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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회복…작은 실천에서 부터

신뢰회복…작은 실천에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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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3.3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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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중앙일보 기자)

얼마 전부터 여섯 살배기 둘째 아이의 두드러기가 심해 인근의 아동전문병원을 다녔다. 그곳에선 약물치료와 함께, 원인규명을 위한 혈액 검사와 X레이 검사를 받도록 했다. 한동안 우유와 달걀 흰 자를 먹이지 말라고도 했다.

검사 결과 아이에게 집 먼지 알레르기가 심하다며 '면역요법'을 권했다. 일단 약을 처방해주며 며칠 후 병원에 올 때까지 결정을 하라고 했다.

여기까지, 우리 집 육아도우미 할머니께 들은 이야기다. 기자를 엄마로 둔 가엾은(?) 우리 아이들은 대개 병원에도 할머니와 다닌다. 하지만 면역요법 얘기까지 듣고 나니 아무리 바빠도 엄마가 나설 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병원에서 준 면역요법 설명서라는 것엔 기본원리와 투약방식, 가격 등만 적혀 있어 어떤 증상에 얼마나 효능이 있는 것인지, 부작용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은 거의 알 수 없었다. 다시 병원에 가던 날, 나도 동행했다. 교수나 병원장급 의사를 취재원으로 만날 때도 그들의 전문가적 권위에 주눅이 들곤 하지만, 개인적인 건강문제로 의사를 만나게 되면 훨씬 더 큰 위압감을 느끼곤 한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중년을 넘은 듯 보이는 담당의사가 벽에 걸린 아이의 X레이 사진을 얼핏 보며(구체적인 설명은 한마디 없이) "알레르기가 심하네. 면역요법을 해야겠네"라고 말했을 때, 난 차마 조목조목 설명을 요구하지 못했다. "선생님, 그걸 꼭 해야 하는 건가요? 아이가 좀 어려서…"하고 공손히 물었을 뿐. 그런데 의사는 "예방접종을 꼭 해야 하느냐고 묻는 거랑 같아요"라며 다소 퉁명스런 목소리로 "안 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왕 할 거면 일찍 시작하는 게 좋아요. 늦으면 효과가 떨어져요"라고 말했다.

환자가 뒤에 밀려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식의 '통보'에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좀더 생각해 보겠다"며 돌아섰다. 의사는 면역요법을 받을 거면 적어오라는 아이의 상태 체크용 문답지를 한 장 더 건네줬을 뿐, 향후의 식이요법 등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우유나 달걀 섭취를 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또 다시 두드러기가 났을 때, 남편과 상의 끝에 결국 다른 병원을 찾았다. 동네 의원급이었지만 큰 병원 소아과장 출신의 경험 많은 의사가 있는 곳이었다. 그 의사는 현재의 증상과 면역요법은 별 상관이 없다며, 음식물 알레르기 관련 치료부터 차근차근 다시 받는 게 좋겠다고 했다. 어떤 의사가 아이에게 궁극적으로 도움이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앞의 의사는 우리 가족에게 전혀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환자의 신뢰를 잃어버린 의사가 과연 자신이 바라는 치료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그 의사는 그런 관계나 결과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의 관심사는 무엇이었을까. 마침 요즘 읽고 있던 <더러운 손의 의사들>(제롬 캐시러 지음, 양문)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의사-환자 관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료에 관한 신뢰이다. 진료에 관한 신뢰는 다른 종류의 신뢰와 달리, 사람은 아플 때 극도로 취약해진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강렬한 감정적 요소가 개입된다는 점에서 진료의 신뢰는 연인이나 친구 사이의 신뢰와 비슷하다. 또한 의사가 환자에게 적절한 조처를 해줄 것이라는 암묵적인 기대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의사-환자의 관계는 매우 높게 평가되는 것이다…(중략)좋은 신뢰감은 그 자체로도 치료 효과가 있으며 다른 치료의 효과를 증진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믿음, 신뢰는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단어가 아닌가 싶다. 의사 뿐 아니라 교사나 기자직도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나름대로의 문제도 있었지만 지난 정권들이 의식적으로 그런 현상을 부추긴 측면이 없지 않다. 그 결과는 예상치 못한, 심각한 부작용들을 낳고 있다. 의료체계나 교육정책들은 그 부정적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일선 현장에서 환자의 신뢰를 심어주지 못하는 개개인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한, 의사 집단 전체의 신뢰를 회복하긴 더욱 어렵다. 나 역시 기자직을 불신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 자신의 취재습관이나 인터뷰 언행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신뢰를 찾기 위해선 작은 실천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newslad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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