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3-28 17:57 (목)
프랑스의 혁명가 마리는 의사였다(하)
프랑스의 혁명가 마리는 의사였다(하)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09.08 09:36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샬롯 코르데 초상화.

혁명가 마라와 화가 다비드는 혁명 동지이자 친구사이였다. 마라가 살해되기 며칠전 다비드가 방문했을 때 마라는 심한 피부병으로 고생하며 출근도 하지 못한 채 욕조 안에서 집무를 하고 있었다.

화가가 국민공회의로부터 그림을 위촉받고 피살현장으로 갔을 때 마라의 시체는 이미 침대로 옮겨졌으며 방부처리(embalming)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시체의 방부처리를 위해서는 심장을 비롯한 모든 내장을 제거하고 깨끗하게 정돈한 후 방부액을 주입한다. 다비드가 시체를 만져보니 전신에는 시강(屍剛)이 나타나 있었다.

친구이자 혁명 동지인 마라의 죽음앞에서 다비드가 노린 것은 '반혁명자들이여! 그대들이 마라는 죽였어도 그가 만든 공화국의 헌법은 아직도 살아있노라!'라는 메시지였다. 마라가 죽을 때 그가 남긴 것은 몇 장의 혁명 공채뿐이었으며 그것이 전재산이었다. 마라는 그마저도 어떤 전쟁미망인에게 줄 생각이었다고 한다. 마라의 청렴결백함과 국민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비드가 마라의 죽음을 혁명에 이용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였다.

지난 회에 소개한 피살당한 마라의 그림에는 탁자 위 공채 밑에 편지가 보이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공채를 조국을 수호하다 죽은 병사의 아내이자 다섯 아이의 어머니에게 전해주시오'

죽은 마라가 이런 편지를 쓴 것이 아니었다. 살해 당시에는 공채가 탁자 위에 놓여 있지도 않았다.

또 죽은 마라가 손에 쥐고 있는 편지는 샬롯 코르데가 마라와 접촉하기 위해 쓴 두 번째의 편지라는 것이었다. 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오늘 아침에도 당신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입니다. 마라 씨! 제 편지를 받으셨나요? 받으셨다면 제가 잠깐만 뵈어도 될까요? 이 일이 얼마나 재미있는 지를 봐서라도 제 청을 거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 불행한 처지는 당신의 보호를 받을 만하다고 봅니다…'

다비드는 가공의 편지를 이용 '불행한 사람의 호소를 저버리지 못해 호의로 만나준 마라를 죽였다'며 국민에게 샬롯 코르데의 간악함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시체를 이용한 정치극은 역사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다. 레닌·마오쩌뚱·김일성 등의 시체 영구 보존은 대내외적으로 통치자의 위대함을 인식시키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다비드는 마라의 시체를 영구 보존하는 대신 그림속에서 영원히 남기를 원했다. 그는 그림을 통해 공화국의 이상과 애국주의가 왕당파에 맞서 혁명과 조국을 수호해야 했던 국민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또 혁명은 영웅을 낳고 영웅은 자신을 죽임으로써 혁명의 이념을 살린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다.

다비드는 마라를 살해한 여인을 절대악으로 매도했다. 그러나 수만 명의 목을 요구했던 마라와 이 피비린내 나는 유혈극에 종지부를 찍으려 자기 몸을 내던진 코르데 둘 중에 과연 진리를 대변한 이는 누구이겠는가? 실제로 로베스 피에르가 실각한 후 이 여인은 도리어 영웅이 되었다. 재판을 받는 도중에 그녀는 재판장에게 화가를 불러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줄 것을 요구했다. 그 때 그린 초상화가 베르사유미술관에 남아 있다. 그녀는 사형장에 끌려가서도 초연했다. 형집행을 지켜보는 군중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한 그녀는 무엇인가를 말하려다 제지당하자 미소를 머금은 채 스스로 단두대에 목을 올려 놓았다. 형 집행인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녀의 머리를 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줬을 때 얼굴에는 미소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문국진(고려대 명예교수·학술원회원)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