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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떼, 닥터 양 양 양

나마스떼, 닥터 양 양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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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1.0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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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봉 선교의사

"I Love Nepal!" 입술 위의 구호가 아니라 삶으로 사랑을 실천한 의사가 있다. 한창 젊은 시절에 안락함을 내어놓고 네팔 사람들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버린 의사, 가난한 나라에서 가난한 의사로 인술을 펼치니 마음만은 누구보다 더 부자인 의사가 있다.

지난해 12월 제3회 '기독교문화대상' 봉사상을 받기 위해 잠시 귀국한 양승봉 선교의사를 만났다. 그의 소박한 인간미와 신실한 섬김은 이제 한국인들의 자랑이자, 동시대 사람들의 따뜻한 희망이 됐다.

"부산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1988년에 누가회(기독의사회) 수련회에서 한 강사를 만났습니다. 13년 동안 네팔에서 외과의사선교사로 활동하셨는데, 젊은 의사들에게 선교의 도전에 대해 알려주셨지요. 그때 처음으로 네팔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1992년 네팔을 다녀온 뒤 꼭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가난한 이들을 돕고 싶다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꿈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떡과 과일 등을 마련해서 고아원을 방문했고 대학 시절에도 기독의대생들과 함께 고아원을 찾아 다녔던 그다. 자신보다 못한 이들, 가난한 이들을 보면 괜스레 미안해지곤 했던 것이다.

1970년대 무의촌을 방문하면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한 자들을 손수 찾아나서는 등의 활동을 했지만 봉사활동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은 의과 대학 졸업 후였던 것 같다. 바로 네팔에서 말이다. 16년 전 양승봉 선교의사는 특수학교에서 근무하던 아내를 설득해 두 아들과 함께 네팔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한국에서 제법 잘나가던 외과과장이었지만 네팔과 인연을 맺으면서 많은 것을 바꾸어야만 했다. 양승봉 선교의사는 현재 네팔의 대학부속병원이 된, 카트만두시의 파탄병원에서 외과 과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리가 썩어가는 아이를 한달이나 내버려두다니 무식하기 짝이 없다고요? 가진 거라곤 맨손뿐인 아기 엄마가 도대체 무얼 어떻게 하겠습니까? 병원까지 갈 여비도 없는 판에 무슨 돈으로 치료비를 대겠습니까? 생활환경을 깨끗이 하면 병을 줄일 수 있을 텐데 안타깝다고요?

네팔 산골 마을에서 꼭지만 돌리면 물이 콸콸 나오는 수도를 기대하긴 어려운 노릇입니다. 계곡 아래 샘까지 내려가서 동이로 퍼올리는 물로 자주 씻으라고요? 그 귀한 땔깜을 써서 물을 덥히란 말인가요? 위생적이지 못한 생활환경이 건강에 나쁘다는 걸 알지만 달리 대책이 없습니다.
-<나마스떼, 닥터 양> 에서

천혜의 자연을 가졌지만 세계 빈민국 10위 안에 드는 척박한 나라. 아직도 국민소득이 380불 남짓한 가난한 나라. 빈부의 격차가 심하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가난 속에서 고통 받는 나라. UN이 정해놓은 절대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40%에 이르는 나라…

네팔은 그런 곳이다. 하지만 양승봉 선교의사에게 네팔은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얻은 보물의 또 다른 이름이다. 갖가지 재미있는 일들과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짬짬이 적어놓은 감동적인 기록들은 어느 출판사의 제의를 통해 <나마스떼, 닥터 양>이라는 책으로 발간됐다. '나마스떼'란 말은 "당신 마음에 있는 신에게 경배를 드립니다"라는 인사말로, 우리말로 "안녕하세요" 쯤이 된다고 한다.

▲ 양승봉-신경희 선교사 부부.

"처음 네팔에 갔을 때 시골에 있는 탄센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거의 매일 황당한 환자들을 만났어요. 보통 수술 날짜를 잡으려면 한달 정도 걸렸거든요. 한달 후에 오라 하니, 갑자기 환자가 화를 내는 겁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만도 14일이 걸렸는데 다시 14일 걸려 돌아갔다가 또다시 14일 걸려 돌아오라는 말이냐고 하더군요. 이유가 있는 화냄이었지요. 다른 수술일정을 미루고 수술을 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가 16년 동안 네팔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해낼 수 있었던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아내 신경희 선교사라 할 수 있겠다. 양승봉 선교의사는 유복한 의사의 아내에서 선교사라는 소박한 삶을 사는 길에 말없이 따라와준 아내에게 미안함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세상 물정 모르고 가난한 나라로 선교를 하겠다며 떠난 아들 내외를 지켜보신 든든한 후원자. 부모님께도 항상 죄송스러운 마음이라고.

양승봉 선교의사가 지금 가장 열성을 쏟고 있는 것이 바로 네팔 국민들을 위한 의료보험 사업이다. 양승봉 선교의사는 지난 15년 동안의 의료봉사 활동이 인생의 전반전이었다면 의료보험 사업은 인생 후반전의 과제라고 말한다.

"네팔 국민들 중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국민의 0.1%도 채 안 됩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비로 모든 치료비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제 때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치료를 받더라도 태반이 가난해지거나 빚을 지게 되지요.

국가 경제 형편상 의료보험이 요원한 일이기는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네팔 국민들이 치료를 제대로 받도록 하는 길은 오로지 의료보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1960년대 말 청십자 의료보험 사업이 성공하면서 부산 시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을 상기시켰다. 청십자 의료보험사업을 시작한 장기려 선생은 양승봉 선교의사의 존경하는 스승으로, 양승봉 선생이 의료보험사업을 시작하는 데 가장 큰 희망이 됐다고 한다.

양승봉 선교의사는 현재 카트만두 인근의 티미시에서 의료보험 시범사업을 시행하기 위한 타당성 조사 의뢰서를 KOICA(한국해외지원단)에 제출해놓은 상태로, 현재 보사부 차관이 좌장이 되는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다. 지금까지의 일은 모두 네팔보건부와 티미시, 네팔 재무부의 허락을 거쳐야 했기에 결코 쉽지 않았던 작업이다.

한편 1월에는 티미시에 한-네팔 친선병원이 들어선다. 티미시에서 3000평의 땅을 내놓았고, KOICA에서 134만 불(약 13억)을 들여 병원을 짓고 있는 것이다. 양승봉 선교의사는 의료보험 사업에도 힘쓰는 동시에 의료선교단체 '장미회'와 함께 한-네팔 친선병원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어차피 제3세계에 나가서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을 할 바에는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를 투자하고 싶었다"며 젊은 시절을 네팔 국민들과 함께한 양승봉 선교의사. 네팔에서의 오랜 생활은 그를 고단하게 했을 터였다.

잠시 귀국한 와중에 더욱 심해진 독감 때문에 아픈 몸을 이끌고 나와 인터뷰를 해준 모습은 사뭇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진실한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긴 책 <나마스떼, 닥터 양>을 읽으면서는 감히 말하고 싶어졌다. 당신은 여전히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고.

"네팔은 매우 아름답고 흥미로운 나라이지만 동시에 도움이 절실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최선으로 살다 간 의사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자기를 드러내는 데 절대로 요란하지 않으며 소박하되 진솔한 웃음이 더없이 근사하다. 후반전의 시작인 의료보험 사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는 생기가 넘친다.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사랑의 깊이에 절로 고개 숙이며, 부디 그의 후반전이 멋지게 승리하기를 기대해본다.

글·정지선(보령제약 사보기자)
사진·최종훈(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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