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의 전쟁(2)
시간과의 전쟁(2)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9.10.30 09:48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선아(인천기독병원 정신과)

의료기관만 예약 시각이 지연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조금 전에 미용실에 전화해서 예약을 하고 갔는데도 다른 고객 때문에 제때 서비스가 시작되지 않으면 정신과 전문의인 필자도 여러 가지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직원이 친절하게 대하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전문가가 성의를 다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누그러진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친절과 전문성을 기대하며 기다림에 너그러워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진료를 받는 환자나 가족도 친절과 전문성을 발휘하려면 시간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는 것 같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진료가 지연돼 대기실에서 직원에게 언성을 높이던 환자도 진료실에 들어서면 담당 의사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하는 경우가 흔하다.

필자와 같이 일하는 간호사는 진료기록지를 갖다 놓느라 진료실에 들어왔다가 환자들의 행동 변화에 놀라곤 한다.

게다가 필자가 일하는 병원에서는 예약환자가 우선이다. 그런데 무단히 내원했다 한 두 시간 기다리기라도 하면 언성만 높이는 게 아니라 폭언을 하는 사람도 가끔 있다. 더구나 신종 플루가 출현하면서 사람들의 병원공포증이 도를 더해가는 느낌이다.

예약일은 다가오고 약은 필요한데 여러 환자가 모인 병원에 가기는 두렵지만 처방은 받아야 하니 환자와 가족이 핑계를 대며 병원 방문을 서로 떠넘기는 경우도 보았다. 그렇더라도 정신과 의사 생활 25년에 접어드는 필자로서는 문진에 필요한 시간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고, 말 그대로 시간과의 전쟁이다.

덧붙이자면 '시간이 돈'이라고 하는데 미국 의사의 시간과 한국 의사의 시간은 가격 차이가 지나치게 심하다. 최근에 친한 친구의 모친께서 미국 체류 중에 뇌출혈로 진료를 받으셨다. 시민권 신청 중인 65세 이상 환자여서 응급입원 진료비는 의료보험 적용을 받았지만 외래진료는 그렇지 않았다.

친구 말로는 의사가 "Hi, mam" 하더니 5분 정도 말하고, 150달러를 지불했단다. 신경학적 검사를 하지 않았느냐고 필자가 물었지만, 친구는 "별 진찰은 안 하고 말만 했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대한민국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 의사소견서 발급비용은 3만원이 채 안 된다. 본인부담금은 몇 천원이지만 여기서는 진료비 총액을 논하려고 한다. 재진 환자라고 해도 소견서를 작성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30분이 넘는다.

단순하게 계산해서 미국이라면 900달러! 현병력과 과거력 조사, 환자 문진은 물론이고 보호자가 관찰한 증상, 일상생활능력 등에 대해서 듣고, 신경학적 검사·간이인지검사 등도 실시한다. 경우에 따라 타과 진료기록과 핵의학과, 영상의학과 등의 검사결과까지 살펴봐야 하니 1시간이라도 부족할 때가 있다.

미국 5분 진료비의 1/5에 해당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30분에서 60분 이상이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 놓으라고 하니 한국 의사가 모두 슈퍼맨이나 슈퍼우먼 같은 초능력자라는 말인가?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는 영어에도 능통하고, 오바마 정부는 미국의 의료시스템 개혁에 매진한다는데 앞일이 걱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