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위 '엉터리 통계에 곤욕'
권익위 '엉터리 통계에 곤욕'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9.03.05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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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비 15배 차이 알고 보니 1.6배
통계 해석 오류 '장본인은 누구?'

▲ 휠체어를 탄 한 중증 산재 환자가 국민권익위 측에 항의하며 자해 소동을 벌였다. 주변에 있던 방청객이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휴지로 막고 있다.ⓒ의협신문 송성철
국민권익위원회가 잘못된 자료를 제대로 검증하지도 않은 채 공청회 하루 전날 보도자료를 배포, 환자들과 의료기관을 도덕적으로 매도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공청회에서도 잘못된 통계를 그대로 발표, 제도 개선에 급급해 사고로 신음하는 산재와 자보 환자들의 인권을 외면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권익위는 3일 '동일한 진료·병실에도 보험종류에 따라 진료비 15배 차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뇌진탕 입원환자 진료비가 건강보험은 71만원인데 비해 산재보험에서는 1045만원으로 15배 차이가 나고, 입원기간도 14배 더 길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건강보험과 자동차보험 경추염좌 환자 입원율이 84배 차이가 있다"며 "보험재정 낭비를 방지하는 동시에 보험료를 내는 국민과 기업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도록 공청회를 통해 진료비 심사 및 수가체계 제도개선안을 마련해 관계 부처에 권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권익위가 제공한 보도자료가 주요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산재·자보 환자들과 이들을 치료하는 의료기관들은 보험재정을 낭비하는 부정적 이미지가 각인된 상황.

공청회에서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학 교수는 '요양급여 심사, 조사 및 사후관리' 주제발제를 통해 산재·자보·건보·보훈·실손형 개인의료보험·공상·외국인 및 노숙자·응급대불 등 11종의 요양급여비용을 통합 심사·평가·조사할 수 있도록 현재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의료심사평가원'으로 확대하거나 심평원에 업무를 위탁하는 형태의 심사·평가체계 개선안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투명한 요양급여 청구 풍토를 조성하고, 일부 요양기관 및 수급자의 부정행위 조사·관리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교수는 이를 위해 ▲전자청구시스템 확대▲표준진료지침 및 약제처방지침 등 심사기준 정비 ▲처방조제지원시스템(DUR) 확대 적용 ▲현지조사 및 사후관리 강화 등을 제안했다.

'요양급여 진료수가 합리화'에 대한 주제발제를 맡은 이용재 호서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진료내역은 보험의 종류, 사고원인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므로 산재·자보·의료급여의 요양기관 종별 가산율을 건강보험 가산율과 동일하게 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교수는 "현행 건강보험 수가가 상당히 현실화 되어 가고 있다"고 개인적인 견해를 피력한 뒤 "종합전문요양기관의 병원관리료를 축소·폐지하거나 급성기 이후 입원료 체감률을 건강보험을 기준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한국산업장애장애인협의회 이름으로 공청회장에 내 걸린 플래카드. 환자 단체들은 심사평가 업무를 심평원으로 통합하는데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의협신문 송성철

산재보험 관련 자료를 권익위에 제공한 근로복지공단은 "권익위 측에서 '뇌진탕' 통계를 비교하면서 건강보험 자료는 '단순 뇌진탕(S06.0)'을, 산재보험 자료는 '두개내 손상(S06)'을 같은 질환으로 비교한 것이 문제"라며 "건강보험에서는 상병코드를 4단위로 분류하고 있는 반면에 산재에서는 3단위로 분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병선 근로복지공단 진료비심사팀장은 "순수한 뇌진탕 만을 비교하면 진료비는 1.6배, 입원기간은 3.5배 차이가 난다"며 "건강보험과 산재 보험의 단위가 다름에도 권익위에서 같은 것으로 통계를 잘못 비교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주 팀장은 "두개골 및 안면골 골절환자의 경우 건강보험은 1인당 평균진료일수가 3.2일이지만 산재에서는 4일 이상이어야 요양대상에 해당한다"며 "이를 단순 비교해 타당성 논거로 제시하는 모순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주 팀장은 "경추염좌의 경우에도 건강보험에서는 일상생활의 일시적인 부자연스런 동작에 의한 이상병변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반해 산재는 사고로 인한 복합적인 상병이므로 둘을 비교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덧붙였다.

주 팀장은 "산재환자는 직장에 다시 복귀할 수 있을 정도로 치료를 받은 후에도 재활에 필요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특성이 있으므로 상병별 진료기관과 진료비를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부정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동식 한국산재노동자협회장은 4일 오후 2시 국민권익위원회가 주최한 '요양급여 심사 및 진료수가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산업현장에서 팔·다리를 잃고 척추 손상으로 사지마비나 반신 불수로 겨우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산재노동자들과 산재의료기관을 도덕적 해이에 빠져 기업주가 부담하는 산재보험료나 축내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했다"며 권익위의 사과와 해명을 촉구했다.

이날 공청회에서 토론자들은 산재·자보를 건강보험과 동일한 심사평가 기준에 따라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의견과 이들 환자의 특성을 감안해 현행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당초 참석 예정이던 전철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은 발제 및 토론자를 편파적으로 구성한 문제점을 들며 공청회 불참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협은 토론자로도 초청을 받지는 못했으나 박상근 보험위원장이 '요양급여 개선(안)의 문제점 및 병협 의견'을 공청회 자료집에 첨부하는 것으로 반대 입장을 전했다. 

박 위원장은 심사일원화와 종별가산율 및 입원료체감률 동일 적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토론자들 가운데 손해보험협회·건강세상네트워크·한국경영자총협회·심평원 등은 산재·자보의 심평원 위탁에 무게를 실었으며, 금융위원회·국토해양부 등 정부 측 인사들은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노동부와 한국산재중앙법인단체연합 측 토론자들은 심평원 업무 위탁이 요양급여심사의 본질적인 불합리성과 비효율을 야기할 것이라며 현행 제도 유지에 무게를 실었다.

공청회 말미에 열린 방청객 질의에서는 결국 국민권익위 보도자료와 주제발제 자료의 통계 오류 문제가 불거지면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산재·자보 환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이들 환자들 가운데 일부는 "권익위가 뿌린 보도자료 때문에 언론 보도가 잇따르면서 산업역군에서 졸지에 부끄러운 아버지가 돼 버렸다. 무엇 때문에 잘못된 자료와 보도가 나오게 됐는지 명확히 밝혀 달라"며 휠체어로 발표장소와 출입구를 막아선 채 항의를 하기도 했다.

한 산재 노동자는 "산업재해나 자동차 사고로 장애인이 돼 봐야 얼마나 산재와 자보 환자들의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급기야 산재로 척추가 손상된 한 환자는 책상에 자신의 머리를 박는 자해 소동을 벌였다. 이 환자는 선혈이 낭자한 채 "공청회는 무효다"를 외쳤다.

사태가 험악하게 돌아가자 국민권익위 관계자는 "오늘 얘기됐던 것에 대한 자료를 받겠다. 자료가 우리 과실로 잘못됐다면 사과하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렇지만 우리 자료가 아니라 다른 자료가 부실해서 빚어진 문제라면 정정보도를 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자료를 잘못 해석해 발제문은 물론 보도자료에도 오류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자 흥분한 산재 환자들이 사과와 정정보도를 요구하며 공청회 발표 및 토론자들과 대치하고 있다.ⓒ의협신문 송성철

부패 방지에 무게를 두고 마련한 이번 공청회는 미처 예기치 못한 산재·자보 환자단체와 가족들의 반발과 보도자료는 물론 주제발제 원고 곳곳에서 오류가 제기됨에 따라 빠른 시일내에 공개적인 답변을 해야 하는 국민권익위원회 측에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특히 '단순 뇌진탕'과 '두개내 손상'을 잘못 비교한 오류를 놓고 원자료를 제공한 근로복지공단, 보도자료를 생성한 국민권익위, 자료를 발제한 김진현 교수 등이 '진실게임'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신을 교통사고 피해환자라고 밝힌 손종숙 씨는 "손보사에서는 알 약 하나를 먹어도 꼼꼼히 심사하고, 견인치료를 삭감한 것까지도 모자라 아르바이트생을 시켜서 입원실에 누워있는지까지 파악하고 있을 정도로 이중삼중의 심사를 하고 있다"며 "이런 마당에 심평원까지 심사기구를 하나 더 늘리면 교통사고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를 침해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미숙 보험소비자협회 대표는 "교통사고 환자가 치료를 받는 도중에 합의하면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없고, 손보사 측은 기왕증이 있다며 마구 진료비를 삭감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잘못된 자료와 통계로 자보와 산재환자를 나이롱 환자로 매도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억울하고 불합리한 문제부터 풀어주는 것이 국민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한국산업재해장애인협의회·한국산재노동자협회 등 관계자는 잘못된 통계에 대한 명확한 해명과 정당한 진료권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산재노동자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산업체에서 경제발전을 위해 일하다 불의의 사고로 몸을 다친 산재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은 아픈 상처를 치료하고 장해를 극복해 자활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생계의 마지막 보루"라며 "의료심평원을 설립해 질병과 부상 치료를 강제 제한하는 것은 산재노동자를 두 번, 세 번 죽이는 극약 처방"이라고 규정했다. 협회는 "요양급여제도 개선이라는 미명하에 의료심평원을 도입해 산재노동자들의 정당한 진료와 보상받을 권리마저 박탈하려 한다면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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