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0 06:00 (토)
나와 우리가 함께 하는'의료봉사'

나와 우리가 함께 하는'의료봉사'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9.04.27 09:07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형욱 원장(서울나우병원)

참된 의료인상을 정립하고 사회에 귀감이 되는 의료인들을 찾아나선 지 벌써 26년째. 26회 보령의료봉사상 그 첫 번째 수상자는 서울나우병원의 강형욱 원장이다. 오랜 생활 미국에서 공부했고, 고국에 돌아와 7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나우병원을 관절, 척추 수술의 최고 병원으로 만들고자 애쓴 그는 사회봉사 활동에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의사로서의 긍지와 자부심, 크리스천으로서의 믿음과 섬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료봉사의 선봉에 서다

"정형외과를 전공하면서 생각하지도 못한 병을 참 많이 만나게 됐습니다. 나는 정형외과가 치료를 통해서 다시 한번 사회에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과라고 생각해요.

사회 참여에 큰 몫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니 자부심도 컸고요.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것보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긍지를 느끼는 것이 더 큰 보람으로 알고 살아왔는데 보령의료봉사상까지 주신다니 마음 한 켠이 부끄럽네요."

연륜이 묻어나는 강형욱 원장은 매일을 그저 의료인으로서 환자를 돌보는 것이 낙이라 의료봉사 활동이라고 하기도 부끄럽다며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가 해오고 있는 활동을 하나하나 조심스레 소개하고 있노라니 긍지와 자부심이 자연스럽게 베어났다. 강형욱 원장과 의료봉사와의 첫 인연은 미국 유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턴 시절에 조금 더 전문화된 의술을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동기 녀석들 10명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죠. 나는 그때 관절 분야를 맡았는데, 물론 의사로서의 역할만 잘 하면 밥벌이는 가능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마침 봉사할 수 있는 기회까지 따라오더군요."

기꺼운 마음으로 미국 정부의 사회보장 프로그램인 월 페어에 참여하며 보람을 느꼈고, 등소평이 등극할 무렵 흉흉하던 그때에 세계누가선교회 회장으로서 연변 땅을 밟는 최초의 외국인이 되었다. 미국의 의료기구는 물론, 신기술을 전달하기 위해 연변의 골 과에 기부하거나, 50여 명의 연변인들을 미국 전역으로 보내서 의과대학 공부를 시켰다. 그렇게 강형욱 원장을 통해 짧게는 3개월부터 길게는 5년 남짓 공부를 마친 그들은 연변 의과대 곳곳에서 교수로 활동 중이라고 한다.

그러던 중 무릎 인공관절을 전문으로 연구한 강형욱 원장은 한국 의료계 교육의 현실에 부딪쳤고 부족함을 느끼고 1991년부터 미국에서 85년부터 시행되고 있던 '움직이는 관절'에 대해 국내 곳곳에서 강의와 세미나를 진행했다. 관절 전문병원을 꿈꾸게 된 것도 그 즈음이다.

2002년 개원과 동시에 본격적인 의료봉사활동에 들어갔다. 나우병원의 거의 모든 직원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아침마다 30분씩 예배를 드리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일단 의료봉사의 시작은 지역사회, 즉 경기도 분당의 곳곳에서 진행됐다. 분당노인복지사회에 봉사를 나가 노인학교 강연을 해주거나 외국인 노동자들의 수술을 도왔고, 선교사들에게도 외래 치료를 해주었다. 그 지역은 점점 넓어졌는데, 전북 고창을 비롯해서 제천, 안성 등 지역봉사와 선교활동에 이어 국경을 넘게 됐다. 태국, 캄보디아, 인도,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스탄, 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에 이르기까지 매년 서너 차례 다녀오는 병원단위의 단기 의료봉사였지만, 그 선봉엔 항상 강형욱 원장이 있었다.

"7년째 20번이 넘게 해외 의료봉사활동을 다녀왔는데 그래서 그런지 직원들의 손발이 딱딱 맞아서 내심 흐뭇합니다."

슈바이처처럼, 기대되는 3rd Phase

집안이 모두 의사였던 까닭에 너무 자연스럽게 의사의 길을 선택한 강형욱 원장. 그는 고등학교 때 슈바이처를 만나고 고귀한 봉사 정신을 배우게 됐다고 한다.

"종교인이자 음악인이기도 했던 슈바이처가 의료인이기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콩고에서 인술을 펼쳤는데, 그게 그렇게 인상적일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내 대학교 때 영어 이름이 알버트였다니까····. 허허."

그는 2003년 프놈펜에 저개발국 현지 의료기관인 NFC 헬스센터를 설립하고 박태근, 이경화 선교사를 파견했다.

2010년까지 4500평 150베드 이상 규모의 NFC 인터내셔널(의과 간호대학)을 건립하고자 1년에 10만 달러가 넘는 예산을 편성해 놓았으며 중국, 인도, 키르키즈스탄, 아프가니스탄, 이집트 등 해외선교사들의 재정 후원도 이루어지고 있다.

캄보디아 현지 의료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의대생과 간호대학생을 대상으로 전액 장학금을 후원하는가 하면 중국 내 의료기술 협력병원 협약 체결을 통해 선진의료기술을 전하고 있다.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더 욕심이 커지는 것 같기도 하고. 예전엔 소아마비 환자들이 많았거든요. 불구의 몸을 생활할 수 있는 몸으로 바꿔주면서 느끼는 희열은 말로 다 표현 못해요. 그래서 그런 병원을 곳곳에 세우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 시간 의사 가운을 입고 지낸 의사로서도 후배 의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다.

"왜 내가 의사가 되어야 하는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엔 의대 공부 마치고 월급 받으려면 최소 30대 초반이나 되야 하지 않습니까.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봐야겠지요. 히포크라테스는 의료인은 치료를 하되 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돈벌이로 쓸데 없는 수술이나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의사로서의 긍지가 없는 겁니다. 또 의료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했는데, 정형외과가 딱 그래요. 혹시 밥 버포드의 '하프 타임'이라는 책 읽어보셨습니까?

그 책엔 하프 타임이 지나고 난 3rd Phase의 중요성을 역설해놓았는데 내가 딱 그 시기에 와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봉사활동을 통해 나누면서 살고 싶습니다."

골프도 그렇고, 여행도 그렇고, 돈도 그렇고 다 고만고만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강형욱 원장. 베푸는 말은 틀렸고, 나눈다는 표현이 맞다고 강조하며 앞으로의 계획까지 들려주었다.

"얼마 전에는 IT로 유명한 숭실대 학생들과 함께 봉사활동 자매결연을 맺었습니다. 그 친구들이 컴퓨터를 가르쳐주면 우리는 진료를 봐주고 하는 활동이 될 텐데 기대가 크고요. 앞으로도 성남, 용인, 광주시의 지역사회 프로그램과 연계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강형욱 원장의 활동은 국경과 나이에 상관없이 넓고 또 깊게 퍼지고 있었다. 나와 우리, 나우병원에 모토 중 하나인 "Team of Excellence"라는 말이 그의 든든한 서포터가 되었으리라 짐작해본다.

7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루어놓은 일이 끝이 없지만, 강형욱 원장은 넉넉한 웃음으로 앞으로 더욱 섬기며 봉사하겠노라 다짐했다. 그의 3rd Phase가 더욱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글·사진 정지선(보령제약 사보기자)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