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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의 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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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9.15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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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철 대한의사협회 총무이사

하자고 설득하는 것은 어렵지만, 하지 말자고 설득하는 것은 쉽다

▲ 송우철(대한의사협회 총무이사)



1993년 어느 저녁 의협 회의실에서 열린 의협 정보위원회 회의. 이 자리에서 한국통신(현 KT) 측의 EDI(Electronic data interchange)에 대한 브리핑이 있었다. 브리핑이 끝나자 한 위원이 말문을 연다. "설명은 잘 들었는데, 이걸 왜 의사들이 해야 하는지, 여기 모인 위원 10여명부터 설득해 보세요. 여기 있는 분들이 설득되면 우리가 나서서 회원을 설득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나설 수 없습니다."

그는 더 강경하게 말을 이어간다. "우리가 회원들에게 하자고 설득하는 것은 어렵지만, 하지 말자고 설득하는 것은 쉽습니다."

사실 그가 이렇게 강경한 어조로 톤을 높인 것은 이유가 있었다. 당시 한국통신은 국영기업이었고, 1992년 국정감사에서 호되게 질책을 당했다. 이유는 전국에 광통신망을 구축하느라 많은 예산을 썼지만, 실제 그 광통신망으로 일으킨 성과는 미미한 탓.

국감에서 지적을 받은 한국통신은 이 망을 활용할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고 그 방안으로 EDI라는 방식으로 청구하는 것을 고안한 것이다. 물론 당시는 용지나 디스켓으로 청구가 이루어지던 시절이다.

EDI는 일종의 통신 규약이며 통신환경이 열악한 당시 상황으로는 다량의 데이터를 송수신하기 위한 좋은 수단이었다.

그러나 EDI가 적용된 사례는 무역 EDI정도. 당시 한국통신은 진료 건당 100원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고, 이런 내용이 담긴 계획서를 정보위원들에게 배포했다. 수년 내에 막대한 매출을 일으키게 되어 있는 시나리오가 담긴 그 자료를 보고 정보위원들이 분통을 터트린 건 당연한 일.

결국 의협은 EDI 도입을 반대하였고, 한국통신은 의협이 아닌 대한약사회·전국의료보험연합회(현 국민건강보험공단) 및 병원계와 손을 잡고 EDI를 추진하기에 이른다. 결국 의협은 EDI 협상에 주도권을 잃게 되었고, 반면 초기에 손을 잡은 기관들은 한국통신으로부터 막대한 투자를 받게 된다.

의사의 시끄러운 투쟁과 약사의 부드러운 설득

시간이 흘러, 2000년. 당시 반대 논지를 폈던 그 위원은 의쟁투 서울대표로 의약분업이라는 회오리의 한 가운데 서게 된다. 당시 의료계는 조제권 박탈이라는 절대절명의 위기 속에 파업 등 강도 높은 투쟁을 벌였다. 의약분업이란 무엇인가?

그것의 실체는 정부의 묵인 하에 이루어진 약국의 임의 진단과 임의 조제를 차단하기 위한 투쟁이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 투쟁의 본질은 사라지고 의사들의 조제권이 박탈당하는 완벽한 패배로 끝이 났다. 의사들이 과천과 보라매 공원에서 의권쟁취를 외치고 있는 동안 우리의 대척점에 있던 약사회는 소리 없는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의 투쟁은 설득과 또 다른 설득의 기나긴 여정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복지부에 있었던 공무원들은 이런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의협의 이사들은 국장 아니면 상대를 안 해요. 우린 물론이고 과장님조차도 우습게 알더군요(복지부 모 사무관)."
"우리는 사안을 검토해서 연구 결과를 내지만, 실무는 사무관이 다 합니다. 그걸 모릅니까?(진흥원 모 연구위원)."
"당시 약사회에서는 박카스, 음료수를 잔득 옆구리에 끼고 와서 일일이 나눠주며 하소연하는데, 인간적으로 더 마음이 가는 건 인지상정 아닌가요?(복지부 모 주무관)."

사단법인 대한의사협회는 사원으로 구성되며, 그 사원이라 함은 대한민국의 의사들이다. 협회란 무엇인가? 협회는 무엇을 대변해야 하며,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가?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어느 의료계 선배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협회는 회원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며, 회원의 이익을 옹호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건 협회 목적의 절반일 뿐이다. 나머지 절반은 의사라는 직업을 대변하고 그것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이다."

이건 무슨 뜻일까? 의사를 대변하는 것과 의사라는 직업을 대변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일까? 우리에게는 의사에 대한 추상적이지만 보편타당한 개념이 있다. 즉, 의사라면 이러이러해야 한다, 이것을 지켜야 한다라는 식의 개념이다. 그런데 문제는 때로 이 추상적 개념과 의사의 실제적 권익이 충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때 무엇을 지키고 옹호해야 하는 지에 대한 바른 판단이 요구된다.

서두의 언급한 사례 당사자는 짐작대로 필자이다. EDI에 대한 논란 이후 그 전개과정을 지켜보면서 15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다.

왜 그런 치기어린 발언을 했을까? 그 같은 무조건적인 반대 탓에 10수년간 얼마나 많은 의사들이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며 마음 아파했을까 반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앨빈 토플러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유식한 체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정적 시각을 견지하는 것이다." 혹 나는 유식한 척하고 아는 척하기 위해 무조건 반대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도 회원을 팔아 가며...

의약분업 이후 경영의 악화로 얼마나 많은 의사들이 절규하고 있고, 심지어 자살하는 의사가 나타나는 현실을 볼 때, 그때 왜 우리는, 나는 더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했을까 하는 통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파업을 하고 집회를 하는 것 외에 더 실질적인 방법은 없었을까? 우리가 구호를 외치고 세를 과시하는 것으로 정부를 압박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일까?

무조건적인 반대와 근거없는 비난이 돼서는 안돼

의약분업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새로운 위기에 국면하고 있다. 그건 마치 전국민의료보험이 도입(1989년)된 이후 10년 만에 의약분업이라는 의료계의 커다란 변혁이 있었던 것처럼 다시 10년 만에 의료계의 지각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위기는 개원가의 몰락, 의료계의 양극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늘 그랬듯이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건 임의 진료, 조제권을 박탈당할 약사들이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켰던 예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요는 '어떻게?'이다.

그건, '투쟁의 기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정부는 정책을 제시하고, 보건의료단체는 그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의견에 대해 설득의 논리로 무장하고 끊임없는 설득과 또 설득의 지루하고 긴 고행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반대는 이제 더 이상 투쟁의 도구가 될 수 없음은 이미 입증된 바 있다. 물론 투쟁 전에 우리가 투쟁하려는 바에 대한 올바른 판단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 회원의 실질적 이득과 협회가 대변해야 할 의사란 직업에 대한 가치를 저울질해서 얻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회원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청취하는 과정이 필연적일 것이다.

이 점이 모자라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렇다하더라도 무조건적인 반대와 근거 없는 비난과 사실의 왜곡으로 투명해야 할 전체 회원의 목소리가 탁해진다면 이 역시도 경계해야 할 것임은 분명하다 할 것이다. 진심으로 지혜가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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