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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영어

여행과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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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1.2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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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태(전남 여수 성바오로외과의원장)
어렵게 결혼을 하다보니 신혼여행도 제대로 못가고 수련의 시절을 보냈다. 개원 후에도 일에 쫓기다시피 10년을 보내던 1987년 갑자기 해외여행이 가고 싶어졌다. 당시는 40세가 넘지않으면 해외여행이 제한되던 시절이라 어려움이 있었지만 전국에서 힘들게 모인 일곱쌍의 젊은 의사부부와 노부부 한쌍 그리고 의사 두분이 한 팀이 되어 일생처음 19일간의 유럽 8개국 버스투어를 하게 됐다.

가을만 되면 영국 런던에서 시작해 도버해엽을 건너 독일·오스트리아를 거쳐, 이탈리아 로마를 돌아 지중해변을 따라 스위스 롱브랑에서 알프스를 넘어 프랑스 파리까지, Romantic Street를 포함한 추억의 여로가 가슴을 저민다. 여행 첫날부터 옷가방 하나를 분실한(귀국 후 한달 만에 찾았지만) 추억까지 우리 부부에게는 평생 잊지못할 신혼여행으로 기억된다.

황태자의 첫사랑에 나온다는 맥주집에서 들었던 해남 김 박사 본인이 작곡했다고 말하는 아름다운 독창 '그집앞'과 팀원들의 노래는 이미 기억에서 가물거리지만 그 때의 여행분위기는 마음에 살아남아 가끔씩 우리부부를 즐겁게 만든다. 같이 갔던 정 박사는 그 여행을 끝으로 몇년전 유명을 달리했지만, 노부부 인천 손회장님은 아흔이 가까운 연세일텐데 금년에 전화로 사모님과 아직도 건강하심을 확인했으니 인생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인가보다.

여행중에 느꼈던 제일 큰 깨침은 수련시절까지 20여년을 영어책으로 공부를 했는데도 영어회화를 제대로 못한다는 아쉬움이었다. 돌아와서 회화 테이프를 사서 수시로 들어보았지만 드물게 찾아오는 외국인 선원과의 의사 소통도 손짓발짓을 동원하고 필기도구 없이는 쉽지가 않았다. 원어민 영어 교사가 홍수를 이루던 1997년에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부근 영어학원에 미국인 부부교사가 부임한 것이었다. 첫번째 수강생으로 등록을 하고 오로지 영어회화에만 매달렸다. 접시 안테나를 달고 CNN 방송과 영어 프로를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밤낮으로 듣고, 사전을 들고 코리아 헤럴드와 매일매일 씨름했다. 되지도 않는 영어일기까지 쓰면서 꼬박 넉달째가 되자 귀에서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 때의 마음속 환희는 시쳇말로 '짱'이었다. 젊은 미국인 부부교사에게는 내가 한국말을 가르치는 선생노릇도 했다. 항상 Papa Park, 또는 Dr. Park 이라고 나를 부르던 두 부부가 7개월만에 귀국을 하면서 첫아들을 낳게되면 'Parker'라고 이름을 짓겠다고 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리고 반년도 안되어 갑자기 안식년 4개월을 쉴 기회가 생겼다. 이때구나 싶어 집사람과 둘이서 미국·캐나다·유럽으로 장기여행을 계획했다. Round Trip 미국·캐나다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팔자에도 없는 소위 영어회화연수(?)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쉬운 것이 아니었다. 특히 기내나 공항에서 방송으로 흘러나오는 안내를 알아들으려면 온갖 집중을 다해야하니 보통 긴장이 아니었다.

전화 통화로 의사소통도 재삼 확인을 해야 마음이 놓였다. 우연히 만나는 원어민의 발음을 귀에 익히느라 무던히 애도 먹었다. 가는 곳마다 신세졌던 친구·후배 그리고 지인에게 지금도 고마운 마음이 크지만 미국인 두 부부와의 재회 2주간은 가족간의 정 그이상이었다. 그 후 첫딸을 보러 재차 방문했지만 Parker라고 이름 지은 둘째아이를 'Korean Grandpapa'가 한번 안아주러 가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하다.

어려움이 쌓여만 가는 개원가를 돌아보면서 언젠가는 문을 닫아야하는 입장이지만, 간간히 찾아오는 외국인선원 환자를 대할때마다 늦게 배운 영어회화 한마디가 나를 필요로하는 진료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사실에 그나마 위로를 받고있는 셈이다. 이제 머지않아 은퇴를 한다면 발가는대로 즐거운 친구들과 추억을 찾아 돌아오지 않을 기나긴 여행을 하면서 여생을 살고싶다. 비록 의사로서의 큰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이승의 여행이었던 내 인생은 아름다웠노라고 말하면서…☎ 061-665-8911·010-7298-3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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