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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엔 진료 주말은 답사 '고대 미술사학' 전문가
평일엔 진료 주말은 답사 '고대 미술사학' 전문가
  • 이현식 기자 hslee03@kma.org
  • 승인 2008.12.1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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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간 불탑이나 부도 등 미술부문의 역사를 연구하는 전문학회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 의사가 있다. 지난 1999년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가 주축이 되어 창립된 동악미술사학회 회원인 최백남 원장(최피부비뇨기과의원)이 그 주인공.

기자가 방문한 그의 진료실 한켠에는 의학서적 중간에 미술사와 관련된 일본 서적과 한국마사회 박물관에서 발행한 <마사박물관지> 등 낯선 책들이 꽂혀 있었다.

미술사에 대한 정규 교육과정을 밟지는 않았지만 고대 한국미술사학에 대한 최백남 원장의 식견은 이 분야를 전공한 교수들도 혀를 내두른다. 몇해 전 동호인모임에서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여주 고달사로 답사여행을 갔는데, 고고학을 전공한 전문가가 가이드로 왔다가 사정상 자리를 떠나자 동호인모임 회장이 최 원장에게 설명을 부탁한 적이 있다. 당시 최 원장이 원종대사 혜진탑의 탑비를 설명하면서 고려 광종 때 국사였던 원종대사의 행적에 대한 배경을 포함해 선승의 묘탑인 부도에 대해 전문적인 설명을 이어가자 듣고 있던 그곳 스님이 "이토록 잘 아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탄성을 질렀을 정도다.

최 원장이 미술사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약 15년 전. 미술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동료 의사들에게 알려지면서 서울 25개 구의사회장들과 강원도 정선과 강화도 등으로 답사를 가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이후 강동구의사회나 마포구의사회 등에서 다시 답사 가이드 요청이 쇄도했다고.

하지만 최 원장은 미술사에 대한 공부가 깊어지면서 동시에 부담감도 느낀다고 했다. "미술사를 전공한 교수들이나 대학원 석·박사 과정 학생들과 함께 답사를 가서 의견을 교환할 때는 사소한 것에 대해 말을 잘못해도 다들 단순한 실수임을 알고 넘어가는데, 일반인을 대상으로 설명할 때는 그렇지가 못해요. 전문가가 아닌 사람은 제가 하는 설명이 유일한 것일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죠."

최 원장은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그림을 그렸고, 미대 진학을 목표로 했다. 의사였던 아버지의 환자 중에 유명한 화가들이 많아 자주 집에 와서 그의 그림을 평가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미술을 전공해서 직업화가로 대성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들자 의대를 선택했고 개원을 하게 됐다.

▲ 고달사 원종대사 혜진탑비. 현재는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있다.<문화재청 제공>

"개원한 지 5~6년이 지나니까 인생이 좀 팍팍하더군요. 그리고 고2 때 고유섭 선생이 쓴 '조선 탑파의 연구'라는 미술사 서적을 읽고 느꼈던 깊은 인상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홍대 앞 미술사 서적을 파는 곳을 비롯해 동양서점·글벗서점 등을 돌기 시작했죠. 토요일과 일요일에 항상 서점을 가다보니 어떤 책이 무슨 서점 어느 코너에 꽃여 있는지까지 알겠더군요. 아마 지금까지 가본 서점이 100곳이 넘을 겁니다."

최 원장의 미술사에 대한 관심이 취미 이상으로 도약하게 된 것은 고 장충식 동국대 교수와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동국대 박물관장을 역임한 불교미술학자인 장충식 교수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장 교수의 아내가 최 원장의 집에 놀러왔다가 거실에 꽂혀 있는 미술사 관련 책을 보고 장 교수에게 얘기를 건넨 게 계기가 됐다. 이후 자연스럽게 서로 인사하게 됐고 급속히 가까워졌다.

"장충식 교수님을 알게 되면서 참 기뻤습니다. 홀로 독학을 하다가 궁금한 게 있을 때 물어볼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니까요." 아무튼 이러한 인연으로 장충식 교수가 1999년 동악미술사학회를 만들 때부터 참여하게 됐고, 장 교수가 작고한 뒤에도 동국대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 원장은 불탑을 시작으로 불상과 불교 교리 등 점점 연구분야를 넓혀가고 있다. 미술사 연구는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매우 폭넓은 지식이 필요하다. 요즘도 책을 읽으면서 참고문헌으로 소개된 서적을 구해 또 읽곤 한다.

"예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참 많이 갔습니다. 용산으로 옮기기 전 경복궁 근처에 있을 때는 700원을 내고 하루 종일 있다 나오곤 했지요. 박물관이라는 곳이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갖춘 안락한 곳이잖습니까(웃음)."

최 원장에게 미술사에 관심 있는 독자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자주 보고 자주 접하는 게 중요합니다. 박물관에 갈 경우 한꺼번에 전체를 보려 하지 말고,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보고 쉬는 방식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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