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0 06:00 (토)
끝나지 않은 '마지막 강의'

끝나지 않은 '마지막 강의'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08.07 09:59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주 내내 뇌리에서 한 남자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다소 야윈 얼굴의 장난기 어린 미소와, 상대를 끊임없이 웃고 울게 만들던 말들이 자꾸만 어른거린다. 만화 '곰돌이 푸'에 등장하는 호랑이 캐릭터 '티거'처럼 언제나 재미를 좇으며 산다던 그 남자, '재미없게' 사는 방법은 아예 알지 못하기에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에도 남은 하루하루를 계속 신나게 살 것이라며 호쾌히 웃던 그 남자―. 현지시각으로 7월 25일 새벽, 47년 9개월의 짧은 생을 마감한 랜디 포시 미국 카네기멜론대 교수 말이다.

포시 교수의 사망 소식이 국내에 전해진 7월 26일, 나는 중앙일보 일요일자 신문인 중앙SUNDAY에 그의 책 <마지막 강의>에 관한 소개 기사를 쓰게 됐다. 췌장암에 걸려 결국 강단을 떠나게 된 포시 교수가 지난해 9월 카네기멜론대에서 마지막으로 했던 강의의 배경 설명서 겸 속편 격인 책이다. '당신의 어릴 적 꿈을 진짜로 이루기'라는 주제로 전 세계 1000만 명의 웃음과 감동을 자아낸 그 명강의에 관해서는 나도 신문 기사 등을 통해 대강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강의 동영상이나 책을 본 적은 없었다. 부랴부랴 서울역 서점에서 책을 사가지고 왔다. 그리고 인터넷 사이트 'thelastlecture.com'에서 강의 동영상부터 찾아보았다.

멍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 강의를 하기 바로 한 달 전에 췌장암이 간까지 전이돼 3~6개월 밖에 살지 못할 거라는 선고를 받았다는 포시 교수는 화면 속에서 밝게 웃는 얼굴로 "여러분이 생각한 만큼 내가 낙담해 있거나 침울해 보이지 않는다면 실망시켜 미안하다"며 자신이 어렸을 적 가졌던 여섯 가지의 꿈들에 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계속 웃고 있는데, 나는 이내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되고 말았다. 책도 마찬가지였다. 암이 전이된 것을 알게 된 순간 아내와 함께 울던 그는 진료실 안에 티슈가 없다는 걸 깨닫고 이렇게 생각했단다. '이런 장소에서, 이런 때에 크리넥스 한 통쯤은 있어야 되지 않나?'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가슴을 깊이 울린 것은 어린 세 자녀(큰 아들이 겨우 만 여섯 살이다!)를 위해 꼭 미리 해두고 싶었다는, 꿈을 좇고 결국 '꿈이 당신을 찾아가도록' 인생을 이끄는 방법에 관한 그의 이야기였다. 가상현실 분야의 개척자인 그에게 가장 이루기 어려웠던 꿈 중 하나는 '디즈니사의 이매지니어(엔지니어) 되기'였다. 박사 학위를 딴 직후 보낸 지원서는 보기 좋게 딱지를 맞았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장벽이 거기 서 있는 것은 가로 막기 위해서가 아니며,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보여줄 기회를 주기 위해 거기에 서 있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몇 년 후 교수가 된 그는 마침내 디즈니의 '알라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꿈은, 이루어졌다.

포시 교수의 강의나 책은 암 환자의 투병기나 '웰 다잉'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의사들과 말기암 환자들에게 특히 들려주고 싶은 몇 대목이 있어 소개한다.

"나는 암 전문의가 되려고 하는 모든 의대생들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장면을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울프 박사는 가능한 한 긍정적인 문장을 구사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우리가 '죽기까지 얼마나 남았지요?'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마도 석 달에서 여섯 달은 좋은 건강을 유지할 것입니다.' 그 말은 내가 디즈니에 있었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디즈니월드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공원은 언제 닫아요?' 그러면 이런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놀이공원은 여덟시까지 열려 있어요.'"

"나는 죽음에 대비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아직 죽지 않았으므로, 그 누구보다도 살아 있는 것처럼 살고 있다…나는 정관절제술을 받은 일이 나에게 알맞은 피임법인 동시에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제스처라 여겨져 너무 좋다. 나는 내가 말기암을 때려눕히는, 백만 명 중의 하나라는, 바로 그런 행운의 사나이가 될 방법을 찾아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는 것이 너무 좋다. 비록 그렇게 될 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하루하루를 이겨내는 데 더욱 도움이 될 좋은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newslady@joongang.co.kr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