해 의료계외에 다양한 이해주체들이 있고, 의료관련 사안들은 특정 주체의 주장이 일방적으로 관철되기 보다는, 각 주체들의 정치적 역량이 복합적으로 조정된 수준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대하는 바대로 판단하기 보다는 놓인 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해결의 출발점이 될 수밖에 없다.

진료지침의 경우 급변하는 환경하에 '개발반대'를 주장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고 반대하기엔 대외적인 명분도 충분하지 않다. 진료지침과 근거중심의학은 이미 국제 대세로 자리잡아가고 있고 의료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는 대부분 국가들에서는 진료지침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중심 그룹이 각 국가의 의료체계에 따라 다를 뿐이다. 진료지침에 대해선 국영 의료체계를 운영하는 국가들에서는 정부기구에서 진료지침을 개발한 다음, 국영병원에 시행하도록 하는 반면(대표적 예:영국), 민간 의료공급체계를 운영하는 국가들에서는 전문학회들이 동일한 역할을 맡는 경우(대표적 예:미국)가 많다.

외국에서도 임상전문가들간 진료지침에 대한 우려가 높고 저항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다.

다만, 이러한 우려를 '개발반대'로 연결시키기에는 시대적 공감을 얻기 힘들기 때문에, 타당한 진료지침이 개발될 수 있도록 감시하고 노력하는 것과 진료지침이 임상가들의 자율적 판단을 규제하는 도구로 악용되지 않도록 견제하는데 힘쓰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미 많은 학회들과 임상의사그룹들이 진료지침을 만들어 왔으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도 급여심사기준의 타당성을 검토할 때 외국의 진료지침들을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급증하는 각종 적정성 및 질평가에서도 외국의 진료지침은 평가기준 개발의 중요한 근거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의료계의 반대로 진료지침 사안을 방임하고 있는 동안 오히려 국내 여건에 맞지 않는 외국의 진료지침들이 무분별하고 쓰여지고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전문학회들간 학회의 진료영역을 확장하거나 배타적 독점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국내에서 진료지침 논의는 '개발반대'에 머물게 아니라, 국내 임상현실에 맞는 타당한 진료지침 개발과 임상전문가의 자율적 활용, 그리고 이를 무리하게 규제도구로 활용하는 것에 대한 견제장치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대안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대한의학회(이하 의학회)에서는 산하 전문학회들과 더불어 이러한 정책환경에 대비해 진료지침이 악용될 수 있는 상황을 막고 임상전문가들의 자율적 활용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왔으며 한국 현실에 맞는 진료지침 개발 및 보급원칙을 제안해왔다.

예를 들면 진료지침은 과학적 근거들을 체계적으로 종합해 타당한 진료지침을 만들되, 진료지침이 특정 전문가 집단의 배타적 권한보호나 정부의 진료비 삭감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반대하며, 어떠한 진료지침도 해당 환자를 진료하는 담당의사의 전문가적 판단보다 우선시되어서는 안된다는 점, 진료지침은 학술자료에 의거한 의사결정의 참고자료로서 전문가가 자율적으로 활용해야 할 사안이지 정책으로 강제화할 수 없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원칙들이 관철되고 실제로 진료지침이 임상현장에서 널리 활용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임상의사들이 주체가 되어 진료지침을 만들고 자율적으로 활용하는 환경을 보장하되, 정부 등에 의해 타율적으로 강요되어서는 안 되며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만 한다.

국내에서 진료지침 개발에 참여하는 그룹은 의학회외에 복지부의 연구비 지원을 받는 임상연구센터 연구진들이 대표적이다.

최근 보건의료연구원에서 진료지침을 개발·관리·평가하는 업무를 맡겠다고 제안함에 따라 본격적으로 정부까지 진료지침 관리에 참여하겠다고 나서는 형국이 되었다.

진료지침은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의료계나 국민 모두에게 유용한 점이 있으므로 개발·활용해야 하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누가 개발·활용할 것이냐의 접근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보건의료연구원과 연구중심의 임상진료지침 개발 그룹에서는 진료지침 개발과정에 임상의사외에도 의료관련 인력과 소비자, 환자그룹들이 참여해야 하므로 학회 단위의 민간보다는 정부가 중심이 되는 국가 진료지침을 개발하고 보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위험성에 대해선 지면관계로 나열할 수 없으나 가장 큰 문제는 진료지침을 활용해야 할 주체인 임상가를 수동적 수용자로 전락시키므로서 진료지침에 대한 수용성을 떨어뜨리는 한편, 진료지침에 대한 반감을 높여 진료지침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을 가능성과, 국가가 제정한 진료지침대로 하면 모든 진료결과에 대해 국가가 책임질것인가 하는 책임소재의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의학회에서는 진료지침은 임상전문가의 대표성을 갖춘 조직이 담당해야 하며 다음과 같은 이유로 개발주체로서 전문학회 중심의 접근을 제안하고 있다.

첫째, 진료지침의 활용을 높이려면 개발주체의 대표성과 공신력이 중요하며, 국내에서 자율성이 강한 임상의사들을 그래도 가장 대표성있게 아우를 수 있는 조직이 전문학회이기 때문이다.

둘째, 학술적으로 검증된 과학적 근거를 임상현장에 구현하기에는 건강보험의 재정과 통제라는 현실적 벽이 있고, 진료의사의 임상환경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각종 병원급과 개원의들의 진료환경에 대한 제약을 수렴해 현실적으로 적용가능한 진료지침을 만드는 역할은 학회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특정 학회들이 단독 개발시에 따른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의학회의 조정기전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학회들이 세분되면서 진료영역이 여러 학회들에서 공유되고 있는데 반해, 특정학회만으로 개발팀 구성시 진료지침이 해당 학회의 배타적 독점으로 이권화하고 학회간 갈등이 유발되는 등 본연의 취지와 다른 문제가 생길수 있으므로 학회간 갈등조정의 중재자가 필요하다.

둘째, 진료지침이 악용되는 정책사안에 대해 개별 학회만으로 대응하기는 힘드므로 관련 학회가 정책적으로 공조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아직은 국내 학회들의 개발역량이 취약하므로 여러 학회들의 역량을 결집하는 구심점이 필요하고 이러한 역할을 의학회가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진료지침에 관심을 갖는 그룹 모두가 의료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기 때문에 의료계내에서 개발주체에 대한 합의와 역할분담이 필요하며 모쪼록 의학발전과 임상전문가의 자율적 권한보호라는 명분하에 의견이 모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의료계내에서 통일된 의견이 마련돼야 정부에 대해서도 원하는 방향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반영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보건의료연구원은 보건의료 현장의 기술적 답보를 깨기 위해 임상현장을 지원하는 연구를 수행하겠다고 설립된 기관인 만큼, 진료지침에 대한 전문학회들의 자율적 노력을 지원해야지, 직접 나서서 관리하겠다는 방식은 본연의 설립취지에 맞지 않다는 점을 인식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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