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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의사 노릇하며 배운 응급처치 교육
가짜 의사 노릇하며 배운 응급처치 교육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07.2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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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섭(조선일보 논설위원)

 

매년 3월이면 병원에서 "주사맞는 것을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의대를 갓 졸업한 인턴들이 배치돼 주사놓기 실습을 하기 때문이다. 혈관을 제대로 찾지 못해 어디를 찌를지 제대로 몰라 우왕좌왕한다. 팔뚝에 시커멓게 멍든 자국을 남기고 마는 경우도 생긴다.

25년전 카투사로 군대에 간 내가 영락없는 그 꼴이었다. 조리병을 하다가 갑자기 위생병이 됐다. 아무런 의학 지식도 없었고, 위생병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보직을 바꾼 것이다. 어느 날 이런 사정을 알리없는 한 고참 미군이 주사기를 턱 내주었다. "주사를 놓아 본 적이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주사놓는 법을 배우라"며 강권했다. 주사액을 넣은 뒤 주사기 안의 기포만 없애고, 근육 사이로 바늘을 꽂으면 된다는 간단한 설명만 해주었다. 실험 대상이된 흑인병사의 팔 근육에 주사기 바늘을 꽂고 떨리는 손으로 주사액을 천천이 넣기 시작했다. 주사액이 들어가는 양만큼이나 내 얼굴에도 진땀이 흘렀다. 그날 혹시 흑인병사가 잘못되지 않았을까라는 걱정에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는 이후 주사기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런데 피할 수 없는 기회가 왔다. 야외 훈련을 나갔는데 갑자기 미군 한 명이 소대장과 함께 앰블런스로 찾아왔다. 고열에 몸 전체가 쑤시고 아프다고 했다. 약박스를 뒤져봐도 해열제가 없었다. "해열제나 진통제가 없으니 사단병원으로 후송하는 게 좋겠다"고 하자, 미군 소대장은 "모르핀도 없느냐"면서 약 박스에서 주사약 한 개를 꺼내 들었다. 전갈한테 물렸을 때 놓는 주사약이었는데 약 성분에 '모르핀'이란 단어가 있었다. "이걸 놓으라"는 소대장 말에 나는 긴장했다. 자칫 주사를 놓았다간 내 목이 여러 개여도 안될 판이었다. 궁리 끝에 "여기는 위생상태가 좋지않아 감염 우려가 있으니 후송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대장은 못마땅한 표정을 짓더니 결국 환자를 차에 태우고 돌아갔다. '위생 상태' '감염 우려'라고 얼버무려 겨우 위기를 넘겼다.

또 한번은 훈련을 나갔는데 무전으로 "교통사고 발생"이란 말이 계속 흘러나왔다. 탱크부대여서 교통사고가 나면 대형사고일 수 있는데 나는 기본적인 응급환자 처치 교육조차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는 가짜 위생병이었다. 나는 그 순간 기도를 올렸다. "무사히 군대생활을 마치게 해주세요?" 기도의 효험이 있었는지 내가 현장에 도착하는 순간 다행히 환자는 벌써 후송되고 없었다.

이후 사단 의무대에서 사흘짜리 '야전 위생병 교육'이 있다길래 얼른 손들었다. 부러진 다리에 침목을 대고 붕대감는 법, 인공호흡 하는 법 등 다양한 위생병 교육을 받았다. 피부가 말랑말랑한 마네킹을 놓고 인공호흡 시키고 팔뚝에 혈관을 찾아 주사놓는 법을 실전처럼 배웠다. 이 덕분에 미군들에게 '닥(Doctor의 준말)'이라고 불리면서 허울좋은 위생병 노릇을 하며 무사히 제대할 수 있었다.

수년전 우리나라도 '응급의학 전문의'제도를 도입한다는 기사를 쓰면서 나는 불안과 초조 속에 떨던 군대생활을 떠올렸다. 이후 어디를 가나 응급처치 교육의 생활화를 주장한다. 응급처치는 119구조대원들만의 몫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누구나 언제 그런 위급한 상황과 맞닥뜨릴 지 모른다. 인공호흡이나 심폐소생술만 일차적으로 처치한 뒤 환자를 이송시켜 전문소생술을 실시하면 환자의 30~40%는 살릴 수 있다고 한다. 학교 체육교육과정이나 예비군 교육, 운전교육에도 응급처치 교육을 넣는 것도 한 방법이다. 도시 한곳을 시범지역으로 삼아, 모든 시민이 응급처치교육을 배울 수 있는 교재도 만들고 실습도 하면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삶의 질을 한층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ds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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