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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거만과 순종 (하)

황제의 거만과 순종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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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8.2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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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비드 작, '나폴레옹의 초상화'(1812) 국립워싱턴미술관 소장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의 초상'(1812)을 보면 그는 조끼의 단추를 풀고 오른손을 그 속에 넣고 있다. 다비드가 그린 이 초상화, 즉 오른손을 올려 조끼에 넣고 있는 자세를 이른바 '나폴레옹 포즈'라고 부르게 되었다.

화가가 왜 이런 자세의 초상화를 그렸는가 하면 나폴레옹은 어려서부터 몹시 신경질적이었으며 경련을 자주 일으키고 만성적인 위통과 배뇨장애(排尿障碍)가 있었다고 한다.

1796년에서 1814년까지 군의관이었던 알렉산도르 우르방 이반이 남긴 기록에 '황제는 매우 신경질적이었다. 이상하리만큼 감정에 영향을 받았으며 이럴 때마다 위와 방광에 경련을 일으키곤 했다'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증상은 전쟁을 앞두고서는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또 피부염이 있었는데 아마도 이것도 신경성 피부염이었던 것같다.

가려운 증상은 주로 양다리에 나타나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장시간의 목욕을 하였으며 그래서 그는 집무를 목욕탕 안에서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또 그는 브러쉬로 몸을 비비고 목욕이 끝나면 온 방문을 활짝 열어 놓고는 잠시 동안의 수면을 즐겼다고 한다. 

1797년 이탈리아 원정 때 부인 조세핀에게 보낸 편지에 기침이 나고 편두통이 생기고, 발열·배뇨 곤란·치질로 고생한다고 했으며 1797년에서 1799년의 이집트 원정 때는 기분이 좋아지고 기침도 나아졌다고 했다. 1802년 그의 비서였던 푸리엔그가 남긴 기록을 보면 나폴레옹에게는 이 때까지 보지 못했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우측 상복부에 격심한 통증이 생겨났고, 이럴 때마다 그는 조끼 단추를 풀고 책상에 기대거나 의자에 팔꿈치를 대고 왼손을 윗도리 밑으로 넣어 통증이 있는 부위를 만져서 통증을 가라앉게 하기 위해 애쓰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누가 찾아오면 옷을 단정히 하고는 오른손을 조끼 단추가 풀린 사이에 넣고 접견했다는 것이다.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의 초상'은 이러한 그의 독특한 자세를 그린 것으로 나중에는 이것이 나폴레옹을 상징하는 포즈로 되었는데 실은 그의 위통을 참고 완화시키기 위한 데서 나온 자세였던 것이다. 즉 아무리 천하를 주름잡는 나폴레옹이지만 병 앞에서는 별 도리없이 손을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평소에 나폴레옹은 의사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시의(侍醫)였던 고르바잘 교수의 말만은 귀담아 들었다고 한다.

어떤 파티에서 처음 그와 만난 나폴레옹이 "의사라는 직업을 어떻게 생각합니까?"라고 물었다. 교수가 "내가 그런 무리에 끼어있다는 것이 바보 같습니다"라고 했더니 나폴레옹은 "교수! 당신은 오늘부터 나의 시의를 해주시요."라고 하고는 그 자리에서 시의로 명했다는 것이다. 그 후 어느 날 나폴레옹은 지병인 추간판(椎間板)에 통증이 생겨 시의를 부르자 교수는 옷을 벗게 하고는 양손을 올리게 하였다. 그리고는 아프다는 부위를 손가락으로 세게 누르자 그 자리에서 통증이 가셨다는 일화가 있다.

그리도 도도했던 나폴레옹도 아픔 앞에는 옷을 벗으라면 벗고 손을 들라고하면 드는 등 잘 순종했다는 것이다.

지난회와 이번에 소개된 두 그림은 나폴레옹의 거만과 순종을 잘 나타낸 그림으로 인상적이라 하겠다.

 

문국진(고려대 명예교수·학술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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