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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를 딛고 피어난 두 예술가(하)
청각장애를 딛고 피어난 두 예술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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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0.2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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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야 작: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1821-24)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스페인의 화가 고야는 벨라스케스와 무리요 다음에 활약한 스페인의 가장 뛰어난 화가였다. 고야도 청력 장애를 이겨내고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청력 장애가 시작된 것은 1797년, 그가 46세 때부터이며 완전히 귀머거리가 된 것은 그가 77세 때(1823년)이고 81세(1828년)에 사망했다.

그는 1819년(72세)에 마드리드 교외에 별장을 구입한 후 '귀머거리의 집'이라 이름짓고는 그 집의 아래층과 윗층에 '검은 그림'이라는 커다란 14장의 벽화를 남겼다.

고야는 이들 그림에 신화나 성서, 축제나 민간 행사를 당시의 시대적 환경에 따라 풍자적으로 표현했는데 이 그림들은 유머와 광기, 정의와 복수, 고독과 환멸, 파괴와 죽음 등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정신의학자의 평을 보면 귀가 들리지 않는 베토벤의 음악은 귀가 들리지 않게 된 고야의 '검은 그림'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검은 그림 중에서도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1821-24)는 검은 배경에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데 마치 검은 대지에서 솟아 오른 듯한 그림의 주인공에 절박감을 느끼게 한다. 배경을 검게 한 것은 귀라는 것이 어떤 소리를 전달하는 기능 이외에 사람의 배후 공간을 감지하는 기능을 지녔는데,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에 따라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 시선이 다다르는 부분 이외의 세계는 모두 잃게 되기 때문에 검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야의 '검은 그림'은 시야의 중심이 매우 격렬한 주목의 대상이 된다. 이는 베토벤의 '광적인 집중성'을 내포한 그의 음악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그림에서 나체의 남자는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날리며 암흑속에서 불쑥 솟아 나와 우악스러운 두 손으로 작은 사람을 꽉 움켜잡고 벌써 머리와 팔 하나는 뜯어 먹었다.

사투르누스(Saturnus, 토성)는 그리스의 크로노스(Chronos) 신을 가리키는 로마식 이름이며 크로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 중에서는 최고위에 속하는 신이다. 크로노스는 언젠가는 자기 아들 중의 한 명으로부터 옥좌를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 그래서 그 때부터 그는 자기 자식들을 모두 잡아먹기 시작했다. 숨어있던 그의 아들 제우스는 아버지를 공격하는데 성공하여 스스로 최고의 신이 되었다.

사투르누스가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자식을 잡아먹는다는 것은 크로노스의 신화에서는 가장 소중한 시간을 잡아먹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말년이 가까워져 귀까지 들리지 않는 고야로서는 죽음이 이미 가까이 왔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크로노스의 신화와 같이 가장 소중한 시간을 잡아먹는 심정에서 그린 것으로 해석된다. 이제 그는 목젖이 보일 만큼 입을 크게 벌리고 나머지 팔을 뜯어먹으려 하고 있다.

사람은 귀가 들리지 않으면 자기 시야에 들어오는 것 이외 주변 세계의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래서 고야의 '검은 그림' 특히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는 시야의 중심만이 그의 세계의 전부인 듯이 표현되었고, 같은 맥락에서 청력을 잃은 베토벤은 정신적인 시야의 중심은 언제나 주목의 대상이 되어 주제에 관심을 더욱 높이려 '광적인 중심성'을 나타낸 것으로 두 예술가가 중심에 구심점을 둔 예술 표현을 하였다는 것은 우연한 사실이 아닌 것 같다.


문국진 고려대 명예교수·학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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