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비행기를 탈 때는…
의사가 비행기를 탈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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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0.2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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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화숙(김화내과의원 전 의협 정책이사)

2년만에 바깥 바람을 쏘이게 되었다.

그동안 의협의 정책이사를 맡았다는 핑계로 바쁘게 지내다가 이번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는 미국심장학회에 남편과 함께 참가하고, 뉴욕에 사는 딸·사위와 손녀를 만날 목적으로 동반하게 됐다.

들뜬 기분으로 비행기를 타고 조용히 음악도 즐기고 영화도 보고 언제 이렇게 한가하게 여유를 즐기면서 지낸 적이 있었나 싶었는데…. 잠시 잠이 들어가는 순간 스튜어디스가 "원장님"하고 조용히 깨우는 것이었다. 갑자기 환자가 발생해 진찰을 해야 겠다는 것이었다.

환자는 63세 미국여자 환자로서 심한 복통과 구토·설사를 하고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문진한 결과 낮에 인천공항에서 햄버거와 콜라를 급하게 먹었고, 지금은 물 먹은것까지도 다 토하고 설사는 물로만 나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간단하게 생각하고 staphylococcus에 의한 장염, 단순 gastric upset, 급성췌장염 등 몇가지 생각하면서도 세균에 의한 식중독이라고 잘못 말하면 우리 인천공항이 국제적 망신을 당할까봐 조금 지켜보자고 하면서 평소 내가 복용하려고 준비한 위장약 2봉을 꺼냈다.

이제 토하지 않고 진정될거라고 안심시키고 한봉을 먹이고는 자리에 왔다.

10분후 다시 스튜어디스가 와서 선생님이 주신약 먹고 다 토했다는 것이었다. 순간 평소 혈압약도 복용중이고 뚱뚱한 여자분이라서 급성 심근경색이 의심돼 이번엔 담요를 깔고 환자를 바닥에 눕혀 진찰했다.

복부가 약간 팽만되었고 우측하복부에 rebound tenderness가 있어 급성충수돌기염도 의심되었다. 아직도 도착시간은 5시간이나 남았는데….

혈압을 측정해보니 210/75mmHg,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급히 스튜어디스에게 심장내과 교수인 남편을 오게 했다.

의외로 남편은 혈압이 210/75나 되는 환자를 진찰하고는 나이가 들면 pulse pressure widening이 있을 수 있으니 걱정말고 조금 기다려 보라고 하면서 평소 혈압약을 먹는 환자로서 설사해서 죽는법 없다고 태연히 팽창된 복부를 가만히 진정시키면서 한국말로 "내손은 약손이다"라며 긴장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웃게까지 하는 여유를 보였다.

스튜어디스에게 급성충수돌기염이 의심되니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는 대로 병원으로 이송할 앰뷸런스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환자를 1등실로 옮겨 똑바로 눕히고 금식시킨 상태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얼마 후 혈압은 190/70, 170/70으로 점차 떨어지고 환자는 진정되기 시작했다.

다시 약을 복용하게 하고 기다렸다.

한참을 지난 후 복부팽창도, 압통도 점차 가라앉아 요구르트를 먹으면 안되느냐는 문의가 왔다. 절대로 먹으면 안된다고 하면서 금식하라고 했다.

도착할 때 쯤 스튜어디스가 밝은 표정으로 와서 앰뷸런스도 취소하고 환자는 그 후 한번도 토하지 않고 설사도 없이 휠체어를 타고 내렸다고 했다. 그제야 안심이 됐다.

30여명이나 탑승한 심장내과 의사는 찾지않고 나를 어떻게 찾아 잠도 못자게 했나 했더니, 명단을 보고 내과의사를 찾았다는 것이다.

가슴뿌듯한 것은 비행기 안에서 외국인을 진료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날 일을 통해 의사들은 반드시 비행기를 탈 때 비상용 약 몇 가지와 니트로글리세린, 필요하다면 응급용 주사제라도 꼭 챙겨서 다녀야한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비행기 안에도 응급의약품이 몇가지 구비되어 있긴 하지만….

서울로 탑승을 위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갔을 때 KAL지사장이 나와 응급환자를 잘 진료해주어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다시 진료를 하기 위해 병원에 돌아와보니 KAL로부터 감사의 편지와 조그마한 선물이 놓여 있었다. 뜻밖의 기분좋고 보람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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