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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위상도(位相圖)(상)

죽음의 위상도(位相圖)(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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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9.2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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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타하우스 작 '잠과 그의 형제 죽음' 1874, 개인 소장.

중세 이전의 옛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호모투트스'라 해서 몸과 영혼이 한 덩어리가 되어 마치 잠을 자는 것과 같은 상태로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그것이 죽음에 대한 개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 자는 잠을 자는 것으로 해석했으며 죽음에 대해 겁을 내지 않고 담담하게 생각했다. 그러던 것이 영육이원론(靈肉二元論)이 나오고 죽음은 신의 명령을 받은 사자가 와서 데리고 가는 것으로 죽음의 사자를 믿게 됨에 따라 죽음에 대해 겁을 먹기 시작했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개념의 변화를 실감나게 표현한 그림들이 있어 그 그림을 보면서 죽음에 대한 개념의 변화를 실감해 보기로 한다.

19세기 영국의 화가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1)가 그린 '잠과 그의 형제 죽음'(1874)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죽음의 신 타나토스(Tanatos)와 잠의 신 힙노스(Hypnos)에 관한 것이다.

잠의 신 힙노스와 죽음의 신 타나토스의 어머니는 밤의 여신 나스로다. 두 아들은 그 피부의 빛깔이 달라서 동생인 힙노스는 횐 색인데, 형 타나토스는 검은 색이었다. 어머니인 밤의 여신이 검은 날개를 펴면 세상은 깊은 어둠 속에 빠지게 되어 지상의 만물은 잠을 자게 된다.

그림 '잠과 그 형제 죽음'은 이 두 형제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빛을 받아 횐 색 피부가 더욱 희게 보이는 힙노스는 검은 피부색이 그림자에 가리어 더욱 어둡게 보이는 타나토스와 함께 깊은 잠에 빠져있다.

힙노스는 양귀비꽃을 품에 안고 있는데 양귀비는 아편 즉 모르핀의 원료로서 통증 환자에게 모르핀을 투여하면 진통과 더불어 깊은 잠에 빠져들기 때문에 힙노스를 상징 하는 꽃이라 할 수 있다.

탁자 위에는 두 개의 피리가 놓여 있는데 이 두 소년이 지난날 피리를 불며 즐겁게 놀던 꿈같았던 시절의 즐거움을 나타내며 배경의 향로에서 타오르는 연기는 두 소년이 잠들거나 죽어서 있는 곳을 의미하며 그 곳에는 사람이나 짐승이 내는 소리도 없고 심지어는 나무가지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마저 없는 고요의 나라를 암시한다.

힙노스와 타나토스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에서 옛 그리스인들의 잠과 죽음에 대한 개념은 휴식이라는 관점에서 공통적인 개념을 갖고 있었던 것을 엿볼 수 있다. 즉 모든 활동을 정지하고 휴식하는 것이 바로 잠과 죽음이 지니는 공통점이며 단지 차이가 있다면 죽음은 그 시간적인 한계가 영구적이라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과 친숙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 이후의 사후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관심도 없었다. 단지 유한한 인생을 가능한 한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내세의 구원을 믿는 엘레우시스교 같은 종교가 생겨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그리스인에게 내세의 구원은 큰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고 오히려 유한한 인생을 아름답게 도전하며 사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인생은 숭고한 것이라 했다. 이러한 죽음의 개념에서 탄생된 것이 힙노스·타나토스신화이며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여 죽음의 위상을 확실히 한 것이 '잠과 그 형제 죽음'이다.

문국진(고려대 명예교수·학술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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