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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근로자 위한 무료진료 평화·사랑·나눔 여기에
외국인근로자 위한 무료진료 평화·사랑·나눔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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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7.0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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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사랑·나눔 의료봉사단

일요일 정오, 휴일의 느긋함과 게으름의 유혹에 빠지는 시간이다. 그러나 가산동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봉사자들로 활기가 넘친다. 1시 30분부터 시작된 무료 진료는 4시까지 정신없이 진행된다. 매주 일요일마다 200여 명이 찾는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은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다.

▲ '평화·사랑·나눔 의료봉사단'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인 '후원의 밤' 행사장에서.

일요일에 더 분주한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인근 봉사 동아리에서 나온 여고생은 진료실마다 환자 이름을 순서대로 적고 다음 환자를 찾아 대기시킨다. 백여 명이 모인 병원 복도에서 다음 진료 환자를 찾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다. 진료실도, 조제실도 분주하긴 마찬가지다.

진료를 마치고 약을 기다리는 환자들은 목을 길게 빼다 못해 조제실에 얼굴을 내밀고 약이 나왔는지 연신 묻는다.

"처음에는 정말 다 해주나 생각했지요. 약까지 다 주시니까 얼마나 고맙습니까. 일하다 보면 팔다리가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 여~ 와서 침도 맞고 약도 받고 합니다."

인근 대림동에서 왔다는 김맹례 씨(53세, 중국 연변 출신)는 친구를 통해서 무료 진료도 해주고, 약까지 준다는 말을 듣고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을 찾기 시작했다. 몸이 아플 때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말한다.

가산동에 위치한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은 평일에는 군의관이 진료를 하고, 일요일이면 평화·사랑·나눔 의료봉사단(이하 평화·사랑·나눔)이 무료 진료를 이어간다. 대부분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평일에는 시간을 내기 어려워 일요일에 많은 환자들이 몰린다.

오후 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짧은 시간 동안 200여 명이 찾는다. 6월 14일, 평화·사랑·나눔의 283회 의료봉사가 있던 날도 144명이 의사 진료를, 30명이 한의사 진료를 받고 99명이 조제약을 받아갔다. 

새로운 의료 사각지대-외국인 근로자

1990년대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제3세계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불법체류자여서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는 일이 잦았다. 선진국으로 도약을 말하던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단면이었다.

이승규 원장(1기 운영위원장, 연세미소의원)과 서울평화센터 공창배 사무처장이 외국인 근로자들의 의료 환경에 관심을 둔 것도 이즈음이다.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의료 혜택을 전하기 위해 무료 진료를 구상했고, 오랜 논의를 거쳐 2001년 4월, 평화·사랑·나눔 의료봉사단이 발족됐다.

평화·사랑·나눔은 체계적인 의료봉사를 위해 의사, 한의사, 약사, 간호사, 일반 봉사자 등 다양한 인원을 봉사자로 모집했고 이를 통해 진료에 필요한 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다.

봉사단 발족 당시 연세대 세브란스 가정의학과 전문의 모임,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서울여자간호대학 항아리, 경실련청년회, 단국대 로타렉트 등 6개 단체가 연합한 것도 제대로 된 진료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한의사, 치과의사, 물리치료사도 동참해서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필요한 1차 의료 서비스 대부분을 제공하고 있다.

2001년 5월 20일, '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첫 진료를 시작한 이후, 지난 9년간 300여 회 무료 진료가 이뤄졌고 다녀간 외국인 근로자만 해도 3만여 명, 봉사자는 5천여 명에 달한다.

건강보험 혜택 받는 이 거의 없어

평화·사랑·나눔이 많은 소외계층에서도 외국인 근로자에게 관심을 둔 것은 외국인 근로자들이야말로 약자 중에 약자이기 때문이다. 평화·사랑·나눔의 시작도, 9년을 이어온 활동도 의료혜택에서 소외된 외국인근로자에게 온전하게 집중되어 있다.

"외국인 근로자는 병원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건강보험에 가입된 경우도 드물어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외국인 근로자는 전체의 10%도 안 되는 실정입니다. 불법체류자도 상당하고요. 보험이 없어서, 불법체류자여서 병원을 찾기는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부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2008년 9월 3기 운영진을 구성했다. 동신병원 이희일 과장이 운영장으로 선출된 것도 이날이다. 운영진 임기는 정해진 바가 없다. 지난 9년간 2명의 운영장이 이끌어 온 것을 생각하면 이희일 운영장도 본인도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냐며 웃고 만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지만 주중에는 본업에 충실하고 주말에 시간을 내어 봉사를 하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함께하는 봉사자 한명한명이 귀하기만 하다. 1기 이승규, 2기 유종호 운영장이 그랬듯 이희일 운영장이 봉사자 관리에 많은 정성을 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희일 운영장의 바람처럼 좀더 많은 의료진과 봉사자가 평화·사랑·나눔 활동에 동참해준다면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힘이 될 것이다.

의약품 수급에 어려움 많아

3층 입원실은 예산 부족으로 폐쇄된 지 오래다. 입원실은 한방진료실로 사용 중이지만 자금이 마련된다면 입원실을 다시 열고 싶은 마음이다.

평화·사랑·나눔에서 진료할 의사가 부족하다는 이승규 원장의 글을 보고 첫 봉사를 시작해서 5년 동안 2기 운영장을 하고, 지금도 코디로 참여하고 있는 유종호 원장(연세엘레핀 클리닉)은 여전히 의원은 봉사자, 약, 자금 모든 것이 부족하다며 어려운 실정을 전했다.

유종호 원장은 500여 명 평화·사랑·나눔 봉사자들의 힘 만으로 부족한 것이 있다며 지속적인 봉사 참여와 후원이 이뤄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무료 진료에 필요한 것은 의료진뿐만은 아니다. 진료와 처방을 위해서 상당 수준의 의약품이 필요하다.

무료 진료에 필요한 대부분은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를 통해 지원받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약 수급이 고민이다.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이 3D 업종에서 일하는 탓에 근골격계의 만성질환을 겪는 경우가 많다. 고령자도 상당해서 당뇨나 고혈압, 위장계 질환의 비중도 높은 편이다.

때문에 처방되는 약의 대부분도 소염진통제, 위장약 등인데 의약품은 항상 부족해서 원외 처방전을 발행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무료 진료의 한계도 있다. 연계 진료가 가능한 2차, 3차 진료기관이 없다 보니 심층적인 의료 지원이 어려울 때가 많다.

봉사자가 한명이라도 더 찾아왔으면, 조금이라도 기증 의약품이 늘어났으면, 외국인 근로자들의 건강보험 혜택이 확대됐으면….

이희일 운영장을 비롯한 평화·사랑·나눔의 바람은 소박하지만 숨은 뜻은 거대하다. 평화·사랑·나눔의 바람이 하나하나 이뤄져 결국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병원까지 만들어지는 날. 대한민국에서 피부색이 달라서, 제3세계 출신이어서 받았던 차별은 사라지고, 우리 모두 같은 사람인 건강한 날이 올 것이다.

글·사진 / 류상미 보령제약 사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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