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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100년의 발자취<9>

의협 100년의 발자취<9>

  • 이석영 기자 lsy@kma.org
  • 승인 2008.10.0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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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시행된 의약분업이 의료계에 미친 영향은 의료환경의 일대 변혁이 전부가 아니다. 대한민국 의사들은 의약분업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의사의 권리'가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닌, 끝없는 싸움을 통해 얻어내야 하는 것이라는 차가운 현실과 마주했다. 의권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민초 의사들의 민의를 결집하고 행동으로 옮길 강력한 지도부가 필요했고, 그 결과 의협회장 직선제를 이뤄냈다. 무엇보다도 의약분업 사태는 바깥 사회와 소통이 단절된, 철저히 고립된 의사집단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의사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사회 여론 형성을 주도하고, 보건의료정책의 수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 있는 이익단체가 돼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2001년 10월 19일 의협 초대 직선회장에 선출된 신상진 회장은 취임 한 달만인 11월 18일 전국의사 대표자 대회를 열고 '의협의 정치세력화'를 선포했다. 실행 기구로서 대외협력위원회를 설치, 각 정당과 국회의원, 정부 유관 부처, 언론·시민·사회단체 섭외 및 지원 활동을 벌였다.

총선과 대선은 의협의 정치적 역량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한 중요한 기회였다. 2002년과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의협은 각 당 대선공약에 의료계의 입장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노력했고, 17·18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시도 지부를 통해 의사출신 후보자 지원에 발벗고 나섰다.

신상진 전 회장은 17대 국회에 입성함으로써 자신이 처음 주창한 '의협의 정치세력화'를 스스로 실천했다.

'의사와 정치'…영광과 좌절의 순간들

대별

이름

소속정당

제헌국회
(1948. 5∼
1950. 5)

송봉해
신현돈
조영규
권병로
원장길
이영준
최규옥
홍순옥
이범교

대한독립촉성회
대한독립촉성회
한국민주당
대한독립촉성회
대동청년단
한국민주당
대한독립촉성회
무소속
무소속

제2대
(1950.5∼
1954.5)

권병로
구덕환
이갑성
이용설
한국원
조경규

무소속
국민회
무소속
무소속
무소속
무소속

제3대
(1954.5∼
1958.5)

조영규
조경규
육완국
정준모
김철주

민주국민당
자유당
무소속
무소속
무소속

제4대
(1958. 5∼
1960. 7)
4·19 혁명

조영규
이영준
최규옥
조경규
정준모
박충모

민주당
민주당
자유당
자유당
자유당
민주당

제5대
(1960. 7∼
1961. 5)
5·16 군사정변

신현돈
조영규
이영준
박충모
박희수
김동호
김성환
김종해
전석봉
오정국
박권희

민주당
민주당
민주당
민주당
민주당
민주당
민주당
무소속
민주당
민주당
사회대중당

참의원
(1960. 7∼
1961. 5)

정순응
최상채

민주당
민주당

제6대
(1963. 12∼
1967. 6)

이영준
김성진
민병기

민중당
공화당
공화당

제7대
(1967. 7∼
1971. 6)

박병선
양달승
오원선
이병주
김천수
박정출
문태준

공화당
공화당
공화당
공화당
공화당
신민당
공화당

제8대
(1971. 7∼
1972. 10)
10월유신

이병주
문태준
박숙현
장덕진

공화당
공화당
공화당
공화당

제9대
(1973.3∼
1978.11)

이병주
문태준
박숙현
구임회
박귀수
정희섭

공화당
공화당
공화당
유정회
무소속
공화당

제10대
(1979. 3∼
1980. 10)

문태준
정희섭
박숙현

공화당
공화당
공화당

제11대
(1981. 4∼
1985. 2)

 
이병직
김찬우
손춘호
이정빈

민정당
민정당
민한당
민정당
민한당

제12대
(1985. 2∼
1988. 4)

이병직
 
박성태

민정당
민정당
민정당

제13대
(1988. 4∼
1992. 3)

황성균
박병선
신영순
송두호

민정당
공화당
민정당
민주당

제14대
(1992. 3∼
1996. 3)

송두호
주양자
양문희
문창모
김찬우

민자당
민자당
민주당
국민당
무소속

제15대
(1996. 3∼
2000. 3)

황성균
주양자
정의화
김찬우
박시균

한나라당
한나라당
한나라당
한나라당
한나라당

제16대
(2000. 3∼
2004. 3)

김찬우
정의화
고진부
박시균
박금자

한나라당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제17대
(2004. 3∼
2008. 3)

안홍준
정의화
신상진
안명옥

한나라당
한나라당
한나라당
한나라당

제18대
(2008. 3∼)

안홍준
정의화
신상진
조문화

한나라당
한나라당
한나라당
한나라당

역대 의사출신 국회의원 97명 진출

의협이 정치 참여를 선언하고 의사출신 국회의원 배출에 총력을 기울인 것은 의권과 국민 건강권을 지켜야 한다는 의료계 내부의 열망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의사는 높은 수준의 학문을 수양한 전문 분야 종사자로서, 국가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외부적 요구에 따라 이미 국회 진출을 활발히 이뤄왔다.

1948년 제헌국회에 송봉해 의원을 비롯한 9명의 의사가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최근 18대 국회까지 적게는 3명부터 많게는 11명까지 연인원 97명이 진출했다. <표>.

다선의원도 상당수 나왔다. 권병로 의원 등 15명이 재선에 성공했으며, 조경규·이병주·박숙현 의원이 3선, 김찬우·문태준·이영준·정의화·조영규 의원이 4선 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제헌 이후 15대 까지 4선의원이 모두 합쳐 24명인 점을 고려할 때 4선 의사 국회의원이 이 기간동안 4명이나 배출된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의사출신 국회의원은 의정활동에도 활발했다. 조경규·문태준 의원 등 6명이 사회보건위 등 상임위 위원장을 맡았다. 김찬우 의원이 15대 국회에서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것이 가장 최근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들 중 문태준 의원은 국회의원 뿐만 아니라 보건사회부장관(88~89년), 의협회장(제24~26대), 세계의사회(WMA) 회장(84년) 등을 맡으며 의사출신 의원 중 가장 두드러진 업적을 남겼다.

17대 국회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안명옥 의원은 법안 발의 및 가결 수에서 전체 국회의원 중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왕성한 의정활동을 보이며, 경실련 등 시민단체가 선정한 우수국회의원에 다수 선정되고, 의사 국회의원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보건복지부 등 의사출신 장관 25명

1949년 미국 애모리대학 의대를 졸업한 구영숙씨가 보건부장관에 취임, 제1호 의사 출신 장관으로 기록돼 있다. 뒤를 이어 오한영, 최재유씨(모두 세브란스의원 출신)가 보건부 장관을 지냈으며, 보건부가 보건사회부로 통합되면서 의사 출신 장관의 전성시대를 열게 된다. 1955년부터 1993년까지 총 13명의 의사가 보건사회부 장관을 맡았다.

의사의 행정부 진출은 보건의료 분야 뿐만이 아니었다. 외무부장관(조정환 55~59년), 내무부장관(민병기 58년 / 신현돈 60~61년), 문교부장관(최재유 57~60년 / 권이혁 83~85년), 체육부장관(김 집 88~90년), 농림부장관(최규옥 54~55년), 환경부장관(권이혁 91~92년) 등이 배출됐다.

특히 권이혁씨는 83년부터 92년까지 약 10년간 문교부·보건사회부·환경부 등 3개 부처 장관을 차례로 지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의사출신 장관은 제27대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낸 박양실씨를 끝으로 15년째 명맥이 끊긴 상태다.

올 초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신상진·안명옥 의원이 보건복지가족부장관 물망에 오르기도 했으나 아쉽게 불발됐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의정회'

의사의 정치참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국의정회'이다.

의협은 1970년 4월 29일 한국의정회의 전신인 대한의정회를 설립했다. 당시 일본의사회의 외곽 지원단체인 일본의사연맹의 활발한 대외활동에 자극받아 만들어진 의정회는 의협의 대 정부·국회 활동의 창구로서 보건의료 발전과 의권수호에 일정 정도 기여했다.

그러나 출범한지 불과 5년이 지난 1975년 4월 26일, 의협 정기총회 공식 석상에서 무용론과 폐지론이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의정회는 순탄치 못한 길을 걷게 된다. 당시 제기된 폐지론은 단순한 의협 집행부와 의정회 임원진간의 갈등이 원인이었으나, 사업추진과 예산집행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의정회는 점점 설자리를 잃게 됐다.

의정회는 2001년 의협의 정치세력화 선언과 함께 한국의정회로 명칭을 바꾸고 조직을 정비, 제2의 도약을 꿈꿨으나 불의의 '로비 파문'과 함께 37년 역사를 끝으로 사라졌다.

2007년 3월 31일 강원도의사회 정기총회에서 당시 장동익 의협 회장의 국회의원 금품로비 관련 발언내용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의협은 엄청난 사회적 비난과 법적 분쟁에 휩싸이게 됐다.

국회 청문회까지 열릴 정도로 파장을 일으킨 이 사건으로 의정회는 그 해 5월 의협 임시대의원총회에서 폐지 결정됐고, 파문의 당사자인 장 전회장은 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 2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 1948년 5월 31일 열린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이승만 의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제헌국회부터 18대까지 97명의 의사출신 국회의원이 활동했다. 또 행정부 각 부처 수장으로는 복지·문교·환경·외무·내무·체육·농림부 등에 25명이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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