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를 딛고 피어난 두 예술가(상)
청각장애를 딛고 피어난 두 예술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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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0.2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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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틸러 작 '베토벤의 초상화'(1819-20)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보고 싶으면 눈을 크게 뜬다. 그러나 보고 싶지 않으면 눈을 감으면 되고 시야에 들어오지 않은 그 배후 세계는 귀를 통한 청각의 작용으로 보완된다.

그러나 들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시야에 들지 않았던 세계는 그것으로 끝이기 때문에 결국 그 배후 세계는 나름대로의 것이 되고 만다. 즉 자기의 정신적인 시야에 들어왔던 것만을 토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된다.

청력에 장애를 갖고 있던 예술가는 많은데 그 중에서도 위대한 작품을 남긴 음악가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과 화가 고야(Francisco Jose de Goya 1746-1828)는 그들의 삶의 철학과 작품에 어딘가에 공통점이 있을 것만 같다.

즉 이들은 현재의 들리지 않는다는 고통과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성취욕의 두 갈래에 시달려, 지녔던 능력의 유연성이 매말아 간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래도 삶의 근본 특성을 버리지 않고 이에 충실하여 나름대로의 예술성을 발휘한 고통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베토벤의 일생을 의학적인 견지에서 보면 그는 일생을 병에 시달리면서 살았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 중에서도 청력 장애의 경과를 보면 난청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796년, 즉 그가 26세 때부터이며 완전히 귀머거리가 된 것은 38세(1818년)부터이고 그가 사망한 것은 1827년 그가 56세 때이었다.

즉 12년간을 난청을 갖고도 작곡을 하였으며 말년 18년 동안은 완전히 들리지 않는 가운데서 작곡을 하였던 것이다.

이 문제를 정신의학에서는 청력 장애와 음악의 특색을 '광적인 집중성'과 '지속성'으로 표현된 작품으로 평하고 있다. 이런 그의 음악적 특색이 그의 원래의 성격에 기인하는 것인가 아니면 청력 장애와 관계되는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의 음악적인 특색은 주제가 뚜렷하며 그 주제를 밀고 나아가는데 정열적이고 철두철미했다. 이것은 일종의 정신적인 시야의 협축(狹縮)으로 길가에 아무리 예쁜 꽃이 피어있어도 거들떠보지 않고 마차의 고삐를 조여 달리라고 채찍질하고, 나비가 아무리 이 꽃 저 꽃을 날아다니는 자유를 보여도 그와는 상관없다는 식으로 주제가 결정되면 이에 열중하고 집착했다는 것이다. 이는 아마 청력 장애가 영향 미친 것 같다고 해석했다.

베토벤 말년의 작품인 현악 4중주 op.131의 피날레에는 '어려운 결심 그래야만 하는가? (Muss es sein?),  그래야만 한다!( Es muss sein !)' 라는 불가사의한 글이 덧붙여 있다고 한다. '그래야만 하는가?'라는 어떻게 보면 인류의 영원한 숙제와도 같은 물음에 그는 단순히 '그래야만 한다' 라고 답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마침내는 운명과 화해하고 운명을 긍정하는 인생에 대한 자신의 긍정적인 태도를 표명한 것으로 이것이 그의 본성이었는지도 모른다.

베토벤의 광적인 집중력이 성격 탓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한 그림을 그린 화가 고야가 있다. 그도 말년에 귀가 완전히 들리지 않는 귀머거리가 되었던 그 때 그의 작품에는 '광적인 집중성'이 잘 나타난 그림들이 있다.

문국진(고려대 명예교수·학술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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