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과 신앙의 최고 표현
지성과 신앙의 최고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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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2.2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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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문화의 발산지인 피렌체의 오니산티(Ognissanti)교회에서는 성인의 모습을 교회 안에 프레스코화로 남기기 위해 당시 유명한 화가들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화가인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1445~1510)에게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모습을 그려줄 것을 의뢰했다.

서방 교회의 4대 교부의 한 사람인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relius Augustinus, 354-430)는 기독교 신학은 물론 서양 철학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어거스틴주의(Augustinism)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그의 학문은 뛰어났다.

이렇게 위대한 성인의 그림을 의뢰받은 화가는 자기의 생명을 거는 것과 같은 의미의 커다란 고민이 생겼다. 그것은 화가 기를란다요에 의해서 '성 히에로니무스'라는 프레스코화가 자기에게 할당된 장소의 건너편 벽에 이미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 보티첼리 작: '서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프레스코화(1480)피렌체, 오니산티예배당
사람들에게 앞으로 자기의 그림과 기를란다요의 그림이 비교 평가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래서 보티첼리는 성인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검토하는 한편 자기 스스로가 자기의 그림에 대한 재능을 시험할 정도의 비상한 능력을 최대로 발휘해서 그린 것이 바로 '서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1480)이다.

보티첼리는 성인이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감동의 순간을 맞은 표정 즉 흘러 들어오는 빛과 더불어 보이는 신의 모습에 감동한 나머지 쓰던 글을 멈추고 넋을 잃고 있는 것으로 표현했다. 특히 얼굴의 표정에 있어서 한 곳을 주시하는 시선과 양미간에 잡인 세로 주름과 이마의 가로주름 그리고 굳게 다문 입에서 신에 대한 최고의 감사와 찬양으로 표현됐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책상의자에 앉아 있으며 책상위에는 책받침대가 있고 그 위에는 천구의(天球儀)가 있다. 그런데 이 천구의는 사실상 성인이 사용하던 것은 아니라, 그의 저서 '고백'에도 잠시 언급 했듯이 천체의 운동과 괴도에 대해서 자기도 잘 모르면서 허위적인 것을 마치 사실인양 또 그것이 신의 뜻인 것같이 떠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내포한다.

그는 "철학자들은 우주에 대한 여러 가지를 이야기 할 수는 있어도 우주의 주인을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숙련 되였지만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별을 마치 모래 알 철럼 헤아리고 별의 세계를 탐구하고 그 괴도를 알아낸다 해도 결코 신을 발견할 수는 없는 것이다"고 말했다. 즉 천구의로 얻을 수 있는 지식도 마음으로부터의 신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북두칠성의 운행에 관한 것과 같은 우주의 과학적인 지식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신에 대한 믿음이 없거나 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바보이며 참된 지식의 소유자라 할 수 없다는 것으로 '문자는 사람을 죽게 하는 수가 있으나 영(靈)은 사람을 살린다'는 것을 강조하며 즉 말이나 문자보다도 신앙의 중요성을 역설하기 위해 성인은 천구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천구의 옆을 통해 비치는 신의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속의 괘종시계는 0시를 가리키고 있는데 이는 화가가 의도적으로 성인은 시간의 구애받음이 없이 밤늦게까지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성인의 모습을 나타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보티첼리라는 화가는 그림 표현에 대한 능력만이 아니라 그림에는 보이지 않지만 생각하면 성인의 위대성을 알 수 있는 방법으로 관자들을 유도하고 있다.

 고려대 명예교수·학술원 회원

▲ 문국진(고려대 명예교수·학술원 회원)
우선 그간 변변치 못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올립니다.

사실 미술과 의학을 접목시켜 관찰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닙니다. 그러나 의학과 미술이 각기 출발된 원점으로 되돌아가 생각해 볼 때, 의학은 자연의 재해나 병마를 피하고 그 피해를 해소시키기 위한 동기에서 시작됐으며, 예술은 풍부한 인간성을 창출해 인간이 문화생활을 영유할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한다는 욕망에서 출발됐습니다.

즉 의학과 미술은 인간의 건강과 건전한 정신에서 우러나는 풍부한 인간성, 그리고 그 사회의 문화 창달을 목표로 출발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공통점의 길을 더듬다 보면 의학과 미술을 접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게 되는 것입니다.

질병은 인류 역사의 문화나 시간을 초월해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존재했습니다. 즉 병이란 신체와 정신 그리고 문화가 만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생겨날 수 있음을 시사 하는 것으로 이러한 에피소드를 주제로 한 그림도 많습니다.

그래서 그림에 표현된 불안·고민·공포·슬픔·분노 등 인간의 아픔에 대한 기전을 의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해석하고 또 반대로 의학적인 지식과 노력만으로는 다른 이를 이해시키기 어려운 내용을 의학적인 설명 이상으로 잘 표현되어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작품들을 통해 환자들에 전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인간의 질병과 상상력이라는 제한된 과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의학과 미술이라는 빛으로 이를 집중 조명하여 볼 때 의학은 질병의 아픔을 파헤치고 분석해 아픔을 없앤다면, 예술은 인간 최고의 지적능력인 상상력을 동원한 작품을 통해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즉 우뇌적(右腦的)인 직감과 좌뇌적(左腦的)인 지성이 통합되어 나오는 감응력으로 아픔을 달래고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통해 그 아픔을 여러 사람이 공유함으로써 아픔을 희석하고 해소하는데 이바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의사들은 자기 전공의 눈으로 미술작품을 감상한다면 다른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심오한 의미를 찾아낼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작품을 만든 작가도 그 의미를 모르고 보이는 사실대로만 표현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묘미도 맞보게 됩니다.

표면적이고 직감적인 감상만으로도 깊은 감동이 전해지는 그림은 자연스럽게 그 작가에 대한 문헌을 구해 읽게 되고, 그러는 가운데 그림은 영감과 감성으로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능력·기술, 그 시대의 문화적인 상황, 그리고 작가의 인생철학에 의해 영향 받는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작품들의 감상은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피동적인 감상에서 벗어나 그 작품과 능동적으로 대화하려는 자세로 감상한다면, 그 작품에 깊숙한 곳에 가려있는 화가의 마음의 상태만이 아니라 몸의 상태 까지도 읽을 수 있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아무쪼록 이러한 기회를 포착해 임상생활이나 기초연구에 몰두하다가 잠시나마 시간을 내어 예술작품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시길 간절히 권하며 이만 끝마침의 인사에 대신합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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